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카에다, ‘최강’ 미국의 심장에 총구를 겨누다
알 카에다, ‘최강’ 미국의 심장에 총구를 겨누다
  • 김명지 기자
  • 승인 2010.09.04
  • 호수 13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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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1년 9월 11일 CNN을 비롯한 미국의 언론은 물론 전 세계를 충격과 공포에 휩싸이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쌍둥이 빌딩이라 불리던 뉴욕 맨해튼 세계무역센터가 테러단의 소행으로 보이는 납치 비행기와의 충돌로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 것이다. 거대한 빌딩이 엄청난 먼지를 뿜어내며 불길에 휩싸이는 모습이 CNN을 통해 중계됐고 세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미국 정치의 중심부인 국방부 펜타곤 건물에서도 화재가 발생했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된 이 날 미국의 상황이 바로 미국과 세계 여러 나라를 기함하게 만든 ‘9ㆍ11 테러’ 사건이다.

부시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정부는 테러리스트 ‘빈 라덴’과 테러집단 ‘알 카에다’를 이 사건의 용의자들로 지목했다. 사건의 원인 중 하나로 이슬람계와 유대계 간의 뿌리 깊은 갈등이 꼽힌다. 홍용표<사회대ㆍ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슬람 내부에서의 빈부격차로 인해 극단주의자들이 생겨난 것도 이런 상황을 심화시켰다”고 말했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전에 외부의 군사적 위협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고립 정책을 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 개입주의를 실행하며 다른 나라에 대한 간섭을 시작했지만 그때까지도 여전히 자국의 피해를 예상하지는 못했다. 이런 미국에 있어 9ㆍ11 테러는 본토가 공격당한 최초의 사건이었다. 홍 교수는 “9ㆍ11 테러로 인해 미국의 안보정책은 군사적 측면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환됐다”고 말했다. 탈냉전 시대에 접어들면서 주로 국제 경제와 무역, 환경, 기아 등 비군사적인 문제에 집중해왔던 미국이 9ㆍ11 테러를 계기로 안보 체계에 대해 각성하고 대외 정책을 강경화했다는 것이다.

미국의 이러한 안보정책의 변화는 대북정책에도 영향을 미쳤다. 논문 「9.11 테러사태 이후 미국의 대북정책과 북ㆍ미 관계 전망」에 따르면 출범 때부터 클린턴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해왔던 부시 정부는 테러 사건 이후 대북관계에 더욱 민감해졌다. 이에 따라 남ㆍ북 관계가 악화되고 한ㆍ미 관계가 상당히 복잡해졌다. 북한의 제네바 협의 불이행이나 농축우라늄 문제 등에 대해 맹비난하던 미국이 급기야 북한을 ‘악의 축’이라 칭하기도 했다.

홍 교수는 이 역시 9ㆍ11 테러 이후 핵과 미사일에 대해 민감해진 미국의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미국은 자국 내에서 철저한 검사와 수색은 물론 개인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법률을 만들기도 했다.
9ㆍ11 테러가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또 다른 이유는 그것이 초국가적 단체에 의해 발생한 사건이었다는 점이다. 홍 교수는 “탈냉전 이후 WMD(대량살상무기)에 대해 긴장 태세를 갖춰왔던 미국이지만 특정한 국가가 아닌 단체에 공격을 당한 것은 매우 충격적인 일이었다”며 “미국이 이때부터 테러 집단과 같은 ‘초국가적 단체’에 대한 경계를 강화했다”고 말했다.

미국 현지 시각으로 지난달 31일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아프간 전쟁의 공식 종전을 선언했다. 미국의 ‘대테러전쟁’의 일환으로 시작된 이 전쟁의 군인들은 이로써 긴 전투임무를 마쳤다. 전쟁 명분으로 내세운 것들을 제대로 성취하지도 못한 채 끝난 이 전쟁은 미국과 이슬람 테러 단체들 간의 깊은 갈등에 대해 많은 이들에게 생각의 여지를 남기고 종지부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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