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보자 양 배움터, 도선대사도 감탄할 명당
다시보자 양 배움터, 도선대사도 감탄할 명당
  • 김민수 기자
  • 승인 2008.10.12
  • 호수 128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비약적 발전 부르고 정열적인 인재 키워낼 서울, 온화한 나날 선사하는 안산


풍수지리학은 단군이 통치하던 고조선 시대부터 사용된 우리민족 고유의 사상체계다. 산은 유난히 산지 지형이 발달한 우리나라에서 농업과 목축, 사냥 등으로 삶을 영위하는 보금자리였다. 이처럼 산이 우리의 삶과 밀접하다 보니 옛 조상들은 경험의 축적을 통해 산의 성질과 이치를 깨닫게 됐으며 이를 ‘풍수지리’라는 이론체계로 정립했다.

고조선 시대에는 주역과 음양오행 이론이 일반화됐기 때문에 풍수지리학이 학문적으로 뒷받침 된 체계적인 이론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신라 제4대 임금인 석탈해에 대한 기록을 보면 삼국시대에 이미 민간인들까지 풍수지리를 이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오늘날에 이르러 풍수지리학은 본고장인 우리나라에서 소외되고 있고 다른 나라에서 주목받는 역설적인 위치에 있다. 우리학교에 출강 중인 박정해<정통풍수지리학회> 이사장은 “우리나라에서는 건축 설계에 풍수지리를 일반화하지 못하고 있는데 반해 미국 같은 서양에서는 생활 전반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우리가 풍수지리를 미신이라고 천대하는 동안 미국에서는 풍수지리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상당한 발전을 이뤄내고 있다”고 우려했다.

박 이사장에 따르면 중산층 이상의 미국인은 집을 구입할 때 부동산 사업자가 사전작업을 다 해놓은 상태라도 풍수가가 집의 터가 좋지 않다고 하면 백지화할 정도라고 한다. 대만과 홍콩에서는 풍수가들이 의사나 판사 같은 전문직보다 더 높은 대우와 존경을 받는다.

우리나라에서 풍수지리가 널리 쓰이지 못하는 이유는 ‘땅을 잘 쓰면 자손이 복을 받는다’는 논리를 미신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땅의 기운을 빌어 인간의 삶에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증명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조상 묘소를 경사지에 조성한 집안 50가구와 완만한 땅에 조성한 집안 50가구를 비교해본 결과, 전자의 집안 사람들은 비교적 삶이 순탄치 못한 반면 후자의 집안 사람들은 번창한 삶을 누리고 있었다. 명당이 사람의 삶에 영향을 주는 이유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통계적으로는 입증된 셈이다.

명당은 음의 기운을 나타내는 산의 줄기가 양의 기운을 나타내는 물이 흐르는 곳에서 멈춘 지점이다. 이것이 명당으로서 최소한의 요건이다. 하지만 산이 끝나는 지점을 물이 감싸고 흐르는 옥대수여야 한다는 단서가 붙는다. 음과 양이 조화를 이뤄야 명당도 만들어지기 때문인데 만약 물이 산이 끝나는 지점을 등지고 굽어져 흐르는 반궁수라면 사람이 살기 불편한 땅이 된다. 홍수가 발생하면 사람이 사는 지역으로 범람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명당이 되기 위한 최소한의 요건을 놓고 봤을 때 우리학교 양 배움터는 상당히 좋은 명당이다. 서울배움터는 남산에서 뻗어 나오는 능선이 청계천을 만나 멈추는 지점에 위치해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청계천이 보이지 않는 뒤쪽에서 학교를 감아 들어오는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중랑천과 합류한다는 사실이다.

박 이사장은 “동고서저형인 우리나라 지형 상 동쪽으로 흐르는 물은 매우 귀하게 여겨진다”며 “청계천은 동쪽으로 흐르는 데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학교의 뒤를 감아 흐르는 ‘암공수’ 라는 요건까지 갖춘 특이한 경우”라고 말했다.

풍수지리에서 물은 재물을 상징하기 때문에 청계천과 중랑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있는 서울 배움터의 위치는 학교에 재물이 많이 모인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한강이 흘러들어오는 여의도 동쪽 지역에 각종 금융사와 증권사가 위치한 것도 우연은 아니다.

서울배움터 본관의 위치도 주목할 만하다. 본관은 남산에서 뻗어 나오는 능선을 마주 바라보는 ‘회령고조형’을 취하고 있다. 명당에 회령고조형 건물을 지으면 땅의 좋은 기운이 빨리 솟구치게 된다. 더욱이 서울배움터는 둥근 형태의 돌산인 ‘돌혈’에 해당하기 때문에 강한 기를 발산하고 본관이 끌어올린 땅의 기운을 더욱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 이유 때문인지 우리학교는 비교적 짧은 역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굴지의 명문대로 도약했다.

돌산이 발산하는 강한 기는 서울배움터 학생들의 성품에도 반영된다. 학생들이 학업을 치열하게 하며, 투사의 기운을 북돋우기 때문에 군사독재 시절에는 학생운동을 이끈 사람들이 많이 배출됐다. 그러나 서울배움터는 높은 돌산에 위치해 바람에 노출돼있는데 바람을 막아줄 좌청룡, 우백호가 없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물이 빠져나가는 모습이 보이는 곳에 위치하면 재물과 복이 흘러나가게 되는데 서울배움터에서 그런 위치에 있는 단대가 건축대다. 공교롭게도 건축대는 아직까지 명성에 걸맞는 단독 건물을 갖지 못하고 있으며, 공대 통합 과정에서 큰 진통을 겪고 있다.

안산배움터도 서울배움터와 마찬가지로 능선이 물과 만나 끝나는 지점에 위치해 있다. 서울배움터는 능선이 청계천을 만나 멈추는 장소인데 비해 안산배움터는 능선이 서해바다를 만나 멈추는 장소라는 차이가 있다.

배움터 내로 성기게 들어온 산이 야트막하게 배움터를 감싸고 있는 형상이어서 순하고 편안한 기가 생긴다. 서울배움터에 비해 여성적인 기운이 강하고 학생들이 온순하다. 땅도 약간 오목해 재물과 사람이 모여든다. 하지만 중랑천이 배움터를 등지고 굽어진 ‘반궁수’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배움터를 감싸주는 물이 없다.

박 이사장은 “사람이 완벽할 수 없듯이 완벽한 명당도 없다”며 “한양대 양 배움터는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은 명당임이 틀림없다”고 강조했다.

<서울배움터의 풍수 구조>

 

<안산배움터의 풍수 구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