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 없는 범죄
가해자 없는 범죄
  • 한양대학보
  • 승인 2009.03.23
  • 호수 129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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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호<경영대ㆍ경영학과 06>
사회를 조금 더 긍정적이고 건강한 방향으로 유인하기 위해 첨병에 섰던 건 역사에서 보듯 항상 20대였다. 한국의 유신세대가 그랬고 서구의 68혁명세대가 그랬다. 하물며 지난 X세대도 반항과 일탈로 경직된 기성세대에게 일갈하며 보란 듯이 갑갑한 사회에 균열을 낸 전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 20대에게 이건 다른 나라 얘기일 뿐이다. 사회는 고사하고 본인들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에 부친다.

이건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88만원 비정규직과 천만원 등록금은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의 20대가 노년층이 되는 2050년은 우리사회가 초고령 사회로 접어든 뒤다. 천대받는 피부양세대로 가족들의 애물단지가 될 개연성이 충분하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됐다면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하는데 문제는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가해자는 없는데 피해자는 넘쳐난다.

그런데 가해자 없는 범죄는 조금 곰곰이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뚜렷한 가해자 없이 피해자가 양산되는 문제에서 범인을 찾다보면 결국 가해자는 이율배반적이게도 피해자로 들어나기 때문이다. 일확천금에 눈이 멀어 주식하다 망한 투자자나 남들보다 더 예쁘게 보이기 위해 성형중독에 걸린 여성이 대게 그런 경우다. 일단 자기만 잘되고 보자는 이기적인 경쟁은 상황을 파국으로 만든다.

더군다나 지금 20대는 이 규모가 소수가 아니라 한 세대이다. 이것이 20대가 자신을 돌아봐야할 큰 이유다. 20대 스스로가 이 질문을 넘어가지 못한다면 어떤 대안도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정확한 진단을 전제로 해야만 아픈 곳을 정확히 치료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대는 지금 세대 간 경쟁이 아니라 세대내 경쟁이 극도로 과열돼 있다. 이건 단순히 시스템만의 문제가 아니다.

앞선 질문에 대한 고민과 그 고민에 이은 나름의 해법은 동일선상에 놓인 철학을 기저로 해야 한다. 이기주의보단 이타주의로, 불필요한 타인과의 경쟁보다는 자신과의 경쟁을 지향하는 것이다. 무슨 현실감 떨어지는 소리냐고 묻는다면 이미 이것을 비현실적으로 생각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사실에 조의를 표해야 한다.

홍세화씨도 말했지만 20대를 ‘무식한 대학생’이라고 폄하한 것은 요즘 대학생이 맑스를 안 읽고 사르트르를 몰라서가 아니다. 20대부터가 다분히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가치를 비현실적이라고 믿는 그 무식함에 있다. 인터넷에 떠도는 말처럼 ‘20대를 위한 나라가 없다’는 이미 '누군가를 위한'이라는 이타주의의 결핍을 함의하고 있다. 20대 모두가 이것에 갈증을 느낀다고 드러내면서도 정작 필요한 가치를 비현실적이라고 제외하는 것은 정말이지 무식함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아이러니다.

20대가 더 나은 사회에서 살고자 한다면, 적어도 기성세대보다 더 유연한 사고와 포용성을 가지고 있다면 20대가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해결책은 앞서 말한 철학을 바탕으로 정치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이기적인 분위기를 조장하는 곳이 아니라 살 만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정당을 찾아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에서 유권자의 힘보다 더 빨리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 당장 4월만 해도 재보궐 선거와 경기도교육감 선거가 줄지어 있다.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회 등 까지 합한다면 앞으로 선거는 거의 해마다 치르게 되는 셈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20대를 위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20대가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현실감 있게 한번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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