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역사의 축소판 강화도를 찾다
우리나라 역사의 축소판 강화도를 찾다
  • 심소연 수습기자
  • 승인 2010.06.06
  • 호수 13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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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강화지석묘에서는 선조들의 지혜를 느낄 수 있다.
‘강을 끼고 있는 아름다운 곳’이라는 의미를 지닌 강화도는 그 이름에 걸맞은 광경을 많이 지닌 섬이다. 강화도의 북쪽에 위치한 평화전망대를 가면 가깝지만 먼 북한을 바라 볼 수도 있다. 인천광역시에 위치한 강화도는 우리나라 역사의 축소판이라고 불릴 정도로 역사적 사건이 많이 있었던 곳이다. 그리고 그 흔적들은 현재까지 남아 생생한 역사 교육의 현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계급사회의 상징, 고인돌

푸른 잔디공원 한가운데에 위치한 거

▲ 2.고인돌 문화공원에서 휴일을 맞은 가족들이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다.
대한 돌무덤. 강화도 고인돌 공원에 위치한 강화지석묘의 모습이다. 커다란 두 돌이 그보다 더 거대한 돌을 받치고 있는 모습은 무덤보다는 거대한 건축물에 가까운 느낌을 준다.

수많은 인력을 동원해 만들어지는 고인돌은 그 크기가 클수록 무덤 주인이 높은 권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고인돌은 과거 계급사회가 존재했음을 알려준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전북 고창과 전남 화순, 강화도를 중심으로 분포돼 있고 세 곳 모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공원주변에는 각 나라와 지방들의 고
▲ 3. 성공회강화성당은 2층한옥으로서 건축학적으로도 유명하다.
인돌이 함께 배치돼있어 역사적 유물을 한 번에 접할 수 있다. 공원 내에 있는 고인돌 제작 체험장에는 아빠와 함께 고인돌을 만드는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띤다. 아이들이 이런 현장에서의 체험을 통해 역사가 먼 곳에 있는 존재가 아닌 바로 옆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역사로의 발자취, 용흥궁ㆍ성공회 강화성당

‘용이 일어난 궁’이라는 뜻을 지닌 용흥궁은 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거주하던 궁이다. 원래 초가집의 형태를 지녔던 용흥궁에서 철종은 그의 어린시절을 보냈다. 내부로 들어가 본 용흥

▲ 4. 형형색색의 연등이 전동스의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다.
궁의 모습은 가정집 형태를 보이는데 과거 철종이 사용했을 우물과 작은 정원, 커다란 나무들을 바라보면 그의 정취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

용흥궁 뒷문으로 나오면 몇 발자국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성공회 강화성당이 있다. 성공회 강화성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성당으로 당시 성공회에 생소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고자 한식으로 지어졌다. 지붕 위의 십자가가 성당임을 나타내는 유일한 상징으로 보일정도로 성공회 성당은 한옥의 느낌을 많이 준다. 하지만 서양식 건축기법을 곳곳에 응용해 서양과 동양
▲ 5. 광성보는 학생들이 견학장소로 자주 찾는 장소다.
의 조화가 잘 어우러지도록 한 노력이 엿보이는 건물이다.

▲ 6.전등사를 찾은 이들은 윤장대 앞에서 기도를 드리곤 한다.
전쟁을 승리로 이끌다. 광성보ㆍ덕진진ㆍ초지진

강화도는 한강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 과거 적들의 표적이 되곤 했다. 이를 막기 위해 강화도 해변에는 광성보, 덕진진, 초지진 등 다양한 진영들이 설치됐다. 신미양요시기 미군의 침입과 일본의 공격으로 대부분의 진이 함락되었지만 지금은 많이 복원됐다.

▲ 7.과거 격전지였던 덕진진은 한가로운 모습으로 남아있다.
많은 진영 중에서도 규모가 큰 편인 광성보에 들어서면 거대한 성곽문 안해루가 보인다. 안해루에 들어가 왼쪽을 바라보면 광성*돈대가 서있다. 과거 사람들이 들어가 소포를 겨누고 있었을 돈대 내부의 공격용 구멍에 들어가 보면 멀리 푸른 바다가 보인다. 지금은 적막한 바다지만 전쟁시기에는 외국군의 배로 가득 찼을 것을 생각하면 당시 광성보안에 집결해있던 군사들의 마음이 느껴진다.

광성보에서 해안순환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걸음을 옮기면 덕진진과 초지진이 있다. 광성보에 비하면 다소 아담해 보이는 초지진에는 돈대와 오래세월을 보낸 소나무 한그루가 서있다. 초지진은 그 규모는 작지만 김포로 연결되는 초지대교의 입구에 맞닿아 있어 만남의 장소 역할을 하고 있다.

군사적 요충지와 서고의 상징, 전등사

초지진에서 자동차를 타고 약 15분정도 강화도 안쪽으로 들어서면 전등사에 닿는다. 정족산성에 위치한 전등사는 군사적 요충지 기능과 함께 조선왕조실록과 왕실의 족보를 보관하는 정족사고의 역할을 담당했다.

연등이 안내하는 길을 따라 걷다보면 양헌수 승전비와 윤장대를 볼 수 있다. 윤장대는 책장에 경전을 넣고 축을 단 것으로 한 바퀴 돌리면 경전을 한 권 읽은 효과가 있다고 전해진다. 비가 오는 날씨에도 윤장대 앞에 서서 기도하는 할머니의 모습은 역사책에 그려진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예나 지금이나 소원을 비는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은 한결같아 보인다. 윤장대에서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면 우리나라 보물로 지정된 대웅전, 약사전, 범종들이 역사유적의 향을 내며 남아있다.

전등사에는 두 개의 범종이 있는데 보물로 지정된 종각과 근래에 만들어진 종루다. 종루가 내는 소리를 들으며 사람들은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생각에 잠긴다. 그 짧은 시간동안 하루 내 체험한 강화도의 역사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보면 좋겠다.

한 나절이면 몇 천 년의 역사를 돌아 볼 수 있는 강화도는 한 권의 역사책과 같다. 잠깐의 시간을 내어 친구와 함께 버스를 타고 강화도의 해안도로를 달려보자. 마음 속에 여유와 함께 역사의 현장이 담겨지는 게 느껴질 것이다.

글ㆍ사진 심소연 기자 사진 류민하ㆍ박효은ㆍ장보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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