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생 기자가 본 전학대회
공대생 기자가 본 전학대회
  • 손경원 기자
  • 승인 2007.09.16
  • 호수 12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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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서울배움터 전학대회가 있었다. 계획된 시작시간은 6시였지만 실제 시작시간은 그를 훨씬 넘긴 7시 20분 정도였다. 그 이유는 정족수 165명이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6시부터 총학 측에서 대표자수를 계속 확인했지만 정족수가 계속 넘지 못했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고 몇 사람이 더 들어온 결과 우여곡절 끝에 정족수 165명에서 4명 추가된 169명이 집계됐다. 이에 아드레날린 분비를 주체하지 못한 총학생회장은 흥분된 목소리로 4년 만에 2학기 학생총회 성사를 선언했다.

하지만 열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어느새 뒤쪽에 사람들은 엎드려 자거나 게임을 하거나 서로 이야기를 하는 등 전학대회에 ‘참석’만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 대표자들에게 는 회의 초반 발표가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였다.

어느 정도 시간이 더 지나니 ‘전학대회가 시작되면 나갈 수 없다’는 총학생회 말의 무게가 마치 1g도 안 되는 듯 가방을 들고 나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단지 대회성사를 위해 ‘참석’에 의의를 두는 대표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씁쓸한 뒷맛을 지울 수가 없었다.

게다가 어느 부서의 예산발표에서는 인쇄된 예산안에서 4백만 원이라는 큰돈이 빈다는 지적이 나왔다. 확인결과 작성자의 실수로 들어났다. 작성자는 사과를 하고 다시 수정해 올리겠다고 했다. 

각 부서의 예산심의과정이 끝나고 질의응답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그 시간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내 기억에 남는 건 총학생회장의 ‘질문이 없으면 다음으로 넘어 가겠습니다’라는 말 뿐이었다. 정책을 결정하고 학생들의 돈이 걸린 자리에서 의견과 심사는 없었다. 청문회처럼 치열한 공방전을 기대했던 기자는 실망감이 들었다. 차근차근 유인물을 읽어 보고 따질 것은 따지는 대표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아쉽게 느껴졌다

모든 산하기구의 발표가 끝나고 이제 의결안건을 투표해야 하는 시간이 왔다. 하지만 남은 사람의 인구밀도는 시작과는 다르게 턱없이 낮아져 있었다. 학생회 측에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나왔다, 빠져나간 사람들을 기권표로 처리하자는 의견, 사람들을 다시 불러들이자는 의견 등 많은 의견이 나왔지만 결국 전학대회는 거기서 마무리되고 말았다. 화려한 시작에 비하면 끝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곤 다시 전학대회를 기약했다.

반쪽짜리 전학대회가 다 끝나고 총학생회장의 생일파티가 이어졌다. 총학생회장의 생일은 마땅히 축하해줘야 할 일이지만, 전학대회 뒤에 파티를 연 탓인지 이번 반쪽자리 전학대회 성사의 축배를 드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시작이 반이라고는 하지만, 이번 전학대회는 절반의 성공도 거두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단지 4년 만에 열린 2학기 전학대회라는 것, 그 의미만 있었다. 속 내용은 증발되고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내일 열릴 전학대회에는 단지 ‘참석’만이 아닌 ‘참여’하는 대표자로 가득차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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