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인 그대가 남을 돕는 이유
합리적인 그대가 남을 돕는 이유
  • 유현지 기자
  • 승인 2010.02.26
  • 호수 13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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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인 이타적 인간, 베품의 기쁨이 착각은 아니다

호모 에코노미쿠스(경제인). 어원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언제부터인가 인간의 본성을 가장 잘 나타내 주는 표현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저 멀리 아이티 지진의 희생자를 돕기 위해 모금활동을 벌이는 등 남에게 친절을 베푼다. 이를 이타적 행동이라 하는데, 이타적 행위란 개인에게는 희생 또는 비용이 들지만 타인에게는 혜택을 주는 행위다.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경제인에게 결코 어울리지 않는 이타적 행위는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피는 물보다 진하다
인간의 이타적 행위를 해석하는 첫 번째 이론은 유전자 보호다. 가족관계에서는 완벽한 이타적 행위가 나타난다. 마르크스주의자로 유명한 이론가 존 스콜 홀데인도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형제와 친사촌 9명을 위해서라면 망설임 없이 뛰어들겠다’라는 답을 했으니 친족 간의 이타적 행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여지는 없어 보인다.

이처럼 혈연집단의 이익을 위해 개개인이 희생 한다는 학설을 ‘혈연선택’이라 한다. 이 학설은 해밀턴이 발표한 이후 리처드 도킨스가 저서  「이기적 유전자」를 통해 그 논리를 확고히 함으로써 이타적 행위에 대한 유력 학설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도킨스의 논리에 따르면 유기체는 유전자가 새로운 복제품을 만들어내는 수단에 불과하다. 따라서 유전자의 목적은 유기체의 희생 보다는 유전자 번식의 가능성을 높이는데 있다. 결과적으로 자신의 가족들을 도울수록 자녀, 손녀, 조카 등 자신의 유전자가 퍼질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이를 가장 쉽게 설명 해주는 사례가 벌들의 희생이다. 일벌들은 지나칠 정도로 다른 벌들을 위해 희생한다. 이들의 행동양식은 혈연선택학설로 풀어낼 수 있다. 벌들은 무리 전체가 같은 유전자를 갖는다. 여왕벌은 그 자녀들과는 물론 일벌들과도 같은 유전자를 갖는다. 모두 여왕벌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알들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는 일벌들은 자신들의 조카를 지키고 있는 셈이다.

즉 벌들의 이타적 행위는 유전자가 퍼지는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행위로, 유전자 입장에서 보면 결코 희생이 아닌 일이다. 하지만 이타적 행위를 할 때 자신과 같은 혈통인지의 여부를 확인하지는 않는다. 피붙이가 아닌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는 경우는 흔히 엿볼 수 있는 사례다. 따라서 혈연선택이론으로 사회에서 일어나는 이타적 행위를 모두 설명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어떤 사건의 용의자로 두 사람이 지목됐다. 경찰은 이들에게 자백을 얻어내기 위해 ‘게임이론’을 이용했다. 두 용의자를 서로 다른 심문실로 데려간 뒤, 각자에게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한다. 두 용의자가 둘 다 자수를 하면 5년형이 선고되지만 두 용의자 모두 죄를 부인할 경우 확실한 물증이 없어 경범죄로 간주돼 1년형에  그친다. 이들 중 한 사람만 자백을 할 경우 자백자는 무혐의 판정을 받는 반면 상대방은 7년형을 받게 된다. 이렇게 ‘죄수의 딜레마 게임’으로 대표되는 선택 상황을 게임이론이라고  한다. 이 죄수의 딜레마 게임은 결국 두 용의자가 모두 자백을 하는 결론이 남으로써 이타적 행동이 얼마나 쉽지 않은지를 증명하지만 한편으로는 이타적 행위의 가능성을 설명하기도 한다.

이렇게 두 경기자가 서로의 눈치를 봐 가면서 승패를 가려야 하는 게임에서 승률이 가장 높은 전략은 무엇일까. 생각 외로 굉장히 단순한 방법이 가장 높은 승률을 보장하는 전략으로 판명됐다. 바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Tit for tat, TFT)’ 전략이다.

