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오만함을 벗고 떠나자, 열대를 향해
문명의 오만함을 벗고 떠나자, 열대를 향해
  • 김명지 기자
  • 승인 2011.09.25
  • 호수 13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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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 스트로스가 여행으로 기록한「슬픈 열대」

유태계 프랑스인인 어느 학자는 다가오는 2차대전의 무서운 기운을 피해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난다. 어느 비극적인 홀로코스트 영화의 줄거리가 아니다. 그가 프랑스를 떠남과 함께 더 의미 있는 역사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추앙받는 인류학자이자 사회학자인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의 이야기다. 브라질에서 대학교수로 일하게 된 그는 브라질 원시민족에 관심을 갖게 되고 이로 인해 그의 전설적인 저서 「슬픈 열대」가 탄생한다.


원시에 눈 뜬 어느 학자의 이야기

▲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
그와 브라질은 어떻게 만났을까. 1935년 레비 스트로스는 지인의 소개로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대학 교단에 선다. 고등학교 철학교사로 있던 그는 새로운 곳에서 자신만의 학문을 가르치길 원했다. 그러나 이는 대학 본부에서 바라는 것과 상충되는 것이었고, 결국 레비 스트로스는 자신의 강의에 여러 아쉬움을 갖게 된다.
그러던 중 그에게 새로운 호기심을 심어준 분야가 바로 원시문화였다. 그는 브라질의 원시문화와 만나고자 카두베오족, 보로로족, 남비콰라족, 투피 카와이브족의 사회에 들어가 그들의 생활을 기록하는 한편 몸소 체험하기에 이른다. 이 과정 속에서 그가 겪은 고초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인 때도 있었다. 그는 자신의 체험과 생각을 수필형식의 여행기로 엮었다. 이런 점에서 「슬픈 열대」는 고전적 민족지(현지조사를 바탕으로 여러 민족의 사회, 생활양식 등을 기술한 자료)와 차별성을 가진다.

책의 시작에서부터 이미 그는 ‘여행을 마치며’라고 이야기를 꺼내고 있다. 사실 이 책은 그가 아마존을 다녀온 지 10년도 더 지난 때에 쓰인 것이다. 그 때를 회상하며 당시 어떻게 그 사회로 들어갔고 무엇을 보았으며 자신의 시선이 어땠는지 등을 기록한 것이 책의 내용이다. 이처럼 「슬픈 열대」는 과거를 돌아보며 기록했다는 점에서 반성적인 성격을 지닌다. 그가 무엇을 반성하고 있으며 무엇이 그를 반성하게 만들었는가에 대한 답은 그의 체험 안에 있다.


문명은 무엇이고 야만은 무엇이란 말인가

정식 엘리트 코스를 밟은 것이 아니었던 레비 스트로스는 프랑스 지성계에서 주변적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는 그가 서구사회가 아닌 새로운 사회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데 일조한다.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에 대한 비판적 각성이 바로 그것이다. 주경복<건국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레비 스트로스는 모든 사회의 문화들을 있는 그대로 보고자 했다”며 “문명이란 개념에 대한 서양의 과장된 믿음과 의미 부여를 경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구사회에선 근대 이후 이성과 합리성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다. 그러나 이것이 옳은 결과만을 낳은 것은 아니었다. 1·2차대전을 겪은 서구사회의 ‘문명’에 대해 레비 스트로스는 새로운 관점의 필요성을 역설한 것이다.

이는 모든 문화가 기본적으로 같은 구조에서 출발한다는 전제에서 시작한다. 각 사회의 고유 문화들은 사실 본질적으로 같은 곳에서 파생됐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서구의 시각에서 이를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 레비 스트로스가 「슬픈 열대」를 통해 가장 강력하게 주장한 바다. 주 교수는 “레비 스트로스는 문화들이 같은 구조의 밑바탕을 갖고 있으며 외형상 드러나는 모습만 다를 뿐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서양인이었던 레비 스트로스가 원래부터 온전히 이런 사고방식을 갖췄다고 볼 순 없다. 그러나 인류학자로서 인류의 문명사에 관심이 깊었던 그는 아마존 답사를 통해 인간적이고 허례허식이 없는 그들의 문화에 깊은 감동을 받는다. 동시에 열대 야생사회의 원시문화를 하찮게 보는 서양인들을 연민의 눈으로 보기도 한다. 결국 「슬픈 열대」란 제목에서의 ‘슬픔’은 서구사회와 원시사회에 대한 그의 시각을 함께 반영한 것이다.


문화, 구조주의로 설명된다

치즈와 김치는 발효식품이다. 두 음식은 기본적으로 발효란 공통 구조에서 출발해 각자의 문화 속에서 다른 형태로 발현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 문화엔 우열이 없다. 이것이 앞서 지적한 구조주의의 기본 원리다. 구조주의는 소쉬르의 언어학에서 비롯돼 매우 다양한 분야에서 적용된다. 그 중 하나가 레비 스트로스의 구조주의다.

레비 스트로스의 경우 인류학적 구조주의의 창시자로 여겨지는데, 그에게 있어 구조주의란 ‘인간사회의 다양성 너머에 있는 근본적이고 공통적인 특성에 도달하는 것’이며 ‘각 민족지적 사실들의 생성을 지배하고 있는 불변적 법칙들을 명시하려고 하는 것’(신화학 2권, 임봉길 옮김)이다. 서동욱<서강대 철학과> 교수는 구조의 개념에 대해 “의식되지 않는 심층적인 차원에 있는 법칙”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더해 서 교수는 지질학, 마르크스주의, 프로이트 등과의 관계에 대해 “이들 모두 의식적 차원에서 인지되지 않는 심층적 차원의 법칙을 찾으려했다는 점에서 레비 스트로스의 구조주의에 영향을 줬다”고 덧붙였다.

당시 서양 철학은 ‘이성’을 중심으로 한 헤겔, 사르트르 등의 사상이 주류를 이뤘다. 레비 스트로스는 철학 전공자임에도 이에 회의를 느꼈다. 서 교수는 “당시의 주류 철학의 관점에서 볼 때 ‘이성’적인 발전법칙과 거리가 먼 야생인들의 문화는 평가절하 된다”고 전했다. 이성과 관계 없는 야생인들의 삶에도 나름의 필연적 법칙이 있다고 생각한 레비 스트로스는 이 때문에 종래 서구철학과 대립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20세기 중반 이후 흥했던 레비 스트로스의 구조주의는 21세기 들어 “모든 문화현상을 해석하기에 부족함이 있다”는 의견에 도전받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주 교수는 “구조주의가 설명하는 타문화에 대한 이해와 인정은 문화상대주의와도 연결된다”며 여전히 구조주의가 인류학에서 차지하는 높은 위상을 강조했다.
▲ <「슬픈열대」에 실린 보로로족의 장례식 모습>

참고: 한국방송통신대 제작 「레비 스트로스-슬픈 열대」, 송도영<국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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