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 돌파하고 ‘경계’를 넘어 ‘관계’를 만들기 위해
‘한계’ 돌파하고 ‘경계’를 넘어 ‘관계’를 만들기 위해
  • 유영만 교수
  • 승인 2011.03.21
  • 호수 13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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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영만<사범대ㆍ교육공학과> 교수
기 전공을 남다르게 깊이 파고들기 위해서는 전공 서적 이외에 다양한 책을 넓게 읽어야 한다. 다독이 결국 전공의 깊이를 더욱 깊게 파고드는 느린 방법이지만 결국 더 깊이 남다르게 파고 들 수 있는 기반이 된다. 한 우물을 파되 주변을 둘러보면서 파야 자신이 판 우물에 자신이 갇히는 어리석음을 면할 수 있다. 넓게 파야 파고 들어가다가 막혀도 주변의 다른 루트를 찾아 다시 파고 들어갈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처음부터 깊이 파고들다 난공불락의 벽이나 장애물을 만나면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수 있다. 나중에 벽에 부딪혀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 정해놓은 경계를 넘어 한계를 돌파해내야 한다.

주로 공부하는 여정에서 부딪히는 한계는 자신이 정해놓은 경계 때문이다. 처음부터 경계를 지어놓고 공부를 시작하면 스스로 그 경계가 넘을 수 없는 한계로 다가온다. 공부는 경계를 구분 짓는 방법도 습득해야 되지만 우선 관계를 형성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수많은 개념간의 관계, 현상의 이면에 존재하는 구조들간의 관계, 관계없이 보이는 개별적 사실들을 관통하는 본질들의 관계가 그것이다. 대상에 대한 앎이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는 앎의 주체와 앎의 대상 간에 깊은 사랑에 빠졌다는 것이다. 사랑하지 않고 대상을 알 수 없다. 사랑한다는 이야기는 깊은 관계가 맺어졌다는 이야기다. 깊은 사랑과 관심이 돈독한 관계를 만들 수 있다. 세상은 관계의 그물이다. 깨달음은 관계없는 것이 관계있는 것으로 다가올 때 온다. 그런 관계의 깨달음이 선행될 때 관계 속에 존재하는 경계가 보이고, 나의 인식의 한계가 보인다.

그 한계를 넘어서려는 노력이 공부다. 그래서 공부는 자신이 설정해놓은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자신과의 투쟁이며, 넘어설 수 없다고 스스로 한계 지워놓은 경계를 넘어 다른 경계 안으로 들어가는 과정이다. 한계를 넘어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우선 한계지점까지 가보는 것이다. 한계지점까지 가보지도 않고 한계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영원히 한계를 넘어설 수 없다. 그런 사람이 한계를 깨닫는 유일한 방법은 한계를 넘어서는 다른 사람을 목격하는 방법이다. 한계를 넘어서는 다른 사람을 목격만 하는 사람은 방관자로 남을 수밖에 없다. 한계 경험 방관자는 자신이 직접 한계 체험을 하지 않는 이상 한계 경험 체험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경계를 넘어서 본 사람만이 경계너머의 한계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한 번도 경계를 넘어서지 못한 사람은 자신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알 수 없다. 경계를 넘나들면서 한계를 파괴할 때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자신이 설정해놓은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한계를 파괴할 수 있는 색다른 책을 읽어야 한다. 색다른 책이란 자신이 읽으면 불편한 책이다.

책에는 자신의 신념과 가치판단을 지원하고 옹호하는 책도 있지만 자신이 옳다고 믿었던 신념체계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책도 있다. 우리는 두 가지 책을 골고루 읽어내야 한다. 전자의 책만 읽을 경우 안하무인, 좌정관천의 안주하는 인식으로 머물러 더 이상 인식의 깊이를 심화시킬 수 없다. 항상 내 생각도 틀릴 수 있다는 열린 마음으로 세상의 생각을 받아들여야 한다. 한편 후자의 책만 읽을 경우 인식의 줏대를 잡을 수 없게 된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쉽게 휘둘릴 수 있다. 나의 주관은 다른 사람의 주관과 주관 사이에서 서서히 싹이 자라서 마침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하지만 그런 주관도 꽃이 지는 가을을 지나 겨울을 맞아 새로운 싹을 준비하는 겨울 동안 부질없는 주관이었다는 점을 자각하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 그래서 겨울동안 또 다른 주관의 싹을 준비하기 위해 자신의 주관이 얼마나 기반이 없는 가운데 무성하게 자란 관념의 덤불이었는지 깨달아야 한다. 나목으로 한 겨울을 버티는 나무처럼 그동안 쌓아올린 관념의 허식과 허장성세를 모두 걷어내고 홀로 겨울을 버텨내면서 내 인식의 본질과 뼈대가 무엇인지를 깨닫는 추운 겨울의 고독과 고뇌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쌓아 올리는 인식의 축적은 관념의 야적장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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