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은 좋다, 책임은 싫다?
자율은 좋다, 책임은 싫다?
  • 하동완 기자
  • 승인 2011.05.28
  • 호수 13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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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간 등록금 57% 올린 한국 사립대학, 교육환경은 제자리

▲ <그래프1 : 한양대 연도별 교육환경지표>
▲ <그래프2 : 한양대 연도별 고정자산 매입 지출>
매년 봄이 오면 대학생들은 광장에 모여 등록금 동결을 외친다. 심지어 올해는 정부까지 나서서 등록금을 동결하거나 인상폭을 3% 이내로 조절하라고 요구했다. 이를 어길시 행정적 불이익을 주겠다는 엄포까지 놓았다.

하지만 대학들은 완고했다. 대부분의 대학들이 등록금 인상 방안을 고수했고, 이 중 79개 대학은 3%이상으로 등록금을 인상했다.

정부가 요구해도 말을 듣지 않는다. 한국대학의 절대 다수가 정부지원을 거의 받지 않는 사립대학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은 미미하다. 등록금 상한제, 등록금심의위원회 설치 등 그나마 시행됐던 정부차원의 노력이 기대보다 못한 성과를 거둔 이유다.

사립대학이 대부분인 지금의 상황 속에서는 등록금 문제 해결의 진전을 기대하기 힘들다. 사립대 재정의 등록금 의존률은 평균 55.4%다(한국사학진흥재단, 2007). 한양대의 경우 73.8%에 이른다(2010 회계, 전체수입 대비). 사립대학에 대한 정부지원이 획기적으로 증가하지 않는 한 등록금이 오르는 것은 필연적이다.

사립대학이 4년제 대학 전체의 76%를 차지하는 기형적 구조는 해방 직후에 시작됐다. 이 시기 한국의 대학교육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당시 정부는 공립대학을 세울 경제적 여력이 없었다. 대신 사립대학들이 들어서며 대학교육 수요를 담당하게 됐다.

연덕원<한국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이때부터 상당수의 사립대학이 설립되며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게 됐다”며 “사실상 정부가 고등교육의 책임을 민간에 맡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당시 미군정 관리 하에 있었던 한국은 자연스럽게 수익자부담원칙이라는 미국교육의 기조를 답습했다”며 “이는 교육을 국가의 책임으로 보는 유럽과는 다른 인식”이라고 덧붙였다.

수익자부담원칙이 부른 비극

▲ 서울지역 22개 대학 총학생회는 지난 16일 우리학교에서 서울시 대학생 학자금 대출 이자지원에 관한 조례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해방 후 도입된 수익자부담원칙이라는 기조는 한국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았다. ‘너를 위한 교육이고 너의 선택이니 당연히 스스로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인식이다. 1989년 노태우 정부는 “대학 등록금을 수익자부담원칙에 의거해 자율화함으로써 교육비 재원을 합리적으로 확보해 대학교육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고, 대학의 자율적 경영능력을 높이는 계기를 제공하겠다”며 등록금 책정 자율화 정책을 도입했다. 교육환경 조성과 그에 따른 교육비 책정이 대학 자율에 맡겨졌다.

그 결과는 ‘끊임없이 오르는 대학 등록금’이다. 민주당 김상희 의원이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제출받은 ‘1인당 등록금 변동 추이에 따르면’ 지난 10년 간 한국의 사립대학 등록금은 평균 57.1%나 올랐다. 물가상승률인 31.5%를 크게 웃돈다.

전문가들은 대학 등록금이 지속 상승하는 이유로 ‘대학재정의 높은 등록금 의존률’을 꼽는다.

연 연구원은 “사립대학들이 전체 예산의 50%에서 많게는 80%까지 등록금 수입에 의존하다 보니 물가상승이나 교직원 임금 상승에 등록금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이를 완화하기 위해선 등록금 의존률을 낮춰야 하지만 대다수 사립대학들은 그런 움직임에 나서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또 “학교 재단이 투자하는 금액도 너무 적다”며 “정부가 사립대학설립에 인허가를 내준 것은 고등교육의 책임을 지워준 것인데 대다수 사립대학들은 그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등록금은 오르는데 교육환경은 제자리

한양대는 2009년을 제외한 지난 5년 동안 지속적으로 등록금을 인상했다. 그에 비해 △전임교수 1인당 학생 수 △학생 1인당 도서 구입비 △대단위 강좌 수 등 교육환경을 나타내는 지표들은 제자리걸음을 벗어나지 못했다.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한양대 전임교원 1인당 학생 수는 2008년 31.4명에서 2010년 29명으로 3년 간 겨우 2.4명이 줄었다. 학생 1인당 도서구입비는 2008년 20만2천원에서 2010년 17만9천원으로 오히려 이전보다 줄었다. 100명 이상 규모의 대단위 강좌 수도 2008년 1학기 175개에서 2010년 1학기 160개로 크게 변하지 않았다(그래프1).

한편 고정자산매입으로 지출하는 비용은 꾸준했다. 사립대학회계정보시스템에 공개된 정보에 따르면 한양대는 토지매입으로 2008년에 13억여원, 2010년에 25억여원을 사용했다. 건물매입으로는 2008년에 2억5천여만원, 2010년에 6억6천여만원을 사용했다. 여기에 건물 건설비용인 건설가계정까지 합하면 지난 5년 간 한양대가 고정자산비용으로 지출한 금액은 2천억원에 달한다(그래프 2).

대학교육,  이제 국가가 책임져야

대학 자율화의 결과 등록금이 올랐다. 그에 비해 교육여건은 진전을 보이지 않자 일각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제 국가가 개입해 등록금의 적정수준을 정하고 사립대학들이 교육여건 향상에 힘쓰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등록금넷과 참여연대, 한국대학교육연구소는 올해 발간한 책 「미친 등록금에 나라」에서 ‘정부책임형 사립대’를 등록금 문제의 대안으로 제시했다.

정부책임형 사립대는 사립대학 재정의 50%이상을 정부가 지원하는 대학이다. 정부가 공적인 영역으로서 사립대학을 지원한다면 대학의 공공성을 높이고 정부가 등록금 책정에 깊이 개입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대학진학률이 80%에 달하기 때문에 대학교육을 준 의무교육으로 보고 공적영역으로 접근해야한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연 연구원은 “등록금을 인상하면서도 교육여건은 개선하지 않고, 그 돈을 재단소유의 재산을 구입하는 데 사용하는 사립대학들의 현실을 보면 더 이상 대학교육을 사학법인에게만 맡겨둘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며 “사립대학들을 정부책임 형 사립대로 전환해 고등교육을 공적인 영역으로 끌어와 문제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전했다.

또 “정책보다 중요한 것은 등록금 문제의 피해 당사자인 학생들이 제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며 “대학생들이 자기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출해야 정치권도 정책결정에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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