‘라틴아메리카’의 눈물
‘라틴아메리카’의 눈물
  • 김명지 기자
  • 승인 2011.09.25
  • 호수 13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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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보다 더 슬픈 열대인들의 이야기
자체적인 문명 속에 살던 남미 대륙에 침략자가 나타났다. ‘라틴아메리카’란 명칭은 1492년 그곳에 당도한 침략자 에스파냐에 의해 붙여졌다.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는 1492년, 식민지화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에스파냐는 일찍부터 유럽사회에서 사회계급의 분화를 경험했다. 그들은 이를 라틴아메리카 사회에도 적용한다. 대륙의 정복과 더불어 원주민은 에스파냐인에게 차별받았고 이를 근거로 사회적 신분제도가 도입된다. 모든 상류계급은 에스파냐인으로, 그 다음은 ‘엔꼬멘데로’와 같은 백인 자작농 등으로 채워졌다.

간혹 에스파냐인 중에서도 윤택하지 못한 삶을 사는 이들이 있긴 했으나 라틴아메리카의 원주민보다는 나은 편이었다. 이러한 백인 위주의 사회구조는 심지어 라틴아메리카의 국가들이 독립한 이후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레비 스트로스가 체험했던 브라질의 원시사회는 서구문명의 침략과 함께 어떤 변화를 맞았을까. 근대 침략기, 브라질 지역은 포르투갈에 지배받게 된다. 사실 에스파냐군이 라틴아메리카에 도착했을 때 이미 멕시코 남부의 아즈텍족, 콜롬비아 고원의 치브차족, 그리고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 잉카제국 등의 문명 수준은 유럽인들도 놀랄 정도였다. 그러나 브라질 지역은 달랐다. 최영수<한국외대 포르투갈(브라질)어과> 교수는 포르투갈이 브라질에 도착했던 당시에 대해 “투피부족을 중심으로 한 원주민들이 해안지대에서 석기시대 수준의 문화를 영유하고 있었다”며 그 원인으로 브라질의 아마존 열대우림과 내륙의 황량한 자연환경이 그들이 생존에만 급급하도록 만들었던 점을 지적했다.

1500년 항해자 카브랄의 지도로 브라질 북동부에 도착한 포르투갈원정대는 해안지역에 자생하는 파우브라질이란 나무를 벌목해 유럽에 수출하면서 본격적인 수탈을 자행한다. 이 붉은 색의 나무는 유럽의 직물산업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브라질이란 국가명 역시 여기서 유래됐다고 한다.

이렇게 탄생한 신생국 브라질은 원주민들의 ‘권익’을 포기하고 국가발전을 위한 ‘진보’를 택했다. 식민 초기 noble savage(고결한 야만인, 문명에 오염되지 않은 무구한 인간성을 가진 인간)라 불렸던 원주민들은 그저 그런 야만인들로 격하됐다. 최 교수는 “유럽인들에 의한 강제 노역과 각종 질병 등으로 상당수의 원주민 인구가 감소했으며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브라질 원주민 사회는 이후 더욱 처참한 모습을 맞이한다. 식민 초기 600만 가량으로 추정됐던 원주민 인구는 현재 약 10만 가량으로 줄어들었다. 이들은 현재 1988년 헌법이 규정한 3개 거주지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국립인디오재단이 이들의 보호에 힘쓰고 있는 중이다. 이에 대해 최 교수는 “아직 아마존 밀림지역에선 문명과 동떨어진 고립생활을 하는 원주민 부족들이 가끔 발견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참고: 논문 「라틴아메리카 사회구조의 출발점-1492, 열등한 원주민 대 우월한 유럽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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