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신선하게, 유쾌하게, 그러나 뼈저리게
청춘! 신선하게, 유쾌하게, 그러나 뼈저리게
  • 김명지 기자
  • 승인 2010.10.09
  • 호수 13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트콤 속에 숨 쉬는 청춘들의 이야기

영화 「드림캐쳐」에서 커티스 대령은 ‘평범한 미국인’을 “셰보레 자동차를 몰고 월마트에서 쇼핑을 하며 「프렌즈」의 에피소드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보는 사람들”이라 정의한다. 이 대목에서 당시 「프렌즈」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우리나라 청춘시트콤의 효시라 불리는 MBC 「남자 셋 여자 셋」은 「프렌즈」와 유사한 구조를 통해 큰 성공을 거뒀다. 「남자 셋 여자 셋」은 우리나라 청춘시트콤 문화의 시발점이 됐다.

청춘시트콤의 입지 다지기
시트콤(Sitcom)이란 Situation Comedy의 약자로 고정된 무대와 동일한 등장인물들로 구성된다. 우리나라 최초의 시트콤 「오박사네 사람들」이 큰 성공을 거둠으로써 각 방송사는 경쟁적으로 시트콤 제작에 열을 올린다. 시트콤의 유행의 원인에 대해 박기수<국문대ㆍ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두 가지를 지적했다. 상대적으로 적은 인원과 세트 비용, 그리고 선발 시트콤들의 선전이다. 방송사들은 소속 배우들을 유지하고 활용하기 위해 일일드라마를 제작해왔으나 이는 제작비용의 부담이 너무 컸고 그 대안으로 시트콤이 부상하게 됐다. 또 「LA 아리랑」과 같은 몇몇 시트콤들의 모험적 시도와 성공적 결과가 시트콤 부흥의 발판을 마련했다.

「남자 셋 여자 셋」의 극본을 맡았던 김현희 작가는 저서 「방송작가 날마다 시트콤 가끔은 쇼」에서 “「남자 셋 여자 셋」 제작 당시엔 SBS 시트콤 「LA 아리랑」의 히트 이후 다른 시트콤들이 줄줄이 실패해 시트콤에 대한 기대치가 많이 떨어졌던 상태”라며 “「남자 셋 여자 셋」은 그런 상황에서 PD와 작가들이 모두 난생 처음 맡은 시트콤이었던 탓에 부족한 점이 많았다”고 전했다. 이처럼 다소 어려운 상황에서 시작한 「남자 셋 여자 셋」은 1998년 평균 20%이상, 1999년 종영 때엔 36%에 달하는 유례없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남자 셋 여자 셋」이 인기를 얻는 동안 다른 방송사들은 경쟁시간대에 비슷한 포맷을 갖춘 청춘시트콤을 제작했으나 「남자 셋 여자 셋」의 아성을 따라가지 못했다. MBC 역시 「남자 셋 여자 셋」 이후 여러 시트콤을 선보였으나 그만한 인기를 얻진 못했다. 그러던 중 「논스톱」의 후속작 「뉴논스톱」이 큰 인기를 얻으며 청춘시트콤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 천하의 짠순이 ‘경림’과 그런 ‘경림’을 지켜주는 남자친구 ‘인성’, 능구렁이 ‘태우’ 등 독특한 캐릭터들의 향연으로 「뉴논스톱」은 저녁 7시대 청춘시트콤의 재부흥을 꾀할 수 있었다. 최근에 선보였던 「지붕 뚫고 하이킥」도 가족시트콤 속 청년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큰 호응을 받았다. 지방대생으로서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정음’과 가난한 ‘세경’ 등의 극단적이긴 하지만 현실성을 갖춘 캐릭터들은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청춘시트콤 들여다보기
저서 「시트콤 구조 분석론」에서 최이정<한남대ㆍ멀티미디어학부> 교수는 “시트콤은 코미디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드라마의 내러티브 구조와의 접목을 통해 독특한 특성이 드러난다”며 “가족 시트콤이 가족 간의 갈등을 웃음으로 연결시키는 것이라면 청춘시트콤은 젊은이들의 일상생활 속의 웃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전했다. 젊은이들의 얘기로 가득 찬 청춘시트콤만의 유행 원인은 무엇일까.

