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한국산 금지조치를 보며
이란의 한국산 금지조치를 보며
  • 취재부
  • 승인 2005.11.06
  • 호수 12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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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이희수 <국문대·문화인류학> 교수
최근 이란이 느닷없이 한국산 일부 제품에 대해 수입금지조치를 내렸다. 아무 예고없이 일어난 일이라 관련업계는 물론 정부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사건이 터지자 그제서야 정부는 부랴부랴 고위 외교관리를 이란에 파견하고 대책을 마련하느라 바쁜 모습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이미 충분히 예견된 결과였다. 우리는 이란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길 가는 사람 누구에게 물어봐도 이란에 대해서는 서슴치 않고 “악의 축” “테러지원국”이란 딱지를 붙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란이 우리에게 어떤 나라인가? 인구 7천만이 넘는 중동 최대 시장이다. 사우디 아라비아에 이어 해외 건설, 플랜트 부분의 수주 제 1위국이다. 최근 들어 중요한 대형 공사를 거의 한국 회사에게 맡긴다. 텔레비전, 에어컨, 냉장고, PC 모니터 등 이란 가전 시장의 60~80%를 한국제품이 차지하고 있다. 자동차와 휴대폰 까지 한국산을 선호하고 있다. 한국상품 열풍이 불고 있는 셈이다.  지금 이란에선 한류까지 소개되어 한국산을 쓰지 않으면 유행을 모르는 왕따로 취급받을 지경이다.

이쯤되면 이란은 우리에게 “악의 축”이 아니라 “선의 축”중에서도 으뜸이다. 물론 이해관계의 상충 때문에 미국에게는 ‘악의 축“이나 ”테러지원국”이 될 수도 있겠지만, 우리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그럼에도 왜 내가 인식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만들어 놓은 허상을 그냥 내 것으로 받아들여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친구를 적으로 만들어가고 있는가? 무언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 되었다.

지구상에 어떤 나라가 도움을 주면서 친구가 되기를 원하는데, 상대가 악의적인 적개심과 비협조적인 태도로 대응해 온다면 이를 받아들이겠는가?

이란이 한국산 제품에 제동을 건 직접적인 계기는 9월말 IAEA(국제원자력기구)의 이란핵 문제 표결에서 우리정부가 미국에 동조해서 이란의 의사에 반해 찬성표를 던진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이란 입장에서는 양국관계의 경제적 우호와 향후 발전을 위해 최소한 한국이 기권해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물론 우리정부로서는 북한핵 문제와 6자회담의 성공적인 추진, 미국과의 특수 관계 때문에 이란 핵 제재안에 찬성표를 던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더라도 최소한 표결 전에 이란에게 우리의 입장을 설명하고 표결안에 찬성하더라도 이는 이란과의 관계악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양해를 구할 수도 있었고, 사후에라도 이란을 적극적으로 다독거리는 외교적 노력이 따라야 했다. 이번 사태는 그저 우리의 운명은 미국만 믿고 미국에게만 목을 매고 있으면 만사형통이라는 고질적인 외교사대주의가 부른 또 하나의 처절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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