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룡마을에 뜬 무지개
구룡마을에 뜬 무지개
  • 류민하 기자
  • 승인 2011.08.31
  • 호수 13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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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해복구 현장에 가다

▲ 허름한 판자촌 뒤로 초고층 주상복합단지가 보인다.

구룡마을은 전두환 정부 시절, 88 서울올림픽 때 ‘도시 미관 사업’이라는 미명 하에 쫓겨난 철거민들이 모여 만들어진 강남 유일의 판자촌이다. 지난 7월 27일 엄청난 폭우로 서울이 물에 잠겼다. 근처의 우면산 일대는 군경, 자원 봉사자들의 지원이 즉각적으로 이뤄졌지만 구룡마을은 무허가 판자촌이라는 이유로 구청의 지원이 없어 주민들의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던 중 방송인 김제동 씨가 지난달 30일 트위터로 자원봉사자들을 모집하며 수해복구에 나서 구룡마을의 상황은 겨우 세상에 알려졌다. 본지 기자들도 지난 12일 현장에서 도배작업 및 수로복구에 참여했다.


오전, 좁은 집에서 땀 뚝뚝 벽지뜯기

▲ 자원봉사자들이 도배를 하기위해 줄자로 벽의 치수를 재고있다.

지난 12일 오전 10시 우리는 구룡마을 회관에 모였다. 이미 회관 안은 북적이고 있었다. 회관 안에서는 우리학교 학생들도 꽤 만날 수 있었다. 국문대 학생회장 차보람<국문대 한국언어문학과 09> 양, 공학대 학생회장 유인선<공학대 전자시스템공학과 03> 군을 비롯해 여러명이 모여있었다. 학교단위로는 우리학교에서 가장 많은 학생이 참여했다고 했다. 대부분 우리처럼 트위터를 보고 온 학생들이었다.

기자들은 우리학교 학생들과 같은조에 배정받았다. 우비와 목장갑을 나누어 받은 뒤 우리조 조장이었던 유 군이 ‘오늘의 할 일’을 설명했다. 줄자로 집을 측정하고, 원래 붙어있던 벽지를 떼어낸다. 떼어낸 자리의 곰팡이를 닦아내고 새 장판과 벽지로 도배한다. 설명을 듣고 미로같은 마을골목을 돌아 일터에 도착했다. 우리가 도배해야 할 집은 3-10-4 심삼순 씨 댁이었다.

처음 들어가서는 선뜻 손을 쓰기가 힘들었다. 작업을 위해 장롱을 치워내자니 왠지 천장이 무너져 내릴 것 같기도 했고, 집안에 있는 물건들도 난감했다. 얇은 합판으로 만들어진 천장은 손으로 누르면 푹 들어갔다.

일단 벽지를 뜯어내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벽지를 뜯어내니 스티로폼이 드러났다. 구룡마을 주민들은 이런 집에서 살고 있었다. 우리는 혹여나 스티로폼이 망가지지 않을까 벽지를 조심조심 뜯었다. 벽지를 뜯어낼 때마다 먼지가 뽀얗게 일었다. 먼지로 공기도 좋지 않은데다 좁은 방 안에 많은 사람이 있으니 방 안은 곧 사우나가 됐다. 땀이 턱에서 툭 떨어져 밟고 있는 침대 위로 떨어졌다. 벽지뜯기 작업을 마무리하고 집 밖으로 나오니 공기가 그렇게 시원하고 달 수가 없었다.


점심, 잠시 휴식
구룡마을회관으로 돌아와 준비된 도시락으로 식사를 했다. 식사 후 쉬는 동안은 구룡마을 주민들에게 전달할 롤링페이퍼를 만들었다. 처음엔 주춤거리던 학생들은 이내 주민들을 위한 응원의 메시지로 큰 종이를 가득 채웠다.

문 쪽에서 갑자기 와 하는 소리가 들렸다. 방송인 김제동 씨였다. 이제 다시 일을 시작할 시간이다.


오후, 에너자이저와 함께 일하다

▲ 김제동 씨와 자원봉사자들이 수해로 떠밀려온 토사물을 치우고 있다.

원래대로라면 아까 일하던 집에서 도배작업을 마무리 해야하지만 김제동 씨가 각 조에서 인원을 차출해 수로로 떠난터였다. 그와 함께 일을 해보고 싶었다. 삽을 빌려서 수로로 향했다.

수로엔 10여명의 남자들이 삽으로 열심히 수로에 쌓인 흙과 자갈들을 퍼내고 있었다. 이전 복구 작업에서 김제동 씨와 봉사자들이 수로를 정비했었지만 또 비가 내려 수로가 엉망이 됐다. 기자도 얼른 뛰어들어 작업 대열에 합류했다.

김제동 씨는 일을 하다가 급기야는 웃통을 벗고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일하면서도 쉬지않고 사람들에게 말을 걸며 사람들을 즐겁게 했다.“나도 벗었으니까 내 밑으로는 다 웃통 벗어”, “80년대생들 손들어. 힘든 일은 다 이 사람들이 해야돼요.”

아주머니들이 몇 가지 새참을 날라왔다. 막걸리를 마시고 얼근히 취해서 일했다. 농부가 된 기분이었다. 김제동 씨가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왔다. 구룡마을 근처 포이동 판자촌이 그날 새벽 강제철거가 이뤄졌다는 소식을 듣고 주민들을 위로하고 온 것이다. 그렇게 일하고 포이동까지 다녀와서도 지친 기색이 없었다. 그는 또 한번 웃통을 벗고 수로에 뛰어들어 농담을 하며 작업을 계속했다. 그는 여기저기 다니면서 사람들의 힘을 북돋아주고 있었다 .

같이 수로에서 일한 함희석<서울시 강남구 23> 씨는 오전에 전역하고 구룡마을 현장으로 달려왔다. 함 씨는 “우면산 산사태가 났을때도 군 복무 중에 대민지원에 참여했다”며 “그땐 의지로 한게 아니었는데 이번엔 의지대로 온 거라 더 보람찬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빗방울이 한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해 작업을 접어야 했다. 김제동 씨는 같이 일한 사람들을 챙겼다. 뒷풀이에선 김제동씨의 제안으로 트위터 모임 ‘몸뚱아리당’이 결성됐다. 어디든 인력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달려가는 모임이란다.  
 
사진 박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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