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약자의 눈으로 현장을 바라보다
기자, 약자의 눈으로 현장을 바라보다
  • 남정미 기자
  • 승인 2007.12.02
  • 호수 126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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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바라지 실컷 해놨더니 어떻게 그럴 수 있어"

개구리 올챙이 시절 생각 못한다더니 성공한 그는 백지 상태였던 과거시절 생각지 않고 매정하게 뒤돌아선다. 지금의 그를 만든 것은 지난 날 나의 피와 땀이다. 나오는 눈물 꾹 참고 보상을 요구했더니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 일관한다.

소설이나 영화에 등장하는 사랑이야기를 떠올렸겠지만, 이건 소설도 영화도 아니다. 현실이다. 목숨이 달린 생존 이야기다.

서울시의 ‘명품’ 계획에 배신당한 동대문 지하상가와 포이동 266번지를 찾아가봤다. 으레 이야기처럼 배신은 잔인했고 배신당한 이는 힘이 없었다. 기자가 주요 일간지에 있었다면 더욱 많은 이가 읽어줄텐데 하는 생각에 이번처럼 학생기자 신분이 안타까운 적이 없었다.

# 화려함 속의 그늘, 동대문 지하상가
동대문 운동장 역에 내리자 곳곳에 내년에 들어설 굿모닝시티의 홍보물이 붙어있다. 서울시의 월드 디자인 센터 계획은 거창하고, 공원화 계획은 조감도 공모전을 열 정도로 호화롭다. 이렇듯 동대문의 바깥 세계는 화려하다.

동대문 지하상가에 들어서자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상인들이 직접 작성한 시위 문구들이 상가 곳곳에 붙여져 있다. 맞춤법도 틀리고 글씨도 삐뚤빼뚤하지만 상인들의 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서민 정책 모르면 가르쳐 주겠다’ 등의 문구는 사태의 심각성을 반영한다.

처음에는 분위기가 무서워 쭈뼛쭈뼛 상가를 돌기만 했다. 그러다 용기를 내어 들어간 집이 우연인지 인연인지 상인회 회장님의 가게다. 조심스레 지하상가 사정을 물어보니 먼저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전달해 줄 수 있겠느냐 묻는다. 그동안 많은 기자들이 다녀갔으나 선거를 의식해서인지 제대로 기사화 된 적이 없다 한다. 자신들은 많이 배우지 못해 마음껏 항의도 못한다며 많이 배운 기자가 자신들의 사정을 꼭 전해 달라 한다. 그러면서 틈틈이 작성하셨다는 A4용지 한 장을 꺼낸다. 한 문장 문장마다 그동안 쌓인 응어리가 맺혀 있는듯하다.

동대문 지하상가의 사정은 이러하다. 서울시는 동대문 운동장을 공원화하고, 동대문 상권을 월드 디자인 센터로 발돋움 시키겠다는 정책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지하상가는 리모델링을  하기로 했다. 실제 서울시설관리공단에서 설계 도면을 가지고와 상인들과 함께 방향을 논의했으며 이는 서울시설관리공단 홈페이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9월 서울시는 돌연 태도를 바꿨다. 동대문 공원화 계획에 지하상가도 포함시킴에 따라 갑자기 상인들에게 철거 명령을 내렸다. 지난 30년간 이곳에 터를 잡고 스포츠상가라는 어엿한 상권을 이룬 상인들에게 이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였다. 그동안 세금 한번 밀린 적 없이 꼬박꼬박 납부했다는 한 상인은 “힘없는 우리에게 이래도 되느냐”며 “추워도 좋고 더워도 좋으니 장사만 하게 해달라”고 말한다.

사실 확인을 위해 서울시 지하상가 담당자와 통화를 시도했다. 내년 철거는 사실이며, 논의 방향을 협의 중이라 한다. 그는 기자에게 ‘아직 많이 남은 일’이라 느긋하게 말한다. 그에게, 아니 서울시에게 내년은 먼 미래의 일이지만 하루하루가 생존인 상인들에게 내년은 너무나 두려운 현실이다.

▲ 플랜카드에서 동대문지하상인들의 다급함이 느껴진다.

# 지도에는 없는 동네, 포이동 266번지
포이동 266번지에는 살고는 있으나 법적으로는 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무슨 사연인지 그들을 찾아가 보았다. 근처 부동산에 들려 포이동 266번지를 물으니 “개발단지 찾아?” 하고 묻는다. 공인중개사의 눈에 포이동 266번지는 단지 장기전세주택으로 바뀔 개발단지 일 뿐인가 보다. 

고급 빌라들 사이로 걸어가다 보니 고물들로 인해 길이 막혀있다. 같이 동행한 다른 기자에게 길을 잘못 든 것 같으니 ‘돌아가자’고 말했다. 다시 돌아갔다. 계속 같은 곳이 나온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고물들 사이로 들어가 보니 불빛이 새어 나온다.

불빛을 따라 들어가도 고철과 쓰레기 더미 사이에 비치는 불빛으로 간신히 집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다.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위태위태한 건물로 들어갔다. 대책위원장님은 먼저 들고 계신 자료들을 주루룩 쏟아낸다. 처음에는 차분했던 언성이 자료를 하나하나 보여주며 높아져 간다.

▲ 포이동 266번지 옥상에 서면 판자촌과 타워팰리스가 함께 보인다.

포이동 266번지는 전두환 정부에 의해 강제이주 당한 사람들이 이룬 동네이다. 이들이 이주할 당시 포이동은 커다란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포이동 주민들은 장화 없이는 생활 할 수도 없었던 곳을 장장 6개월에 거쳐 매립지로 만들었다. 지도관이라는 사람이 이들을 관리감독하며 통장까지도 모두 관리했다. 81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올림픽 때 이들은 외출금지 명령을 받기도 했다.

이랬던 그들에게 88년 이후 정부는 기존의 포이동 200-1번지를 지금의 포이동 266번지로 바꾸며 모든 주민들의 주민등록 주소를 말소했다. 일시에 그들을 불법점거자로 간주해 토지변상금을 물게 했다.

현재 포이동 266번지 주민들은 개인에 따라 5천4백만원에서 1억원정도의 토지변상금을 지고 있다. 주민들은 “이렇게 증거와 증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할 수 있느냐”며 주민등록 등재와 토지변상금 철폐를 요구한다.

현재 강남구청은 문서상 ‘강제이주 시켰다’는 문구가 없다는 이유로 이들을 불법점거자로 간주하며 주민등록 등재를 거부하고 토지변상금을 물게 하고 있다.

또한 서울시는 포이동 266번지 자리에 장기 전세 주택 ‘shift’를 세울 예정이다. ‘shift’는 무주택자가 시세의 80%이하로 최장 20년까지 살 수 있게 하는 전세주택이다. 무주택자에게 집을 마련해주자는 좋은 취지의 ‘shift’는 포이동 사람들의 한과 눈물 위에 만들어 지고 있는 셈이다.

▲ 포이동 266번지에도 희망은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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