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는 시대, 변신하는 박물관
변화하는 시대, 변신하는 박물관
  • 문종효 기자
  • 승인 2010.05.15
  • 호수 13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발굴중심에서 전시ㆍ교육영역 강화해

캠퍼스 곳곳을 돌아다니다보면 자주 지나치지만 별다른 인식을 하지 못하는 곳이 있다. 바로 한양대 박물관이다. 건물 앞에 있는 카페에서 과제도 하고 여가시간을 즐기기도 하지만 정작 카페 뒤에 있는 박물관에는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애지문과 가장 가까운 건물 중 하나지만 우리의 대학생활권에 있어서는 가장 멀리 위치한 것이다. 최원진<경영대ㆍ경영학과 10> 군은 “학교에 박물관이 있다는걸 최근에서야 알았다”며 “주위에도 이에 대해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시대적 목표에 의해 탄생한 대학박물관
우리나라 대학박물관은 1929년 세워진 연세대 박물관을 효시로 한다. 이후 고려대 박물관, 이화여대 박물관, 서울대 박물관 등이 차례로 세워지면서 점차 증가하기 시작했다.

대학박물관 설립 붐이 일어난 데는 1955년 「대학설치기준령」이 큰 영향을 미쳤다. 이 기준에 의하면 종합대학교를 설립ㆍ승격하기 위해 학교 측에서는 대학박물관을 설치해야했고 1965년에는 이 규정이 권고사항에서 의무사항으로 강화됐다. 1982년까지 적용된 이 법률은 비록 법적 강제조항이긴 했지만 대학박물관의 수를 증가시키는데 크게 일조했다. 2010년 현재 전국의 대학박물관은 110개관으로 전체박물관 가운데 약 1/3을 차지하고 있다.

정부에서 대학박물관 설립을 의무화한 것은 한국전쟁에 기인한 바가 크다. 전쟁으로 인해 대부분의 시설물들이 초토화된 상태에서 피폐한 국민들의 문화생활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박물관의 역할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정부 및 기관에서 설립한 국ㆍ공립 박물관은 수가 적었기 때문에 이 역할을 제대로 담당할 수 없었다. 자연히 전국에 퍼져있는 대학교들이 이에 대한 대안으로 부상했다.

안성희<한국대학박물관협회ㆍ하계연수원> 국장은 “박물관은 국가적 자부심을 높여주고 문화의 질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며 “박물관 문화권을 전국적으로 활성화시키기 위한 수단으로의 대학박물관 건립은 당시 상황에서 볼 때 필수불가결한 선택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초창기 대학박물관들이 이런 역할을 효율적으로 수행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초기의 대학박물관들은 발굴 및 학술적인 목표에 무게를 두는 경향이 강했다. 이는 당시 전국의 유물 및 유적을 발굴할 수 있는 장비를 갖춘 곳이 국ㆍ공립박물관과 대학박물관밖에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발굴한 유적을 박물관에 소장할 수 있고 정부 지원금이 제공된다는 점이 강하게 작용했다. 안정적인 수익이 담보되지 않는 대부분의 대학박물관들이 이같은 방법을 통해 재정을 마련해나갔다.

김승<한양대학교박물관ㆍ행정팀> 과장은 “1990년대 초ㆍ중반까지 대학박물관을 포함한 많은 박물관들이 전시 기능보다 발굴본부 및 창고의 역할을 수행해온 것이 사실”이라며 “학술적인 목표나 문화재 조사를 위한 발굴은 사업자나 정부에서 외부활동비가 주어졌기 때문에 많은 박물관들이 이에 매달렸다”고 전했다. 
대표적인 것이 우리학교 박물관이다. 1979년 설립된 한양대 박물관은 초기에 발굴작업에만 힘을 기울였다. 이로 인해 박물관은 오랫동안 관람객에게 공개되지 않고 발굴한 유적을 쌓아놓는 창고의 역할만 수행했다. 미사리선사유적, 이성산성 등 수많은 유적지에서 발굴활동을 진행했지만 이를 대중에 공개하지 않아온 것이다. 결국 세워진지 20여 년이 지난 2003년에서야 한양대 박물관은 대중에게 공개됐다.