말 그대로 상대방이 협조하면 자신도 협조하고, 상대방이 배신하면 자신도 배신하는 방법이다. TFT 전략을 사회에 적용해 이타적 행위를 증명한 학설이 ‘호혜성의 원칙’이다. 타인이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면 자신도 타인에게 호의를 베푼다. 이는 원숭이가 서로의 이를 잡아주는 사례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한 원숭이가 다른 원숭이의 이를 골라주는 이타적 행동을 하면, 후에 다른 원숭이가 호의를 베푼 원숭이의 이를 골라주게 된다.

거꾸로 말하면 상대방의 호의를 기대하며 호의를 베푸는 것이다. 따라서 호혜성의 원칙의 전제는 ‘반복적으로 오래 지속된다’는 점이다. 이는 호혜성의 원칙을 조건부 이타적 행위라고도 하는 이유다. 그런데 ‘자신을 희생하면서 물에 빠진 타인을 구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호혜성의 원칙이 답을 줄 수 있을까? 이 문제에 대해서 호혜성의 원칙은 ‘간접 호혜주의’로도 확장된다.

처음 자신에게 이타적 행동을 한 사람이 아닌 제3자에게 이타적 행위를 함으로써 자신에게 이익을 준 이타적 행동에 보답한다는 원리다. 이로써 자신을 희생하면서 물에 빠진 제3자를 구출하는 것도 호혜성의 원칙으로 규명이 가능하다. 과거에 제3자에게 도움을 받은 사람은 곤경에 빠진 다른 사람을 돕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호혜성의 원칙도 소규모 사회에서의 이타적 관계를 설명할 수는 있지만 대규모 사회의 경우 이 원칙을 적용하기 쉽지 않다.

종족 번식을 위한 이타적 행위
저서 「왜 사랑에 빠지면 착해지는가」의 저자 토르 뇌레트라네르스는 ‘호모 제네로수스’의 개념을 세웠다. 호모 제네로수스는 베풀고, 서로 돕는 관대한 존재다.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정반대 개념으로 느껴지지만 호모 제네로수스의 개념 이면에도 이기적 인간의 모습이 숨어있긴 마찬가지다. 후손을 번성하게 함에 있어서 경쟁만 있는 사회보다 협동과 관대함이 있는 사회가 유리하기 때문에 자신이 좀 희생하더라도 사회 전체에 이로운 행동을 본능적으로 하게 된다는 이론이다.

이 또한 실험결과가 논리를 확고히 해준다. 피실험자들은 또다시 ‘게임이론’의 실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서로 얼마나 많은 도움을 주었는가에 따라 이미지 점수를 부여받는다. 결과적으로 이타적 행위를 한 피실험자의 긍정적 이미지 점수가 올라갔고 그에 따라 미래에 수혜자로서 타인의 도움을 얻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결과적으로 이타적 행위를 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집단의 힘은 강해진다. 따라서 인간은 강한 자손을 남기기 위해 본능적으로 이타적 행위를 하게 되고, 이타적인 사람에게 끌리는 것이다. ‘왜 사랑에 빠지면 착해지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이렇게 도출된다.

 

인간의 따뜻한 이타적 행위의 비밀을 풀고자 시작된 질문은, 오히려 냉정하고 이기적인 인간의 면모만을 드러냈다. 하지만 우리들의 삭막해진 마음을 구원해주는 또 하나의 사실이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역시 과학에서 발견됐다.

사람들이 남을 돕기로 결정하면 뇌의 보상중추 부위 중 복측피개영역이 활성화된다는 실험결과가 나왔다. 복측피개영역은 성관계를 하거나 마약을 복용했을 때 활성화되는 쾌락 중추다. 남을 도울 때 마약을 할 때와 흡사한 즐거움을 맛보게 된다는 것이다. 
여러 학설들이 인간의 이타적 행동을 규명하고 있는데, 그 이유야 어찌됐든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적어도 이타적 인간들이 멸종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일러스트 주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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