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지역 초월하는 그림언어, 픽토그램
문화·지역 초월하는 그림언어, 픽토그램
  • 유현지 기자
  • 승인 2010.03.13
  • 호수 13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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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과적 활용 위한 국가적·국제적 표준화 필요

픽토그램은 중학교 교과과정 중 잠깐 언급된다. 그제 서야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표지판들이 ‘픽토그램’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픽토그램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인식하기 어렵다. 하지만 픽토그램은 세계화가 진행될수록 그 중요성이 급격히 증대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 2000년도부터 산업자원부(현 지식경제부)에서 픽토그램 개발을 관리하고 있다. 국제적으로 그 중요성이 증가되고 있는 픽토그램에 대해 알아보자.

픽토그램은 무엇인가
픽토그램이란 사물이나 시설 및 지시하는 행동 등을 상징화해 언어의 사용 없이도 대상을 쉽고 빠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 그림기호다. 일상생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공공장소의 안내 표지판, 교통 표지판 등이 픽토그램이다.

단순화한 그림으로 표현한다는 점에서 아이콘, 엠블럼 등도 픽토그램으로 인식할 수 있지만 보편화 정도를 비교하면 이를 동일시 할 수 없다. 픽토그램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반면 아이콘과 엠블럼은 관련 정보를 이용하는 사람 등 이해 관계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특히 엠블럼은 홍보효과를 중점으로 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픽토그램의 기원은 원시시대의 동굴벽화다. 오늘날의 픽토그램에 비해 정보전달력은 낮지만 시각자료만으로도 순간적 판단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동일성을 찾을 수 있다. 북아메리카 인디언 종족들은 픽토그램의 높은 전달력을 이용해 픽토그램을 기억력 보조수단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상형문자의 경우 픽토그램이라 할 수 없는데 문자의 시초 단계인 상형문자는 언어, 문화를 초월할 수 없기 때문이다.

픽토그램은 수용자가 단순화된 한 장면의 그림을 보고 서사적인 상황판단을 할 수 있어야한다. 예를 들어 ‘급격한 수심변화 주의’표시를 보고 갑작스런 수심변화에 대비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픽토그램의  서사성에 대해 수사학자들은 수사학 디자인의 하나로서 픽토그램의 중요성을 역설하기도 한다.

수사학이란 언어를 사용해 타인을 설득하는 기술이다. 소피스트에서 시작된 수사학은 현대로 오면서 언어의 영역이 확장되며 구술언어, 문자언어 이외에도 시각언어까지 포괄한다. 시각언어를 통한 수사학 중 하나의 갈래로 수사학 디자인이 나왔는데 픽토그램은 이에 속한다.

김종대<성신여대ㆍ인문과학연구소> 연구원은 “픽토그램은 디자인수사학의 대표적인 예로 ‘소통’의 수단이기 때문에 단순히 측량기술에 의존해 제작하는데에 한계가 있다”며 “픽토그램은 서사적 이해를 높이기 위해 디자인 지식 뿐 아니라 인문학적 지식도 내포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승춘<서울대ㆍ디자인학부> 교수는 “픽토그램은 단순한 한 장면으로 서사성을 구현해야하기 때문에 보다 효과적인 픽토그램 개발을 위해서는 심도깊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픽토그램의 서사성을 강조한 것은 수사학자들만이 아니다. 디자인 영역에서도 픽토그램이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는데 픽토그램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는 함영훈 디자이너가 대표적이다. 함 디자이너의 픽토그램 작품들은 픽토그램이 지닌 직관성, 대표성, 규칙과 반복성에 인간의 감정을 대입시킴으로써 픽토그램의 기능을 확장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 <국제 표준으로 채택된 우리나라 픽토그램>

픽토그램 표준화 노력
현재 지식경제부 산하기구인 기술표준원에서 픽토그램 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정부가 픽토그램 개발에 발 벗고 나선 것은 지난 2000년으로 2002년 월드컵 개최 준비가 계기가 됐다. 국제적 교류가 급증하면서 언어, 민족을 초월하는 픽토그램의 중요성이 강조됐기 때문이다.

2000년부터 시작된 정부가 주관한 픽토그램 개발 노력으로 2002년에 비로소 국제표준을 담당하는 ISO/TC 145(그래픽심볼위원회)의 정회원국이 될 수 있었다. 이후 우리나라는 국제표준 픽토그램 100여개 중 32개를 등재하는 높은 실적을 내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했다.

기술표준원은 지난 2008년 ‘공공안내 및 안전표지(픽토그램)국가표준 개발사업’을 추진했다. 이 사업은 ISO기준에 준거해 국내 뿐 아니라 외국인들의 편의를 높이는 것을 목표로 했다. 사업 추진 과정에서 새 픽토그램들은 이해성 판단조사를 거치는데 연령별, 성별, 교육 수준별로 대상을 나누고, 장애인 응답자 그룹을 설정해 시각ㆍ신체ㆍ청각장애인의 이해도도 함께 조사했다. 이 때 외국인의 픽토그램 이해도 측정을 위해 국내 거주 기간별로 구분해 판단시험을 시행했다.

최미애<기술표준원ㆍ문화서비스표준과> 연구원은 “국가에서 픽토그램을 관리하는 것은 픽토그램이 실생활에서 편의성을 증대하기 때문”이라며 “최근에는 고령자, 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픽토그램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술표준원에서는 픽토그램의 개발과 함께 표준화 작업을 주로 담당하는데 국내 표준으로는 KS(한국산업표준)를 지정하고 있다. 기술표준원은 픽토그램을 사용하는 개인이나 기관을 대상으로 올바른 사용법을 알리는 세미나를 지난 2008년 개최하기도 했다. 픽토그램을 자체적으로 제작해 사용할 경우 픽토그램이 추구하는 편의성을 달성하기 힘들기 때문에 국가 및 국제적으로 표준화에 노력하고 있다.

김 연구원은 “현재 픽토그램이 규격에 맞지 않게 사용되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픽토그램의 본래 역할인 행동지시를 효율적으로 해내기 위해서는 픽토그램 사용의 표준화가 정립돼야한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지역, 문화의 차이에 따라 픽토그램의 선호도가 다르다는 점이다.

이는 동서양의 차이에서 볼 수 있는데 유도현<홍익대ㆍ디자인공예학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동양계 사람들은 묘사위주의 회화적인 픽토그램을 선호하는 반면 서양 사람들은 그들의 기호나 문자를 단순화시킨 추상적 형태를 선호한다.

이는 유교적 통치이념에 억눌려 폐쇄적인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동양의 사회구조, 합리주의를 바탕으로 자유로운 개인의 의사표현이 가능했던 서양의 사회분위기와 연관된 차이라고 볼 수 있다. 동양의 경우 다소 수동적 분위기 안에서 정보인식에 있어서도 직접적인 설명이 첨가된 회화적인 픽토그램이 친숙한 반면, 서양은 적극적인 의사표현으로 함축성을 가진 문자나 기호에 익숙해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제표준 픽토그램 개발에 있어 세계인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 보편성 성취를 추구해야한다.

유 교수는 “현대 산업사회에서는 과거에 비해 전달해야 할 메시지가 다양해진 동시에 설명해야할 대상 또한 복잡해졌다”며 “체계적인 연구와 지속적인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일러스트 주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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