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만화 100번째 생일을 맞다
한국만화 100번째 생일을 맞다
  • 이다영 기자
  • 승인 2009.09.27
  • 호수 13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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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고동락 되새기며 또다른 도약 준비할 때

한국만화와 더불어 자란 우리
한국만화가 올해로 100주년을 맞았다. 강산이 10번 바뀌었을 동안 우리 만화도 흥망을 넘나드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만화가 박재동 <한국예술종합학교ㆍ애니메이션과> 교수는 “만화는 일제시대, 전쟁, 군사 검열 등 우리 민족의 한 많은 삶을 함께 이겨내왔다”며 “이런 만화가 현대 문화의 한 축으로 당당하게 자리매김 했다는 점에 상당한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한국만화와 더불어 자랐다. 만화는 「배추도사 무도사」, 「날아라 슈퍼보드」부터 시작해 「풀하우스」, 「궁」에 이르기까지 아련한 어린 날부터 현재까지 전반적인 추억을 장식하고 있다. 글보다 이해가 쉽고 유머감각을 간질이는 만화의 매력은 우리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우리학교 만화동아리 ‘그릴마당’ 회장 최진수<경금대ㆍ경제금융학과 08> 군은 “만화는 대리만족이 가능하고 제작비도 저렴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게 매력”이라며 “종이와 연필만 있어도 되니 작품의 다양성 측면에서도 뛰어나다”고 말했다. 또 “개인적으로 시원시원한 표현력 덕분에 무협지 「열혈강호」를 가장 좋아했다”며 “다들 한 번쯤 만화에 빠져본 경험은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근현대사와 함께한 우리만화
만화의 시작은 1909년 「대한민보」에 실린 故이도영 화백의 만평이었다. 젊은 신사를 희화화하고 민족 단결과 바른 언론 등을 빗줄기처럼 쏟아지는 형식으로 표현해 근래의 만평으로 보기에도 손색이 없다. 이 화백은 애국운동 만화가로 암울한 현실을 조명하고 동포를 감싸는 데 힘을 쏟았다. 그러나 「대한민보」가 한일합방으로 폐간되면서 만화는 암흑기를 맞는다.

해방 후 1950ㆍ60년대에는 「고바우 영감」, 「코주부」 등 중년남성을 단순화해 그려낸 작품들이 조심스럽게 얼굴을 내밀었다. 홍길동을 소재로 한 「날쌘돌이」, 우리나라 최초의 SF만화 「라이파이」는 당시 청소년들의 마음을 휘어잡아 1960년엔 만화방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다.

1970ㆍ80년대엔 보다 친근한 캐릭터들이 다가왔다. 어리바리한 행동으로 머리에 혹이 마를 날 없는 「꺼벙이」, 「둘리」, 「영심이」 등은 미워할 수 없는 옆집 동생 같은 이미지를 남겼다. 또 유난히 태권도, 야구 등 스포츠와 관련된 만화가 다수 등장하는 시기기도 했다. 군사정권 아래, 야구소년 「독고탁」, 「달려라 하니」, 「공포의 외인구단」에서 날렵하게 질주하는 이들을 통해 대중은 희열과 대리만족을 느꼈다. 또 「로보트 태권브이」,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는 여전히 우리의 영웅으로 기억된다. 「머털도사」 등 한국적인 미를 살린 ‘바지저고리 만화’가 인기를 끌기도 했다.

90년대 들어선 원수연 작가의 「풀하우스」를 비롯해 김혜린, 황미나 작가 등이 등장한 순정만화 전성기였다. 날렵한 콧날과 우수에 젖은 눈빛들은 감수성 풍부한 시기 우리를 웃기고 울렸다. 또 현재 우리는 「파페포포 메모리즈」, 「마린블루스」, 「강풀의 순정만화」 등으로 시작된 ‘웹툰(웹상으로 무료로 볼 수 있는 만화)’ 시대를 겪고 있다. 「타짜」, 「궁」 등은 드라마와 영화로도 제작돼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바람 잘 날 없는 시련의 만화계
지난 27일까지 열린 부천국제만화축제에서 이화성 작가는 「스크롤 만화」라는 작품을 통해 클릭 한 번으로 무료만화를 보려는 현실을 풍자적으로 그려냈다. 익명을 요구한 만화가 A는 “그저 만화가 좋아서 2년간 악바리로 연습한 끝에 만화전선에 동참할 수 있었다”며 “하지만 화실 이용료, 문하생 고료를 빼면 혼자서도 겨우 살아가기 때문에 결혼은 생각도 못한다”고 탄식했다. 또 “밤새 마감한 원고가 얼마 안 돼 인터넷에 떠다니면 화를 참을 수가 없다”며 “회의감이 커져 만화가가 되려고 애쓰는 후배들을 보면 그저 안쓰럽다”고 말했다.

전성기 이후 만화계 아픔의 시작은 1998년 일본 만화 시장 개방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내 만화 수요 감소로 인해 수많은 만화잡지가 폐간됐다. IMF시절엔 도서대여업이 실직자 구제를 위한 국가 장려 사업으로 선정돼 만화가들은 또 한 번 직격탄을 맞았다. 몇 백 원으로 만화를 아무리 많이 빌려봤자 작가에게 돌아가는 수익은 없다. 최근엔 불법 스캔 등이 빈번히 이뤄져 이런 도서대여점 또한 줄어드는 추세다.

이에 백수진<한국만화영상진흥원ㆍ자료관리연구팀> 책임은 “게임, 동영상 등 보다 자극적인 콘텐츠들이 등장해 종이만화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었고 만화를 공짜로 볼 수 있는 불법스캔 또한 어려움에 일조했다”며 “때문에 수많은 만화잡지들이 폐간되고 출판시장이 자생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토로했다.

우리만화 미래와 나아갈 길
만화가 가진 탄탄한 이야기 전개와 시각적 구조는 각종 문화산업의 원형으로 안성맞춤이기도 하다. 최근 드라마와 영화로도 다수 변신한 양질의 만화들은 콘텐츠산업의 원천으로 숨 쉬는 만화의 미래상을 보여준다.
박 교수는 “정보화시대 웹툰은 만화가 등장하는 수단만 바뀌었을 뿐 자연스럽고 올바른 현상”이라면서도 “만화는 공짜로 보는 것이라는 인식에 일조한 게 아닌가 우려스럽기도 하다”고 말했다. 또 “작가들의 위기에 대해 학생들도 의식을 갖고 적은 돈이라도 내고 보는 문화를 구축해야 한다”며 “작가, 지자체, 출판사가 합심해 양질의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하는 것도 변수”라고 조언했다.

이에 백 책임은 “포털사이트 마케팅의 일종인 웹툰의 유료화는 어렵더라도 독보적 수준의 한국의 웹툰들을 특성화 시켜 세계로 수출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며 “우리만화는 해외에서도 각광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만화는 또 다른 한류의 주역이 될 수 있다.

한국만화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만화박물관이 생기고 지난 23일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출범하는 등 국가적 지원도 활발해지고 있는 추세다. 한 세기를 민족과 동고동락한 만화가 앞으로의 100년은 어떻게 꾸려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만화가들의 어깨가 무거워졌다.

사진 박효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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