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전통과학은 왜 유물이 됐을까?
우리의 전통과학은 왜 유물이 됐을까?
  • 한양대학보
  • 승인 2009.04.05
  • 호수 1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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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5년 9월 20일 운요호 사건 당시 일본은 우세한 포 성능과 포술을 앞세워 초지진을 파괴하고 상륙하며 약탈을 자행했고, 이러한 무력을 배경으로 개항을 강요했다. 그들의 화포는 더 멀리 나아갔으며 정확했고 파괴력 또한 막강했다. 우리는 그들의 과학 기술 앞에 무릎 꿇었고 이후 밀려들어온 서구과학은 우리의 전통과학 패러다임을 대체했다.

오늘날 나무위에서 사과 한 개가 떨어진다면 우리는 예외 없이 뉴턴의 만류 인력 법칙을 떠올리지 조선후기 실학자 최한기의 기륜설을 생각하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유물과 사료를 본다면 한국의 전통과학은 세계적이었다. 특히 농업을 기본으로 하던 우리나라는 기상학이 발달했다. 15세기 발명된 측우기는 강우량을 측정하는 세계 최초의 기상관측장치였고, 한강과 청계천에 세워놓고 하천의 흐르는 물의 양을 재던 수표와 바람의 방향을 측정하던 경복궁과 창경궁의 풍기대 또한 그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기상학 이외에도 인쇄술, 건축술 또한 상당한 수준이었다.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본 ‘직지심체요절’, 동양 무비의 걸작품이라 불리는 '석불사 석굴‘ 등 한국의 과학은 독자적으로 발전을 이뤘었다. 하지만 반만년 간 꽃 피어온 우리의 과학은 왜 힘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박물관에 박제돼 영원히 멈춰버린 걸까?

앞서 살펴본 것처럼 15세기경까지는 서구보다 앞선 과학기술이 상당수 존재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그것들이 ‘과학’이 아니라 ‘과학기술’이라는 점이다. 장영실의 ‘자격루’, ‘옥루’, 정약용의 ‘기중기’, 최무선의 ‘화포’ 등 모두 장치나 기술에 관계된 것이지 기본적인 논증체계인 기하학과 삼각법과 같은 기초 과학이론의 발달이 부족했다.

칼포퍼가 과학을 ‘추측과 반박’이라고 표현 했듯 세상을 탐구하고 그것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질서정연하게 이론으로 정리하는 것이 바로 과학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전통과학은 개화기에 이르기까지 물리학, 화학, 수학 등과 같은 체계적인 학문을 발달시키지 못했다. 근대 과학이 유입되었을 때 전통과학은 이에 대항할 자기 변론을 제시하지 못했고 패러다임의 전환은 급격히 일어났다.

서구 과학의 유입은 우리의 과학적 패러다임을 변화시켰다. 우리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됐고 이제는 수용자가 아니라 창조자로서 과학을 발전시켜나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급속한 과학관의 변화와 더불어 다른 부분에서도 광범위 하게 패러다임이 무비판적으로 서구의 것으로 전환됐다.

과학 기술의 발전 방향을 이끌어 나가는 것은 사회과학적인 체계, 가치관이다.  ‘식량위기’, ‘에너지위기‘ 등등 현재 많은 위기들이 다가오고 있다. 서구의 과학은 전통과학에 비해 진보했었을지 모르지만 그 방향은 지속불가능 했다. ’개인‘에 초점을 맞춘 서구 근대사 구성 원리(존재론)는 모두의 것에 대한 무관심을 초래해 지구를 병들게 하였다. 관계로 세상을 인식해 ’우리‘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전통 가치관이 과학 기술의 방향을 이끌 새로운 대안으로 생각되고 있다.   
조정민<무슨대ㆍ화학공학과 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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