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엔가 놓쳐버린 12월의 기억
어느 날엔가 놓쳐버린 12월의 기억
  • 송민경 기자
  • 승인 2008.12.07
  • 호수 128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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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엔가」 장지 위에 수묵
세상을 덮어버린 눈을 보고 있자니 머릿속이 하얘진다. 머릿속을 텅 비운 채 새하얀 눈을 밟으며, 아무 말 없이 계속 걷고만 싶다. 한 움큼 손에 쥐면 포근한 눈의 감촉이 손에 전해질 것만 같아 마음이 설렌다. 그림의 삼분의 이를 차지하고 있는 소나무는 자작나무의 느낌을 전하며 한층 더 눈에 깨끗함을 보탠다.

크리스마스 종소리처럼 청명한 느낌의 그림 아래쪽에서, 자유롭게 솔잎이 퍼져있는 위쪽으로 시선을 옮기면 가슴이 먹먹해지기 시작한다. 작가는 젖은 한지 위에 먹물을 묻혀 솔잎의 강약을 표현했다. 축축이 젖은 듯한 뿌연 잎들을 보고 있자면 눈물이 가득 찬 눈으로 그림을 보는 듯 울적한 기분이 든다. 자꾸만 ‘첫 사랑’이라는 단어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왠지 모를 겨울의 슬픔이 베어 나오는 이 작품에는 화선지와 먹을 이용해 겹겹이 붙인 탄탄한 자작나무가 등장한다. 작가는 전통적인 방식을 탈피하기 위해 붓을 던졌다. 대신 나무젓가락이라는 새로운 방법을 택했다.  전통과의 완전한 거리감은 피하기 위해 먹과 한지는 그대로 유지했다.

구모경 작가는 “만져질 것 같은 눈을 표현하기 위해 10년 전부터 매년 겨울 산을 밟았다”며 “눈이 덮인 소나무 숲에서 자작나무 숲의 오묘한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또 “고요한 숲 속에 서 있을 때 받았던 느낌을 그림에 그대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이번 주는 작품 속 겨울 숲에 서서 추억을 되짚어보자. 조금은 울적해 지더라도 그것은 아름다운 기억이 될 테니까.   


구모경
동덕여자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와 일반대학원 회화학과를 졸업했다. 3회의 개인전을 가졌고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서울미술대상전과 경향미술대전에서 수상했고 청년작가조망전 최우수작가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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