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를 울리겠다고?
여자를 울리겠다고?
  • 서보영 기자
  • 승인 2009.02.28
  • 호수 128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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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이 길을 걷던 십년지기 친구 녀석이 내 팔을 갑자기 세게 내리쳤다. ‘여자를 울려라!’ 버스에 붙어있던 광고 카피를 보고 한 번 때려봤단다. 얼얼함이 채 가시기 전에 고개를 들어보니 광고 카피 옆에는 보도블록이 개선되어서 눈물 나게 감동받았다는 여성의 사진이 붙어있었다.

생활 주변 세심한 곳까지 여성의 시각에서 바라보겠다는 서울시의 야심찬 프로젝트였다. 하이힐을 신고 편하게 걸을 수 있는 보도블록에 안전한 귀가 길을 위한 여성 콜택시 서비스까지 준비했단다. 이토록 작은 일에 감동해 눈물까지 흘리길 바라다니 이거 너무 생색내기 아닌가 싶다. 불편함을 해소해준 국가에 감사하며 눈물이나 흘리라니 아직도 여성은 수동적인 객체로만 비춰지는 것 같아 씁쓸해졌다.

물론 불편한 점을 덜어준다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서울시의 이번 프로젝트는 근본적인 여성의 불편함을 해결하는 데 초점이 맞춰지지 않았다. 그 남자에게는 체력이 걱정되는 시간에 그 여자는 아이를 걱정한다는 내용의 광고 끝에 서울시 어린이집 공인제라는 자막이 나온다. 일하는 여성이 동시에 육아와 가사도 도맡아 해결해주길 원하는 것이다. 도와 줄테니 계속 열심히 해보라고 감동적이지 않으냐며 눈물을 유도한다.
쇼핑센터에 재활용품 분리수거함을 설치하는 것, 지하철 정거장의 디자인을 개선하는 것, 음식물을 감량하는 기계를 도입하는 등의 정책을 왜 여성을 위한 정책이라는 타이틀로 한 데 묶었는지도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 분리수거 하는 일,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일이 모두 여성의 일이라는 잘못된 편견이 바닥에 깔려있다고 밖에 보여 지지 않는다.

서울시는 이 광고를 통해 여성들의 환심을 사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광고는 지극히 반여성적이다. 마치 여성 문제가 ‘하이힐 신고 걷기 힘들다’ 정도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이 광고는 충분히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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