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한글의 뿌리를 되새기다
우리 한글의 뿌리를 되새기다
  • 문종효 기자
  • 승인 2009.10.10
  • 호수 13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훈민정음 따라 걸어온 한글의 발자취

지난 9일 563번째 한글날을 맞아 국내 곳곳에서 세종대왕과 한글을 기념하는 축제가 열렸다. 경복궁 근정전에서는 훈민정음 반포를 기념해 ‘훈민정음 반포 재현’ 축제를 개최했고 광화문 광장에서는 이순신 장군 동상의 맞은편에 세종대왕의 동상을 제막했다. 또 세종대왕의 업적을 기리는 ‘세종 이야기’축제, 한글의 우수성을 뽐내는 ‘세계 문자 올림픽’ 등 수많은 행사가 성황리에 열렸다. 한자가 국내 문자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시대적 분위기에 반기를 들고 탄생한 한글의 발자취를 따라가 봤다.

일제강점기 한글이 겪은 설움
 

한글이 세종대왕이 창제한 우리 고유의 문자라는 사실은 오늘날 당연한 사실로 여겨지고 있다. 1940년에 발견된 「훈민정음 해례본」(이하 해례본)에서 글자를 지은 뜻과 사용법 등이 명확히 제시돼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전까지만 해도 한글은 수많은 모방ㆍ표절론에 휩싸이곤 했다.

이런 수많은 모방설은 「훈민정음」이나 그 이전 「세종실록」에 기록된 ‘자방고전(字倣古篆)’이라는 글자에서 비롯됐다. “글자는 옛날의 전자(篆字)를 모방했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 이 단어로 인해 ‘옛 전자’에 대한 수많은 가설이 난무했다.

대표적인 것이 ‘몽고 파스파 문자 기원설’이다. 이 가설은 미국 컬럼비아 대학의 게리 레드야드 명예교수가 주장했던 가설로 자방고전의 ‘고전’을 ‘몽고전자’로 해석한다. 그는 “한글의 기본자음이 파스파 문자에서 따온 ‘ㄱ, ㄷ, ㅂ, ㅈ, ㄹ’의 5개이며, 이 글자들이 가획 및 수정을 거치면서 현재의 문자들이 생겨났다”고 주장했다. 이를 바탕으로 레드야드 교수는 한글이 몽고, 티벳, 아랍을 거쳐 중동 페니키아 문자 일족에 속하게 된다고 말했다.  

‘중국 히브리 문자 기원설’도 득세했다. 훈민정음이 중국에 살고 있던 유태인들의 히브리문자를 모방했다는 이 가설은 훈민정음의 5음체계와 히브리 문자의 5음체계의 순서가 같다는 점을 근거로 제기됐다.

이밖에 고대부터 사용됐던 가림토 38자에서 모양을 따왔다는 가설, 옛 범자나 전자에서 차용했다는 가설 등 많은 가설들이 우리 한글을 비하하는데 일조했다. 심지어 ‘문창살 모방설’이라는 특이한 가설도 존재했다. 왕이 화장실에 앉아 볼일을 보다가 문창살의 격자모양을 보고 거기서 글자 모양을 모방했다는 이 가설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어처구니없지만 당시엔 엄연한 하나의 학설이었다.

조성문<인문대ㆍ국어국문학과> 교수는 “그 당시 사회는 일제강점 말기로 한글이 정책적으로 천대받던 시기”라며 “일본은 제국주의적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서 우리 글자의 고유성을 훼손하는 작업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제시기 한글의 문자 및 어족연구는 주로 일본 학자들의 손에 의해 이뤄졌다.

여기엔 순수하게 한글을 연구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조선어 금지 정책의 실시에 앞서 그 구실을 만들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당시 일본이 자국의 고서에서 발견된 문자가 한글과 유사하다며 주장한 ‘일본 신대문자 모방설’의 사례에서 이런 의도를 확인해볼 수 있다. 조 교수는 “우리 문자 연구가 일본에 의해 이뤄진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그 의도가 순수히 학문연구에 있었다고 볼 수만은 없다”고 전했다.   

해례본에서 찾은 한글의 뿌리

한글에 대한 수많은 차용 및 모방설은 해례본이 발견되면서 입지가 크게 줄어들었다. 박종덕<국립국어원> 박사는 “한글과 관련된 모방설은 발견 전까지 최대 20여개에 이르다가 해례본이 발견되면서 거의 폐기됐다”며 “60년대까지 2~3개의 가설이 살아남아 관련 논문이 간간히 발표됐지만 그 이후로 한글의 모방설을 주장하는 국어학자들은 사실상 사라졌다”고 말했다.

해례본은 자음이 사람의 발음기관을 상형해 만들었고 거기에 가획의 원리를 더해 창제했다고 서술돼있다. 발음기관 상형의 원리는 오늘날 현대 언어학에서도 사용되는 원리이다. 모음은 천지인의 원리에 가획의 원리를 더해 만들었다.  

훈민정음 글자에도 논란의 여지는 있다. 원리를 따르지 않는 이체자(ㆁㆍㄹㆍㅿ)는 명확한 제자원리나 글자 뜻이 제시되지 않아 논의가 분분하다. 혹자는 한글의 이체자를 한자의 이체자와 연관시키기도 한다. 이에 조 교수는 “이체자에 대한 논의가 있지만 세 글자에 불과하다”며 “나머지 글자들은 모두 명확한 제자원리가 명시돼있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세종대왕이 독창적으로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세계 속의 한글을 위해 나가야 할 길

한편 오늘날 한글의 행보는 남다르다. 세계적으로 한글을 공부하는 외국학생의 수도 크게 늘었다. 이 같은 한글의 위상제고에는 우리나라의 국제적 지위 향상과 한류의 세계화전략이 결정적이었다.

조 교수는 “한류 붐이 일면서 한국문화를 배우고 싶어하는 한국팬이 늘었고 국력이 이전에 비해 강해지면서 한글의 위상도 크게 높아졌다”며 “미국 대학입학시험인 SAT의 제2외국어 과목에 한글이 정식 채택된 사례만 봐도 한글의 인지도가 높아졌음을 확인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 유네스코의 문맹 퇴치한 단체에게 수여되는 ‘세종대왕상’이나 폴란드 바르샤바에 세종대왕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설립된 ‘세종대왕 고등학교’도 대표적 사례로 볼 수 있다.

소수민족의 언어를 보호하기 위해 한글을 보급하려 한 학자들의 노력도 결실을 맺었다. 몇달 전 인도네시아의 찌아찌아족의 문자로 한글이 채택된 것이 그 사례다. 조 교수는 “문자가 없는 언어는 소멸될 가능성이 높은데 최근 이런 경향이 영어나 중국어와 같은 ‘세계 공용어’들의 팽창에 의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며 “한글의 문자를 수출하면 소수민족의 언어를 기록으로 보존할 수 있기 때문에 문화적 다양성을 보존하는데 이바지할 수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아직 부족한 점도 적지 않다. 조 교수는 “세계의 문자사를 통틀어서 탄생기록과 제자원리가 명확히 제시돼있는 유일한 문자”라며 “그러나 우리 스스로 이 사실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최근 불고 있는 조기유학 열풍이나 영어의 제2공용어 채택논란은 한글에 대한 관심부족이 빚어낸 대표적 사례다. 조 교수는 “우리는 우리의 것을 보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며 “정부의 지원이 없어 고사위기에 몰린 한글 관련 민간사업체나 국책 연구소 등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