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매니아 기질을 찾자
나의 매니아 기질을 찾자
  • 한양대학보
  • 승인 2009.12.07
  • 호수 13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김미영<사범대 국어교육과> 교수
기말고사를 한 주 앞두고 있는 시점이다. 2학기의 마지막 시험을 치르면 이제 대학생들은 긴 방학으로 접어든다. 새 학기 개강일이 3월 1일이라는 산술적인 시간으로만 따진다면 무려 2달하고도 2주가 넘는 시간이 오롯이 개인에게 주어진다.

이 긴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새 학기에 만나게 될 얼굴색이 달라진다. 계획한 일들을 성취했을 때의 만족스러운 얼굴과 후회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얼굴로 대비될 것이다.

정찬의 단편 소설 중 「깊은 강」이라는 작품이 있다. 전기가 들어오기 직전의 이야기지만, 겨울만 되면 동강 근처의 영월을 찾아오는 젊은이가 있다. 동면을 하기 위해서다. 겨울부터 봄까지 동면을 하는 동안 그의 얼굴은 소년처럼 맑아진다.

우리학교 학생들, 아니 대한민국의 학생들은 일생 동안 여러 번 맞이하는 방학 기간을 동면으로 보낼 수는 없는 입장이다. 학생들은 일생 동안 여러 번 맞이하는 방학 기간을 취업을 위해 화려한 스펙을 채우려고 몹시 바쁠 것이 눈에 선하다. 우리는 무엇으로 재충전의 시간을 무엇으로 보내야 할까.

이번 겨울방학에 우리 자신의 매니아 기질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이미 매니아의 대상이 있다면 그 경우는 매우 행복한 상태다. 아직 매니아의 대상이 없다면 우리를 열광시킬 그 어떤 대상을 한번 찾아보는 것이다.

2학기 수업 중, ‘말과 글’ 시간에 ‘나의 매니아 기질’에 대한 글을 써봤다. 21세기 지식인이 미치고 싶은 대상은 무엇이며, 어떻게 미치는지 또는 미쳐있는지를 드러내는 글이다.

정민 교수의 「미쳐야 미친다」라는 책은 18세기 지식인들의 벽(癖)에 빠진 일들을 다루고 있다. 무릇 사람은 벽(癖)이 있어야 독창적인 정신을 갖추고 전문의 기예를 익힐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나의 세계’로 정진하는 것이다. 18세기 지식인들이 꽃에 미치고, 벼루에 미치고, 물고기에 열광했다면 21세기의 지식인은 어떠한가?

하지만 학생들의 글은 나를 무척이나 놀라게 했다. 우리 1학년 새내기들은 이미 매니아의 경지에 입문해 있었다. 응용미술학과의 주은이는 「오만과 편견」 매니아였고, 국어교육과의 학생들도 여러 방면에서 매니아들임을 입증해 줬다. 주희는 무라카미 하루키에, 정혁이는 라흐마니노프에, 혜인이는 향수에, 유경이는 여행에, 승엽이는 스노우보드에 모두 미쳐 있었다.

뮤지컬 매니아 민경이와 대금 매니아 수연이는 공연을 위해 적은 용돈을 아끼는 눈물겨운 모습도 보여줬다. 1학년의 모습이라고 하기에는 한 가지 대상에 ‘미쳐 있는’ 정도가 대단했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나는 이들의 얼굴을 보면서 ‘행복’을 떠올렸다. 자신의 전공을 열심히 공부하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을 이완시킬 수 있는 세계를 체득하고 있는 이들은 진정 행복한 삶의 소유자다.

한국의 스포츠 선수들은 연일 자신과의 기록 경신을 하면서 우리를 놀라게 하고, 즐겁게 한다. 최근 한 일간지에 굳은살이 박힌 손을 활짝 펴고 있는 프로 골퍼 신지애의 인터뷰 기사를 읽으면서 가슴이 아려왔다. 자기 또래의 20대들이 나누는 대화가 무엇인지 가장 궁금하다는 그녀의 말은 외로운 수련자의 고백이리라. 그러면서도 그녀를 의연하게 한 것은 한 가지 대상에 열정적으로 빠질 수 있는 정신이었다. 열정적인 모습은 군더더기 없이 아름답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