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위엔 없겠지’라는 건 오해
‘내 주위엔 없겠지’라는 건 오해
  • 정혜인 기자
  • 승인 2007.11.12
  • 호수 12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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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퀴어? 'HY QUEER'로 우리학교 내에 있는 퀴어들의 모임이다. 지난 달 하이퀴어 홍보 포스터를 보고 우리학교 내에도 퀴어 모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성 소수자들에 관해선 알고 있었지만 만나본 적도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었다.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증과 긴장감속에서 그 사람들을 만나봤다. 어떤 사람들인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총 다섯 학우들과 두 시간 반에 걸쳐 인터뷰를 진행했다.

하이퀴어 어떻게, 왜, 무엇을

지난 달 학교 곳곳에 무지개색의 알록달록한 A3 용지가 눈에 띄었다. 자세히 보니 성 소수자들의 모임 ‘하이퀴어’의 홍보 포스터였다. “다만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이성애자들에게 저희들의 존재를 알리고 싶었어요. ‘저희 여기 있습니다.’라는 거였죠. 또 혼자 고민하고 있는 다른 퀴어 분들과 함께 고민을 나누고 싶기도 했었구요. 이런 모임이 있으니, 함께 참여하고 만들어 가자는 의도였죠.”

하지만 포스터가 생각보다 금방 떨어졌다. 아직까지 남아있는 포스터도 있다지만 대부분의 포스터가 짧은 시간 내에 학생들의 눈에 보이지 않았다. “붙인 다음날 한시 쯤 포스터가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서 붙인 곳을 쭉 다 돌아봤어요. 그런데 거의 1/3정도는 떨어져서 없어지고 찢겨진 곳도 있었어요. 좀 속상하더라구요.”

 여러 반응들이 있었지만 그 포스터가 제 값은 톡톡히 한 듯하다. 지난 주 토요일에 있었던 정모에 4,50 명 정도로 보통보다 두 배쯤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고 한다. 지금 다음카페 ‘HY! QUEER'의 회원수도 283명에 이른다. “모든 모임이 그렇겠지만 활동 하시는 분들만 활동 하시더라구요. 성 소수자라는게 당당히 드러내기엔 힘든 점이 있어서 가입만 하고 활동을 많이 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퀴어 모임은 각 대학마다 하나씩 있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에 있는 성 소수자들 모임은 학교 측에 요구해서 하나의 동아리로 인정받았다. 동아리로 활동하는 퀴어 모임들은 인권 운동을 하기도 하고 자신들만의 문화제 등을 개최하기도 한다. 이에 비해 우리학교 하이퀴어는 친목모임이다. 모임을 만들게 된 계기가 인권 운동 같은 목적이 아니라 같은 성 정체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지난 99년 9월에 만들어져 다음 달이면 3천일이 된다.

점심을 같이 먹는 점심모임도 종종 있고 정기적인 전체모임도 한다. 모일 때 새로운 사람들이 참가할 때 재밌는 일이 있다고 한다. “얘가 제 친구 후배에요. 이렇게 모임 밖에서 알았던 사람들을 하이퀴어 모임이 있을 때 다시 만나게 되면 재밌죠.(웃음)”  

 “친목 위주여서 그런지 인권활동을 중심으로 한 다른 대학들 보다는 편하게 참여하는 학생들도 많아요. 동아리로 인정받자는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긴 한데 동아리 인준 절차에서 불편한 점이 있어요. 저희 같은 경우는 얼굴을 드러내는 걸 꺼리는 데 인준 받으려면 사진도 찍어야 된다고 하고 동아리 부원들의 신상명세가 들어가는 명부를 내야 하는데 저희는 좀 꺼려지죠.”

 “왜 떳떳하지 못하냐고 하실 수도 있는데 이건 떳떳하냐, 그렇지 못하냐의 문제가 아니에요. 떳떳하지 못한 게 아니라 저희 모습들이 드러나게 됐을 때 문제가 많으니깐요. 저희한테는 생존의 문제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

'당연히’ 고민 없었어요

보통 동성애자들이 다수와는 다른 성 정체성을 갖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과 스스로 인정하기 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 중에서는 자신이 다수의 사람들과는 다른 성 정체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아무런 고민 없이 받아들이기도 했다. “언제부터 남자를 좋아했는지 기억도 안나요. 저 같은 경우는 친구들한테 배냇 게이라고 하거든요.(웃음) 배냇저고리라는 단어가 있잖아요.

저도 어렸을 때부터 게이였다는 뜻이죠. 초등학교 4학년 때 그러니까 특별히 성 정체성이 형성되기 전 인데도 남자애랑 스킨쉽 하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왜 남자를 좋아하는지에 고민을 한 적도 딱히 없었던 것 같아요.”

지금 우리세대에는 동성애라는 개념이 많이 언급되고 있다. 이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하지만 4,50대인 보수적인 사고를 갖고 계신 부모님들이 동성애를 이해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아직 부모님한테는 정식으로 말씀 못 드렸어요. 친구들한테는 말했는데 부모님이 놀라실 것 같아서요.”

 “저도 아직 말씀드리진 못했는데 나중에는 말씀드릴거에요. 언제까지 부모님이 모르실 것도 아니고 부모님이 그걸 받아들일 수 있는 때가 되면 적당한 기회에 말할 생각이에요.”

편견있는 것이 편견

소수로 살아가는 그들에게 다수는 쉽게 편견을 만들어 버린다. 타당한 논리 없는 단순한 비난만으로 그들을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에서, 학교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그들은 자신을 숨기기도 하고 고백(커밍아웃)을 했다가 더 큰 마음고생을 하기도 한다. 스스로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고백하는 것이 커밍아웃이라면 주위사람들로 인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성 정체성이 밝혀지게 되는 경우를 아우팅이라 부른다.

대학 내에서도 많은 아우팅이 일어난다고 한다. 동성애자임을 알고 앞에서 이해하는 척 하면서 뒤에서는 욕하기도 하고 그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받기도, 매우 극단적인 경우엔 자살을 생각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동아리에서 선배들이랑 술을 마시면서 제가 남자를 좋아한다고 말을 했어요. 믿는 사람들이었죠. 그 중 한 선배가 다독거려주면서 많이 위로해줬어요. 그런데 며칠 뒤에 그 술자리에 없었던 선배가 제가 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거에요. 알고 보니까 가장 가까이에서 위로해줬던 선배가 말한거더라구요. 진짜 배신감 느꼈죠.”

이성애자가 갖고 있는 편견에 관해서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을 듣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왜 편견이 생기는 지 원인을 찾는다는 게 하나의 편견인 것 같아요. 이성애자들에겐 왜 이성애자니 라는 질문을 안 하거든요. 수적으로 소수고 확실히 알려지지 않은 점이 많으니까 신기하다고 별 이유를 다 갖다 붙이죠. 이렇게 원인을 찾으려고 하는 그런 것 자체가 편견 인거죠” 동성애자들에 관한 편견을 고민하고 해결 하려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런 편견을 갖고 있는 자체가 편견인 것이다. 남자가 ‘왜 나는 여자를 좋아할까’ 혹은 ‘여자가 왜 나는 남자를 좋아할까’라는 식의 의문을 품지 않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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