1980년대 중반까지 대학에는 독특한 저항 문화가 있었으나 1980년대 후반 운동권의 침체와 함께 대학 문화는 공백기를 맞게 된다. 그러나 이어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데 박 교수는 “1990년대에는 재밌고 가벼운 새로운 문화를 추구하는 움직임이 생긴다”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는 청춘시트콤에 호응하고 이것이 전체 시트콤의 붐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라고 전했다. 당시 청춘시트콤의 시청자였다는 김동주<영양교육대학원ㆍ석사과정 5기> 씨는 “흐름이 긴 드라마를 꼼꼼히 보는 것을 번거로워 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1회적인 에피소드로 가볍게 구성된 시트콤이 인기를 끌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청춘시트콤을 포함한 시트콤 시장은 비교적 침체돼있는 상태다. 현재 공중파 채널에서는 간간이 가족시트콤만을 방영할 뿐이다. 이런 현상은 청춘시트콤의 대유행 이후 아류작이 만들어지며 식상한 소재들이 반복되고 이에 따라 캐릭터들도 전형적으로 변한데에 그 이유가 있다. 시트콤은 아니지만 코믹함을 갖춘 드라마 등의 장르들이 출현함으로써 시트콤만의 특수한 기능을 가져간 것도 시트콤의 입지를 좁힌 원인이다.

네 삶도 내 삶도 청춘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에 이어 「뉴논스톱」을 집필했던 박민정 작가는 저서 「방송작가가 말하는 방송작가」에서 “요즘 학생들은 전보다 더 개인주의적인 면이 강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는 ‘올인’하나 관심 없는 건 철저히 외면하는 성향”이라며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해 그에 걸 맞는 캐릭터를 생산해내고자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탄생한 것이 「뉴논스톱」의 캐릭터 ‘동근’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몰두하는 짓궂은 악동인 ‘동근’을 통해 청년 사회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청춘시트콤은 현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의 고민거리를 함께 공유한다. 「논스톱 4」의 고시생 ‘앤디’는 “청년 실업이 30만에 육박하는 이 때에 이렇게 웃고 떠들 시간도 있냐”는 유행어를 만들어냈다. 언론에서 한창 경제 침체와 증가하는 청년 실업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던 때의 일이다. 뿐만 아니다. 최근 평균 시청률이 20%를 웃돌며 종영한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지방대생인 ‘정음’은 얼떨결에 자신의 학력을 위조한 과외 선생이 되고 만다. ‘세경’은 자신이 도우미로 있는 집의 아들이자 의사인 ‘지훈’을 좋아하지만 쉽사리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다. 학벌주의에 소외 받고 계층 차이에 좌절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통해 젊은이들의 씁쓸한 삶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처럼 청춘시트콤에 등장하는 청년들의 생활상과 인간적 고민들의 문제는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현재 취업 준비 중에 있다는 윤성미<서울시ㆍ중랑구 27> 씨는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을 보면서 남일 같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며 “‘정음’과 같은 지방대 출신은 어떤 방식으로든 학력으로 차별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마음을 쓰리게 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청춘시트콤을 통해 따뜻하고 긍정적인 청춘의 모습을 볼 수도 있다. 서명석<공대ㆍ토목공학과 05> 군은 “‘경림’을 열렬히 좋아했던 ‘인성’ 캐릭터가 기억에 남는다”며 “아무런 조건도 요구하지 않고 순수하고 풋풋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대학생들의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시트콤의 이러한 현실 반영에 대해 박 교수는 “대부분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평을 받는다”면서도 “그러나 최근의 캐릭터들은 사회문제와 같은 현실적 문제들을 섬세하게 다뤄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일러스트 김나래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