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축보다 자성이 필요합니다
자축보다 자성이 필요합니다
  • 김규범 편집국장
  • 승인 2010.10.02
  • 호수 13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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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약 40년 전 일입니다. 당시 독일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폴란드 바르샤바에 있는 유대인 학살 추모비 앞에서 헌화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갑자기 추모비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역사적 책임에 대해 사죄합니다. 예고되지 않았던 총리의 돌발행동에 보좌관들은 당황했지만 세계는 감동하며 독일의 역사청산 의지를 다시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 후 브란트 총리의 정책과 행보는 그의 눈물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했지요.

위 사건이 별일 아닌 것 같지만 그의 사과 한 번은 실로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브란트 총리는 독일의 수상이기 전에 나치의 피해자였습니다. 반 나치 투쟁을 하다가 나치에 쫓겨 망명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명백히 피해자이며 사과를 받아야 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독일을 대표해 지난날 독일이 저지른 과오를 사과했습니다.

왜였을까요. 자신의 잘못도 아니며 심지어 피해자인 그가 독일의 과오를 무릎까지 꿇으면서 사과한 이유 말입니다. 좋든 싫든 그 역시 독일인이며 독일 정부를 이끌고 있는 수장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이 아닌 자신의 신분과 공동체를 먼저 생각한 것이지요. 피해자이지만 자신이 결국 독일인이고 독일의 정치인이기에 일정부분 책임을 느끼고 있는 셈입니다. 또 독일이 전범국이란 오명을 씻어내고 새로운 도약을 하기 위해선 자신의 사과가 꼭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당시 세계는 독일에 대해 따가운 눈초리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독일에는 언제 또 전쟁을 일으킬지 모르는 국가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지요. 유대인과의 악화된 감정은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독일이 계속 그런 상황에 처해있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그가 나서서 사과를 한 것입니다.

그 후 제2, 제3의 브란트 총리가 독일에서 등장했습니다. 정치인은 물론이고 일반 국민들까지 나치의 범행에 대해 사죄하고 눈물 흘리기 시작합니다. 브란트 총리의 사과가 독일 사회 전체를 각성시키며 나치에 대한 올바른 역사의식을 견고하게 세울 수 있는 계기가 된 셈입니다.

MBC 뉴스데스크가 방송40주년을 맞이해 토크쇼를 연다고 합니다. 역대 진행자들이 참석한다고 하니 주로 뉴스데스크가 걸어온 길에 대해 논하는 자리가 되겠지요. 아직 방송되지 않아 어떤 내용일지는 지켜봐야겠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자리가 자축만 하는 자리가 돼선 안 된다는 점입니다. 지난 날 있었던 뉴스데스크 혹은 MBC의 과오를 반성해야 합니다. 아시다시피 뉴스데스크는 MBC의 간판프로그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만큼 상징성이 큰 프로그램의 4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나오는 지난날 저지른 과오에 대한 사과는 큰 영향을 줄 것입니다. 지난 독재정권 시절 우리나라 언론인들의 잘못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정권을 찬양하고 ‘땡전뉴스’라는 비아냥거림까지 들었던 게 우리나라 언론이었습니다. 그 오명은 MBC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런 MBC가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사죄한다면 긍정적인 효과를 부를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반대로 과오들을 어물쩍 넘어간다거나 생략해버린다면 이는 또 하나의 과오가 될 것입니다.

역사를 정리하려면 앞으로 나아가던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려 과거와 맞대면해야 합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제주 4.3사건에 대해 정부를 대표해 사과한 연설 중 한 마디를 빌려올까 합니다. ‘과거의 역사를 정리하고 이제는 미래를 함께 생각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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