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과 이명박
노무현과 이명박
  • 한양대학보
  • 승인 2007.12.30
  • 호수 1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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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는 공자가, 인도에서는 석가모니가 세상에 가르침을 주던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아테네에서도 무지의 자각을 설파한 소크라테스가 있었습니다. 인류의 성인으로 칭송되는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들의 대항마였습니다. 괴변론자로 종종 간주되고 있긴 하지만 소피스트들은 결코 그리 터무니없는 사람들이 아니였습니다.

그들은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들이였습니다. 만물의 척도는 인간이라는 상대론을 주장했고, 광장문화에서 유용한 수사학을 강조했습니다. 지고지선의 원리, 원칙, 이념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래서 보편적인 진리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의 진리만이 존재한다는 상대주의는 일상적이고 대중적이며 실용적인 것이지만, 때로는 제거되어야 될 위험스런 사상이었습니다. 너도 옳고 나도 옳을 수 있다는 것은 통치자의 입장에서 아주 껄끄러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소크라테스는 당시 주류세력인 소피스트의 입장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좋고 아름다운 것은 여럿이 아니라 하나라는 절대주의를 주창했습니다. 좋음과 아름다움은 언제 어디서나 항상 그렇다는 불변론과 보편론을 주장했습니다.

이 지상의 모든 것들이 변하고 사라진다고 해도 저 천상에는 변하지 않는 영원한 것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영원의 것들을 바라보고 음미하는 것이야 말로 지복의 삶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향유는 논변의 기술인 수사학이 아니라 지혜의 학문인 철학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합니다. 

소크라테스가 지상의 것들이 지향해야 할 궁극의 일점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통치자의 입맛에 맞을 수 있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는 감옥에서 독배를 마시고 죽습니다. 아마도 소피스트들이 형성한 주류의 벽이 여전히 강했나 봅니다.

모든 것들이 회귀하는, 모든 것들을 분출해내는 저 궁극의 일점은 이념과 다름 아닙니다. 이념은 결코 살아서 도달될 수 없는 소망의 대상이고, 기다림의 대상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아름다움으로 다가옵니다. 소피스트의 눈에는 이 이념이 아름다움이 아니라 추상적이고 맹목적인 말장난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사실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지상의 것들을 해결하기도 어려운 마당에 천상의 것을 논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먹고 입고 자는 것에 비하면 이념의 아름다움은 사치한 것일 수 있으니 말입니다. 

지난 해 12월 19일 대통령 선거가 있었습니다. 여당의 참패, 야당의 압승으로 끝났습니다. 이것을 노무현 참여정부의 실정과 연결시켜 이명박 실용정부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언론은 해석합니다. 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오히려 이문열의 분석이 더 가슴에 와 닿습니다.

“2002년 대선에서 다수를 몰아줬던 진보도 전부 진성 진보가 아닌 거다. 우리 사회에 실용주의 혹은 실리주의라 할 세력이 있다. 이들이 2002년엔 진보에 기대를 걸었고, 이번엔 보주 쪽에 건 것이다. 흑묘든 백묘든 괜찮다는 그런 세력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등소평이 주장해서 유명해졌다는,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을 가지고 지난 대선을 분석하는 이문열의 입장은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노무현의 원리주의가 대중을 피곤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실용주의자, 아니 실리주의자들일 수밖에 없는 대다수의 대중들은 자신들이 한때 지지한 이념주의를 외면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대중들이란 본성상 이념의 아름다움보다는 실리를 추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보존의 욕망 때문입니다. 이것의 부정적 표현이 아마 “들쥐근성”일 것입니다. 

이번에 이명박을 선택한 대중들의 욕망은 5년 후 실리에 따라 다른 곳으로 향할 수 있습니다. 대중은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습니다. 지루해 하기 때문입니다. 또 절대주의 다음에는 상대주의가, 실용주의 다음에는 이념주의가 도래한다는 것을 역사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올 무자년은 쥐의 해라 합니다. 실리를 잘 챙기는 것이 쥐라 합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고양이 앞에 쥐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새해에 소망해 봅니다. 그리고 소크라테스 같은 노무현에게 격려를, 소피스트 같은 이명박에게 용기를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한양대학보 주간 이 현 복 교수 <인문대ㆍ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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