시대변화로 위기감 조성… 전시ㆍ교육에 눈 돌려
이후 매장문화재 관련법이 개정되면서 대학박물관이 실시하던 발굴조사의 상당부분이 발굴전문기업으로 넘어갔다. 정부도 학생들이 발굴조사에 참여하기 위해 학과수업을 소홀히 하는 경향을 우려해 대학박물관의 발굴조사를 자제하도록 권고했다.

이로 인해 수많은 대학박물관이 목표를 상실한 채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홍성덕<전북대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열린전북」 기고를 통해 “대학박물관 위기의 근본적 원인은 박물관들이 시대적 변화에 너무 안일하게 대처한 점”이라며 “학술연구, 보존 및 관리, 전시, 교육 등 박물관의 다양한 기능은 미뤄둔 채 연구에만 매달려온 결과”라고 분석했다.

대학박물관은 재정구조 취약, 열악한 인력 및 재원, 독자적 연구인력의 부족, 홍보미약으로 인한 관람객 감소 등의 위기를 겪고있다. 박물관은 수익기관이 아니여서 독자적 재정창출이 거의 불가능하다. 과거에는 발굴조사에 의한 외부 지원금이 재정수익으로 충당됐지만 이 수익이 줄어들면서 운영에 큰 타격이 됐다. 김 과장은 “거의 모든 대학박물관이 관람수익이 없기 때문에 대학본부에서 배정받은 예산으로 운영해야 하는데 예산이 적어 운영상에 어려움이 많다”며 “해마다 상설 전시회를 열고 있는 대학박물관은 주류 대학박물관을 포함해 약 20여 관 뿐”이라고 아쉬워했다.

재정이 취약하다보니 박물관 전문인력인 학예연구사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대학박물관이 속출하고 있다. 학예연구사의 부족은 대학박물관의 독자적 연구 및 보존능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에 따라 대학박물관도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발굴 및 연구 분야에 다소 치우친 대학박물관의 운영영역을 전시와 교육까지 아우르도록 하는 것이다. 각 대학의 특성을 담은 다양한 특별전 및 작품전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양대 박물관은 공대를 모체로 발전해온 우리학교의 역사에 따라 산업화ㆍ근대화 시대의 유물을 다수 소장하고 있다.

또 「호모 모빌리언스」, 「플라스틱시대」, 「모던 코리아」 등 과학기술과 연관된 특별전을 자주 열고 있다. 고려대 박물관도 자교의 상징인 호랑이를 소재로 삼은 「호랑이, 호랑이를 만나다」, 고려대생 의거 50주년을 기념한 「자유! 너 영원한 활화산이여」 등의 특별전을 통해 개성있는 대학박물관을 이뤄나가고 있다. 이화여대 박물관도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대학교라는 점을 살려 여성의 인권 관련 특별전을 자주 열고 있다.

안 국장은 “각 대학의 운영철학에 맞는 특색을 갖춘 대학박물관을 갖추는 것은 앞으로의 대학박물관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며 “이를 위해 우선 대학 고유의 정체성을 찾아내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색있는 전시사업을 강화하면서 관람객의 수도 증가했다.(하단 그래프 참고)

▲ 한양대 박물관의 연평균 관람객 추이



대학박물관의 교육사업도 강화되고 있는 추세다. 한양대 박물관은 앞으로의 박물관 향후 발전방향으로 교육사업 강화를 꼽았다. 김 과장은 “현재의 재정여건에서 가장 바람직한 방향은 학생 및 지역사회에 대한 교육사업을 강화하는 것”이라며 “다양한 교육사업과 문화사업을 벌여 지역사회의 문화수준을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교육사업은 대학박물관 재정구조를 개선하는데 일조하기도 한다. 최정희<이화여대 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서울시에서 주도하는 ‘건강한 학교만들기’ 사업에 선정돼 지원받은 1억의 지원금을 포함해 기타 다양한 교육사업을 통해 벌어들인 외부수익이 약 1억6천5백만 원 가량”이라며 “교육사업이 박물관의 새로운 재정창출 영역으로 부상했다”고 말했다. 또 “인문학으로 마음을 치유하는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교육사업은 대학박물관에 있어서 선택이 아닌 필수”며 “대학박물관도 시대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충고했다.                 



사진 장보람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