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시각부터 통행금지입니다”
“지금 이 시각부터 통행금지입니다”
  • 김명지 기자
  • 승인 2010.09.04
  • 호수 13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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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시대 흐름 속 야간통행금지

장면 1. “벌써 12시가 다 돼가. 우리 빨리 집에 가지 않으면 경찰한테 쫓겨서 여관에서 자야할 지도 모르잖아.” 사이렌이 울릴 시간이 다가오자 함께 놀던 친구가 귀가를 걱정했다. 이미 통금을 어겨 경찰서에 끌려가 본 적이 있는 그의 얼굴에는 초조함이 가득했다.

장면 2. “미안한데 집에 들어가야 돼. 통금이 있거든.” 대학 새내기 A양은 과 행사 뒤풀이 자리에 참석하던 중 친구들에게 이 말을 남기고 일어선다. 집으로 향하는 내내 A양의 마음속엔 아쉬움이 가득하다. 그녀는 부모님의 통금이 왜 남의 집 부모님들보다 관대하지 못한지 자신의 처지를 한탄한다.
장면 1과 2는 각 시대 통금 문제의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통행금지(이하 통금)는 과거와 많이 다르다. 사회의 체제가 변했고 그에 따라 사람들의 의식도 숱한 변화를 겪은 만큼 통금도 변해왔다.

조선시대에도 있었던 통금
통금의 시초하면 군부정권을 생각하기 쉬우나 그것은 사실 조선시대에도 존재했다. 영국의 여행가 이사벨라 비숍의 저서 「Korea and her neighbours」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도시에서는 매우 신기한 제도가 실시되고 있었다. 저녁 8시 경이 되면 대종이 울리는데 이것은 남자들에게는 귀가할 시간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며 여자들에게는 외출하여 스스로 즐기며 또한 그들의 친우를 방문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중략)…자정이 되면 다시 종이 울리는데 이때면 부인들은 집에 돌아가야 했고 남자는 외출하는 자유를 갖게 된다.』
여성들과 남성들의 통금 시간을 다르게 설정해 각자의 자유로운 생활을 존중했다는 점에서 이 기록은 많은 이들의 이목을 끌었다. 논문 「도시의 휴식과 통행금지 성별시차제: 이조 도시 사회상 연구」에 따르면 통금이 조선시대 실록에 처음 등장한 때는 1401년 5월이다. 대체로 오후 8시부터 새벽 4시 반까지 이러한 방식으로 통금이 시행됐다고 하는데 이것이 지나치게 주민 생활을 불편하게하는 경향이 있어 이후 점차 완화됐다고 한다.

미군정과 함께 부활한 통금
1962년 6월 6일자 경향신문에는 통금에 관한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실렸다. 통금시간이 임박한 밤에 과속으로 달리던 버스 10대가 적발되어 운전수 전원이 면허정지처분을 받고 즉심에 회부된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통금 시간이 가까워지면 버스 운전수들의 과속으로 인해 교통사고가 발생하는 일이 잦아 경찰이 특별히 단속 중에 있다는 내용이다. 이 사건은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통금에 민감해했는지를 보여준다.
광복 이후 미군정이 시작되면서 한국 사회에는 새로운 통금이 시작됐다. 1945년 9월 군정사령관 존 하지 중장의 포고로 시작된 통금은 대개 밤 12시부터 새벽 4시까지 일반인들의 통행을 금지했다. 1982년 전두환 정권에서 유화책의 일환으로 통금을 해제할 때까지 이 정책은 무려 37년 동안 시행됐다.
이에 대해 유홍준<성균관대ㆍ사회학과> 교수는 “통행금지는 안보 등의 이유로 실시됐으나 민주화로 인한 시민 의식의 성장과 경제 발전으로 인한 내수시장 활성화의 필요성 등으로 폐지됐다”며 “이는 권위주의 정부 시절 고위 공무원이나 기자들을 제외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제도로서 사회 통제의 기능을 수행했다”고 덧붙였다.
서은주<연세대ㆍ국학연구소> 연구교수 또한 논문 「‘한국적 근대’의 풍속」에서 “반공 이데올로기 강화와 위기감 조성을 위해 통행금지를 시행했으나 그것을 해제하는 명분은 ‘신체의 자유보장 및 군사정권의 억압심리 해소’였다”며 “이는 통행금지가 일제 강점기 후 또 다른 억압임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전했다.

과거 사회와 현재 가정 속의 통금
영화 「쇼생크탈출」에서 50년 간 감옥에 갇혀있다 나온 ‘브룩’은 바깥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다. 감옥에서의 억압에 적응된 ‘브룩’은 사회에 나와 일을 하는데 여러 어려움을 겪는다. 자신도 모르게 화장실에 가는 일조차 허락을 구하는 ‘브룩’의 모습에서 ‘제도화되다(Institutionalize)’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정병호<국문대ㆍ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자신의 행동에 자율권을 갖지 못하는 ‘브룩’의 모습과 통금제도가 시행된 우리 사회의 모습이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될 수 있다”며 “이런 규제를 정해 놓는 것은 권력층이 자신의 권력을 일상적으로 또 가시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평소에 도둑질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경찰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으나 통금은 개인적 생활 자체를 정부에게 감시 받는 것”이라며 “정부 권력이 일반일들을 항상 통제하고 있다는 것을 수시로 인식시켜 국민들을 구속에 길들여지도록 하고자 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정 교수는 “야간통행금지 정책의 명분은 방범, 방첩(간첩행위를 막는 일) 등이었지만 실제로 그것은 꼭 시간을 정해놓고 이뤄지는 것만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김명수<국문대ㆍ문화인류학과> 교수 또한 통행금지 제도에 대해 “통금이 해제되면 범죄율이 증가할 것이란 게 이 제도의 근거였지만 실제로 해제가 되고나니 놀라울 정도로 질서가 지켜졌다”며 “이런 상황으로 봤을 때 야간 통행금지는 사회적으로 이용된 허구적 의식이었을 뿐이다”고 분석했다.
오늘날에도 몇몇 가정 내에서는 통금이 존재한다. 이는 이전의 제도적 통금과는 전혀 다른 문제지만 많은 학생들이 이에 대해 고충을 겪고 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지는 행사나 친목 모임에 참가하지 못하는 대학생들의 모습이 그 중 하나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가정 내에서의 통금 문화가 길게 유지되는 경향이 있다. 그 이유에 대해 김 교수는 “대학교를 통학하는 학생의 비율이 미국 등 서양에 비해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정 교수는 “개인적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대학생들은 자율적으로 자신의 행동을 관리할 수 있다”며 “가정 내에서도 그렇지만 기숙사와 같이 그것을 집단적으로 범주화해 통제하는 것을 옳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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