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가슴이 따뜻해지는 미셸 오슬로의 동화
눈과 가슴이 따뜻해지는 미셸 오슬로의 동화
  • 서정훈 기자
  • 승인 2009.08.29
  • 호수 129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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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문화 흐르는 스크린 속 펼쳐지는 화합의 메시지


“나는 결코 어린이를 위한 영화를 만들어 본 적 없다”는 미셸 오슬로의 말처럼, 그가 만든 작품은 어른들에게도 보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틀에 박힌 이야기 구조에서 벗어나 다양한 기법을 통해 펼쳐지는 색다른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가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눈만 즐거운 애니메이션을 뛰어넘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도록 하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사람, 바로 미셸 오슬로다.

미셸 오슬로, 그의 작품 세계
어린 시절 친구들과 함께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들며 애니메이션 제작에 눈을 뜬 미셸 오슬로는 1998년, 자신의 첫 장편 작품인 「키리쿠와 마녀」를 관객 앞에 선보인다.

『“마녀 카라바가 왜 나쁜지 아세요?”라고 묻는 키리쿠의 물음에 ‘모르는 것이 없다’던 마을 장로는 잠시 망설이다 답했다. “그거야 마녀니까” “그럼 왜 마녀죠?” 또 다른 질문을 던지는 키리쿠에게 마을 장로는 역정을 냈다. “귀찮게 굴지 마라, 넌 아직 어려서 몰라. 그리고 마녀에 대해선 묻는 것이 아니야” - 「키리쿠와 마녀」중에서』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마녀에 맞서 마을을 구하는 꼬마 키리쿠의 모험담을 주 내용으로 한 「키리쿠와 마녀」에 관객들은 열광했다.
사람들은 청소년기를 아프리카에서 보낸 감독이 선사하는 아프리카에 대한 아름다운 묘사를 스크린을 통해 볼 수 있었다. 이전의 다른 애니메이션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강렬한 원색으로 이뤄진, 환상적인 배경이었다.

또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왜’라고 물으며 고정관념을 뛰어 넘으려 노력하는 키리쿠의 모습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었고 고정관념에서 비롯되는 오해의 폐해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게 됐다.

「키리쿠와 마녀」는 다음해인 1999년, 안시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며 미셸 오슬로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렸다.
이후 10년간 미셸 오슬로는 그림자 기법으로 만들어 진 6개의 이야기가 옴니버스 식으로 구성된 「프린스 앤 프린세스」, 「키리쿠와 마녀」의 속편인 「키리쿠, 키리쿠」, 2006년 칸 영화제에서 공개돼 수많은 박수갈채를 받았던 「아주르와 아스마르」등 총 4편의 장편 애니메이션을 통해 프랑스를 대표하는 스타급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자리 잡았다.

미셸 오슬로의 작품 세계에 대해 송유경 문화평론가는 “미셸 오슬로는 화려한 색채를 통해 관객을 환상의 세계로 인도하면서도 언제나 생각해봄직한 메시지 전달을 잊지 않는 감독”이라며 “그가 발표한 장편 애니메이션은 언제나 ‘화합’에 대한 메시를 전달하며 끝을 맺는다”고 말했다.

다양한 세상 문화에 대한 애정
미셸 오슬로는 세계의 다양성을 작품 안에 담기로 유명하다. 10여년 동안 그가 발표한 4개의 장편 애니메이션에서는 아프리카와 이슬람 문화에 대한 그의 애정이 잘 드러난다.
「키리쿠와 마녀」, 「키리쿠, 키리쿠」에서는 검은 대륙 아프리카가 배경이 됐고 「프린스 앤 프린세스」,「아주르와 아스마르」에서는 이슬람 문화가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나는 세계의 시민이다”라고 말했던 미셸 오슬로는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문화가 있다면 나는 언제든 그 문화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와 같은 미셸 오슬로의 가치관은 그가 프랑스 사람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검은 피부의 아스마르는, 아주르가 푸른 눈을 가진 것이 저주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아주르는 아스마르의 고향이 플루트도 없고, 스튜도 없는 따분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둘이 힘을 합쳐 요정 진을 구해낸 뒤, 아주르와 아스마르는 동시에 외친다. “우리가 요정 진을 구한 것은 운명이었어!” 요정 진을 만나고 난 뒤 아주르와 아스마르는 서로의 이해를 바탕으로 상대방의 차이를 인정할 수 있게 됐다. -「아주르와 아스마르」중에서』

프랑스는 가톨릭 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자유, 평등, 박애의 가치를 귀하게 여기는 국가다. 또 ‘똘레랑스(tolerance)’라고 일컬어지는 관용의 정신이 국민들 사이에 널리 퍼져있으며 단순한 이기주의가 아닌 집단보다 개인의 가치관과 자유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개인주의적 성향도 강한 편이다. 이런 프랑스 국민의 특성은 다른 나라의 문화를 무조건 배척하지 않고 이해하고 흡수하는 모습으로 이어진다.

한정희<국문대ㆍ프랑스언어문화학과> 교수는 “유럽 대륙에 프랑스만큼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 사는 나라도 없다”며 “나라 안에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고 있지만 프랑스 사람들은 그것들을 모두 받아들이고 이해하기 때문에 ‘프랑스 문화는 잡탕 문화다’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또 한 교수는 “유럽이 통합되면서 프랑스 수도 파리는 한 나라의 수도를 넘어선, 통합된 유럽의 수도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며 “그렇기에 프랑스의 문화와 가치관이 유럽 대륙 전체에 끼치는 영향도 점점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키리쿠와 마녀」의 경우 개봉 당시 프랑스에서만 160만 명, 유럽 전역에서는 5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유럽을 제외한 다른 국가에서도 「키리쿠와 마녀」는 물론 「키리쿠, 키리쿠」에 대해 관객들의 호평이 이어지기도 했다.

‘화합’의 메시지를 던지는 감독
미셸 오슬로 감독의 작품에서 가장 비중 있게 다뤄지는 메시지는 바로 ‘화합’이다.
『마을 사람들은 죽은 줄 알았던 키리쿠가 카라바와 함께 걸어오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카라바는 이제 더 이상 마녀가 아니었지만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카라바를 믿지 못했다.
“카라바는 못된 마녀가 아니에요, 여러분은 카라바에 대해 오해한 거라구요!” 키리쿠는 소리 쳤지만 마을 사람들  중 그 누구도 키리쿠의 말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카라바의 저주라고 믿었던 일들이 모두 오해였음이 밝혀지자 마을 사람들은 카라바를 받아들인다. “보세요! 카라바는 못된 마법을 부리지 않았어요!” -「키리쿠와 마녀」중에서 』

송 평론가는 “미셸 오슬로는 작품에서 절대적으로 악한 자를 등장시키지 않고 권선징악의 뻔한 결말을 내놓지  않는다”며 “이해와 화합을 강조하며 프랑스의 올바른 관용정신을 작품에 녹여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꼬마 영웅 키리쿠를 통해, 그림자로 존재하는 프린스와 프린세스를 통해, 백인인 아주르와 유색인종인 아스마르를 통해 ‘화합’을 이야기 하고, 프랑스의 올바른 관용 정신을 관객에게 전달한 미셸 오슬로는 이제 또 다른 주인공들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할 준비를 하고 있다.

문화가 바뀌고 있다. 단일민족국가라 일컬어지던 우리나라도 ‘다문화’의 열풍이 불고 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각자의 문화를 이해하는 ‘화합’과 ‘관용’의 자세가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하다.
이제 대한민국의 일원이 된, 우리와 생김새가 다른 그들과 함께 밝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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