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직시는 삶의 가치를 드높이리
죽음의 직시는 삶의 가치를 드높이리
  • 유현지 기자
  • 승인 2010.05.16
  • 호수 13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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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의 마지막 단계를 연구하는 죽음학

죽음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 있다. 국내에서는 일반적으로 ‘죽음학’이라는 단어로 번역하는 이 학문은 죽음을 뜻하는 그리스어 'Thanatos'와 학문이라는 뜻의 ‘logy’의 합성어다. 일본에서는 ‘생사학’, 중국에서는 ‘사생학’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종종 동의어로 사용된다. 죽음 연구자들은 죽음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과 함께 '죽음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역설하고 있다. 이들은 왜 ‘삶의 끝’ 죽음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죽음학에 대해 알아보자.

죽음학이란 무엇인가
죽음학이란 죽음과 관계있는 주제를 학제적으로 다루는 학문이다. 인간의 삶과 죽음이 곧 영혼의 성숙이라는 명제를 기본으로 한다. 이는 필리프 드 모르네가 남긴 ‘행복하게 죽기 위해서는 사는 법을 알고 있어야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죽는 법을 알고 있어야한다’는 말로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즉 죽음학은 죽음을 외면할 것이 아니라 직시함으로써 삶의 가치를 높여야 한다고 말한다.

건국대에서 교양강의 ‘삶과 죽음의 철학’을 강의하는 전병술<건국대ㆍ동양철학> 교수는 인류가 만들어 낸 마지막 금기로는 ‘에로스’와 ‘타나토스’가 꼽힌다고 말한다. 즉 성과 죽음에 대한 인류의 외면은 인위적으로 지속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연구가 진행중 일 뿐 아니라 성 교육이 일반화됐다. 이는 성에 대한 언급을 금기시함에 따라 발생하는 문제와 갈등들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

▲ 인구 10만 명당 자살수


하지만 죽음에 대해서는 아직도 그 금기의 장벽이 허물어지지 않았음은 물론이며 현대의학의 발달에 따라 더욱 기피의 대상이 됐다. 죽음이 의학의 ‘패배’라는 생각이 굳어지면서 죽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전 교수는 “과거의 죽음은 결코 개인의 몫이 아니었다”며 “농경사회의 경우 언제나 자신이 살던 집안의 잠자던 방에서 온가족이 보는 가운데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에 죽음은 결코 고독하거나 두렵지 않았다”고 말했다.

현대의 죽음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인간을 타율적인 죽음으로 이끌었고, 죽음학자들은 이에 대해 삶의 마지막을 ‘인간답게’ 보내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게 됐다. 인간의 죽음을 소외시키는 ‘죽음을 추방하는 사회’를 변혁하고자 하는 죽음학은 크게 △죽음에 대한 규명 △사후세계에 대한 연구 △죽음에 대한 교육으로 이뤄진다.

죽음에 대한 규명은 종교에서 보는 죽음의 관점 연구를 통해 진행된다. 동ㆍ서양에서 이뤄지는 종교의 죽음철학을 비교하며 연구자들은 보편적인 현상을 발견했는데, 죽음을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으로 여겨야한다는 기본 명제가 동일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죽음 자체에 대해 의미를 찾음으로써 인간의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고자 한다. 사후세계에 대한 연구는 사후세계를 경험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뤄진다. 전문가들은 이들의 경험담에서 보편적인 특성을 끌어낸다.

최준식<이화여대ㆍ한국학과> 교수는 사후생을 연구하는 이유로 “죽은 뒤의 세상이 없으면 지금 삶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고 답했다. 죽음학은 결국 죽음을 통해 현재 삶을 보다 충실하게 살 수 있게 돕는다.
전 교수는 “사실상 죽음학이란 연구의 방법론적 측면에서 학문이라 규정하기 힘들지만 죽음학이라는 분야 하에 심리학, 사회학, 철학 등 다양한 논의들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죽음과 관련해 다양한 죽음학 안에 포괄될 수 있는 연구들이 증가하고 있으며, 죽음을 직시함으로써 얻어지는 연구결과는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심리학자 빅터 플랭크다. 프로이트, 아들러와 함께 3대 심리학자로 손꼽히는 빅터 플랭크 박사는 아우슈비츠수용소에 수감됐던 경험을 바탕으로 혁신적인 심리학적 이론을 제시했다. 이는 아우슈비츠에서 직면했던 죽음을 기초로 했는데 죽음을 직시함으로써 인간은 어떤 최악의 조건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명제를 기초로 한다.

빅터 박사의 이러한 이론은 기존의 프로이트와 아들러의 의견과는 상반되는 연구결과다. 프로이트의 경우 성적충동을 인간 삶의 원동력으로 지목했고, 아들러는 어린시절의 콤플렉스를 인간의 동력원으로 지목했다. 이에 반해 삶의 의미를 가질 때 비로소 인간 본연의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빅터 박사의 이론은 부정적인 시각에서 벗어난 연구결과 였다. 또 빅터 박사는 우리가 추구하는 능동적이고 자주적인 생활방식이 삶의 원동력이 될 수 있음을 주장했다. 이는 이후 죽음학에서 죽음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주요 근거로서 활용됐다.

죽음교육의 필요성
죽음교육에 대한 논의는 시 「황무지」의 저자 T.S.엘리엇이 죽음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을 제안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죽음교육은 죽음의 문제를 단지 죽음을 의식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죽음의 공포에서도 이를 외면하거나 도피하지 않고 자신의 일로 받아들여 그 의미를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실제로 교양강의 ‘삶과 죽음의 철학’을 듣는 익명을 요구한 A양은 “강의를 들으며 죽음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봤다”며 “죽음이 나와 먼 개념이 아님을 느꼈을 때 내 삶의 가치를 보다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넓은 개념에서 죽음교육은 다가올 죽음에 대해 개인과 사회를 준비시키는 예방 교육, 어떤 유형의 죽음일지라도 그것에 직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개입, 죽음과 관련된 이해와 그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사후 개입 및 재활까지 포괄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죽음교육의 필요성이 주로 제기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2008년 조사에 따르면 2008년도 10만 명당 자살자 수는 26명으로, 1997년 13명에 불과했던 자살자 수에 비해 지속적으로 증가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에 뽑히는 수치를 기록했다. 국내의 사망 원인 중 자살은 암, 뇌혈관 질환, 심장 질환에 이어 4위를 차지한다. 전체 사망 원인 중 26%에 해당하는 수치다.

오진탁<한림대ㆍ생사학연구소> 소장은 “우리나라의 경우 죽음문화, 죽음의 질, 죽음준비교육, 임종방식 등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일러스트 김나래, 주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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