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인과 상식인
전문인과 상식인
  • 한양대학보
  • 승인 2008.02.24
  • 호수 1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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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교육계의 최대 화두는 단연 로스쿨, 법학전문대학원일 것입니다. 법학전문대학원은 의학전문대학원, 경영전문대학원과 그 맥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보다 전문적으로 법학을, 의학을, 경영학을 연구 교육하여, 보다 전문적인 법조인을, 의료인을, 경영인을 만들어내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발상의 저변에는 전문적 지식을 갖춘 전문인을 우리 사회가 요구하고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습니다.

전문대학원을 마친 사람이 대학4년만 다닌 사람보다 더 전문인이고, 이런 전문지식인이 우리 사회를 더 맑고 풍요롭게 해준다는 생각입니다. 중등교육을 마친 사람보다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 더 전문가임은 형식논리상으로는 틀림없습니다. 대학은 전문가인 프로페서(Professor)가 연구 교육하고, 프로(Pro)들이 배출되는 기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학에서 대학원으로, 그것도 전문대학원으로 넘어가면 프로들의 질은 더 높아질 것이고, 이 양질의 프로들이 우리 사회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할 거라고 생각됨직 합니다.

전문인은 전문적 지식을 갖춘 사람이고, 비전문인인 보통인과 일반인, 상식인은 그렇지 못한 사람, 그저 보통의 지식, 상식만을 가진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문제는 전문지식이 상식보다, 그래서 전문인이 상식인보다 더 우월하다는 입장입니다. 이런 주장은 서구에서는 플라톤 철학의 잔재입니다.

플라톤은 “동굴의 비유”를 제시합니다. 쇠사슬에 묶여 어두운 동굴 속에 있는 죄수들을 상식인으로, 사슬에서 해방되어 광명의 삶을 사는 사람을 전문인으로 묘사하면서 진정한 인간의 전형은 후자에 있다고 말합니다. 상식인은 그저 감각적이고 불확실한 지식인 억견(doxa, opinio, opinion), 상식만을 가진 사람인 반면에, 전문인은 지성적이고 확실한 지식인 에피스테메(episteme, scientia, science), 전문지식의 소유자라는 것입니다. 이런 플라톤 전통이 서구 사상에 주류로 자리 잡으면서, 상식보다는 전문지식이, 상식인보다는 전문인이 더 우월한 것으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지식이 정보로 유통되는 지식정보화 사회에서 전문지식의 존립가능성에 회의의 눈길을 보낸 리오타르(J.-F., Lyotard)의 지적은 접어두더라도, 과연 플라톤 전통에 따라 상식이 전문지식보다 과연 열등한 지식인지, 그래서 상식적 인간이 전문적 인간 앞에서 여전히 부끄러워해야 하는지 오늘 여기서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상식은 사전적 정의는 보통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갖고 있는 지식, 공통된 지식입니다. 영어로는 커먼센스(common sense), 직역하면 공통감각입니다. 상식이 육체의 감각으로 얻어지기 때문에 “센스”이고, 그렇지만 나 혼자만의 감각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공통된 감각적 지식이기 때문에 “커먼”일 것입니다.

육체의 감각능력이 영혼의 지성능력보다 열등하다고 플라톤은 생각했지만, 니체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감성의 시대인 오늘날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근거는 희박해보입니다. 더구나 그저 감각이 아니라 공동의 감각이라면 상식은 이웃을, 연대를, 관용을, 포옹을, 사랑을 의미할 것입니다. 반면에 전문지식이 차갑고 냉철하며 수리적인 지성에 의해 가능하다면, 그것은 자아를, 단절을, 독단을, 단죄를, 질투를 함축한다는 지적도 충분히 일리가 있습니다. 상식과 전문지식이 그러하다면 상식인과 전문인도 그러할 것입니다.

대학은 전문인들의 단체이고 전문지식이 돌아다니는 곳입니다. 전문인들이 머무는 연구실은 벽으로 나 홀로 차단되어 있습니다. 이 고립된 공간에 몸담고 있는 프로페서, 프로들은 부지불식간에 단절과 독단과 오만의 전문인으로 전락될 수 있습니다.

이번 한양대학보는 졸업호입니다. 전문지식교육기관인 한양대학교가 배출한 전문지식인 졸업생을 위한 신문입니다. 자가당착이긴 하지만, 이제 전문인이 되어 사회에 첫발을 디디는 졸업생들에게 힘들게 한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는 상식인이 되십시오.”

한양대학보 주간교수 이현복<인문대ㆍ철학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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