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에서 영원으로
순간에서 영원으로
  • 한양대학보
  • 승인 2008.04.14
  • 호수 1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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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이터널선샤인(2004)」이라는 영화를 봤다. 평범하고 착한 남자 주인공 ‘조엘’과 화려하고 따듯한 여자 주인공 ‘클레멘타인’은 서로 다른 성격에 끌려 사귀게 되지만, 그 성격의 차이 때문에 점점 지쳐가게 된다. 그러다가 두 사람은 심한 말다툼을 하게 되고, 더 이상 그 상황을 참을 수 없게 된 조엘은 아픈 기억만을 지워준다는 ‘라쿠나’라는 회사를 찾아가 그녀의 기억을 지우기로 한다.

실제로 기억을 지우는 시도를 하지만 사라져 가는 기억 속에 그녀의 모습은 사랑스럽게만 보이고, 오히려 ‘조엘’은 그 기억을 찾으려고 애를 쓰게 된다. 그러면서 깨닫는 것은 기억은 지워도 사랑은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 영화가 나에게 감동을 준 것은 공상과학 소설에서나 등장할 것 같은 기억 삭제라는 소재를 가장 감동적인 러브스토리로 탈바꿈시켰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내 머리 속에 떠오른 것이 있었다. 디지털 카메라였다. 그 영화와 디지털 카메라에서 어떤 공통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바로 ‘지울 수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예전에 아날로그 카메라만 있을 때에는 사진을 찍을 때 무척 신경을 쓰고 얼굴 표정이나 자세를 잘 잡으려고 노력을 했었다. 그게 오히려 더 부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사진을 찍는 매 순간마다 최선을 다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찍고 나서 바로 확인할 수 없었고 필름 한 통을 다 찍어야 사진 인화를 할 수 있었고 그래야 어떤 모습으로 찍혔나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지울 수도 없었다.

그러나 요즘엔 사진을 찍은 후에 바로 확인하고 지울 수도 있고, 굳이 사진으로 인화하지 않아도 되고, 미니홈피에 올려서 보면 되니 예전에 비하면 얼마나 편하고 좋아졌는가 말이다. 그러나 언제든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우면 되고 바로 다시 찍을 수 있기 때문에 그 순간이라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다시 찍으면 되지, 뭐”하는 그런 생각.

물론 분명히 디지털 기기의 등장으로 우리 생활이 편해지고 좋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들 모두 그러한 편리함으로 매 순간의 중요함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휴대전화도 그런 부류에 속한다. 예전에는 약속을 하면 꼭 지키려고 노력을 했고, 정해진 약속을 소중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요즘은 약속을 구체적으로 정하지도 않고, 정한 약속도 바로 휴대전화를 통해서 취소하고 연기하기도 한다.

모든 세상일은 과정이 있고 결과가 있는데, 너무 결과만 중요시 여기는 것만 같다. 누구에게나 지우고 싶은 기억들을 갖고 있다. 실수나 안 좋은 경험들은 분명 기억조차 하기 싫다. 그러나 그러한 기억도 나의 것이며 그 기억으로 인해 앞으로 그와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게 해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모두 나의 기억인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삶은 디지털 카메라의 사진처럼 그렇게 지우고 다시 찍을 수 없다는 점이다. 삶이란 우리 모두에게 단 한 번뿐이고, 다시 되돌릴 수도 지울 수도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들이 우리에게는 소중한 것이다. 특히 젊은 세대인 대학생들은 지금까지의 삶보다 앞으로 만들어 가야 할 삶이 더 많은 사람들이다. 지우고 싶은 기억이 생기지 않게 매 순간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고, 또 그러한 기억이 생겨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순간에서 영원으로’라는 말처럼 인생을 멋지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조성문 교수<인문대ㆍ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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