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위의 생산자, 그대의 이름은 토론
책상 위의 생산자, 그대의 이름은 토론
  • 송민경 기자
  • 승인 2009.02.28
  • 호수 128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시도되는 대학생들만의 토론문화

한 사람이 열 권을 책을 읽는 것과 열 사람이 한 권을 책을 읽고 토론하는 것, 과연 어느 것이 효과적일까. 전자는 일관된 시각으로 열 권을 바라보지만, 후자는 열 가지 이상의 시각으로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다. 토론은 단순히 책상위의 말장난이 아니다. 여러 사람의 합의점을 도출하면 세상을 바꿀만한 능력을 가질 수 있다.  

대학 토론문화의 현 주소

전문가 패널로 이루어진 토론방송에도 시민토론자는 필요하다. 시민토론자는 한 쪽의 입장을 주장하는 패널에 반론을 제기하기도 하고 더 정확한 근거를 묻기도 한다. 사회 전반 이슈를 전문 패널과 함께 토론할 시민토론단을 모집하고 있는 김정숙<SBSㆍ시사토론팀> 작가는 “시민토론단의 반 이상이 대학생들로 이뤄져 있고 방청객 또한 대학생들이 대부분이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토론에 관심 있는 대학생들은 방송을 통해 사회문제에 참여하기도 한다. 대학에서 교육을 받는 다는 것은 스스로 학문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고등학교와 다르다.

정해진 교과서를 통해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교수님, 또는 다른 사람들과의 끊임없는 논쟁으로 학문적인 배움을 창출한다. 우리학교에서 토론을 통해 배움을 얻을 수 있는 수업은 ‘말과 글’과 ‘과학기술의 철학적 이해’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대학 수업에서 토론이라 하면 흔히 찬반을 가리는 논쟁을 떠올린다. 토론의 형식에는 논쟁뿐만 아니라 협력을 요구하는 토의, 그리고 문답이 있다. 김호연<학부대학ㆍ철학교육위원회> 교수는 “대학 토론수업에서 찬반논쟁으로 토론이 집중된다면 학생들이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는 데 몰두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기 어렵다”며 “그렇게 되면 쟁점이 없는 사안에 대해서는 수업을 진행할 수 없기 때문에 교수와 학생 모두 토론에 대한 다양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토론은 논리적인 의사표현을 하는 것과 동시에 다른 사람의 논리도 받아들임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인간에 대한 이해를 도모한다. 하지만 대학생들은 토론의 중요성을 알고 있음에도 쉽사리 토론문화에 익숙해지지 못한다. 이에 이창희<사회대ㆍ행정학과 04> 군은 “토론의 중요성은 알고 있지만 평소에 토론을 할 수 있는 기회는 드물다”고 말했다. 

우리학교의 토론문화 정착을 위해 필요한 요소에 대해 오채운<학부대학ㆍ교양국어교육위원회> 교수는 “토론 수업이 제대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한 강좌 당 30명 이하의 학생이 필요조건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학교의 거의 모든 강좌가 30명을 훌쩍 넘는 학생들로 토론수업을 진행한다.

또 ‘말과 글’ 수업을 진행하는 교수들은 다른 학교에 비해 우리학교 학생들의 토론 참여 태도가 다소 냉소적이라고 평가한다.

오 교수는 토론문화를 정착하기 위한 또 다른 요소로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꼽았다. 오교수는 또 “학생들이 토론준비를 할 때 인터넷에서 다른 사람의 글을 보고 자신의 생각으로 여기는 경우가 있는데, 자신만의 논리적인 생각정리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토론, 실천의 벽을 넘다

토론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대학생들이 있다. 우리학교 서울배움터 동아리 ‘에르디아’는 일주일에 한 번 주제를 선정해 나이와 학번에 상관없이 평등한 토론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에르디아는 ‘대거리’라는 토론회를 열며 매 주 사회자를 선정해 양 쪽의 입장을 중재하고 합의점을 찾아간다.

에르디아의 편집부장을 맡고 있는 김덕현<법대ㆍ법학과 05> 군은 “가끔 여성의 군복무 필요성 논란과 같은 팽팽한 주제의 경우 밤늦게까지 계속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며 “끊임없는 대화와 토론은 논리적인 말하기 연습이 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심을 키우는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전혀 다른 방식이지만 토론은 온라인 세계에서도 존재한다. 온라인 토론은 익명성을 이용한 명예훼손이 벌어지거나 근거 없는 여론몰이가 되기 쉽다. 하지만 토론을 관리하는 사이트가 중재자의 역할을 충분히 한다면 생산적인 토론이 이뤄질 수 있다.

2004년 12월 첫 서비스를 시작한 포털사이트 다음의 ‘아고라’는 정치나 사회문제부터 네티즌들의 작은 관심사까지 사람 수에 제한 없이 토론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한다. 아고라를 관리하는 미디어 다음에서는 나름의 편집원칙을 통해 토론장을 관리한다.

박현정<다음커뮤니케이션ㆍ지역커뮤니케이션팀> 직원은 “학계나 시민단체 등 다양한 분야의 사용자로 이루어진 ‘열린사용자위원회’는 아고라를 운영하는 미디어다음의 편집을 모니터링하고 비판한다”며 “아고라가 중립적인 사회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온라인 토론을 통해 합의된 내용은 청원을 통해 사회의 변화를 유도하기도 한다. 지난 2007년 3월에는 아고라를 통해 롯데월드 인명사고와 관련한 안전점검을 요구하는 네티즌들의 청원이 수렴됐다.

또 LG텔레콤 지하철 광고가 자살을 암시하는 내용이 담겼다는 청원이 네티즌들의 큰 공감을 얻으면서 LG 텔레콤이 서둘러 광고를 철거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21세기는 다른 사람과의 소통이 곧 그 사람의 능력이 되는 시대다. 인터넷 공간과 강의실 그리고 방송국까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토론이 활발히 이뤄진다. 대학생들의 올바른 토론문화로 사회적 소통을 이끌어 가야할 것이다.  

송민경 기자 smkyoyo@hanyang.ac.kr
일러스트 장은진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