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가산점이 대안인가
군가산점이 대안인가
  • 한양대학보
  • 승인 2007.08.26
  • 호수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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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2월 헌법재판소에서 제대군인에 대한 가산점부여가 위헌이라는 판결이 있었다. 그 이후부터는 군복무에 의한 시험 응시연령 연장의 효과만 있을 뿐, 군복무자에 대한 사회적인 배려는 사실상 없어졌다.
교내에서 예비역을 보는 시선은 어떨까?

예전처럼 교내에서 야전상의를 입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전투복 바지를 입고 수업을 듣는 것도 아닌데 예비역은 항상 웃음의 소재가 돼는 듯하다. 흔히 군대에서 말하는 ‘작업’이 필요한 때는 제외하고는 말이다. 현역 장병들을 보는 시선도 비슷하다. 군인이라는 말보다는 ‘군바리’라는 말이 더욱 자연스러운 게 우리의 현실이고, 아직 군대를 안 간 남학생들에게 군인이란 단어는 한숨만 나올 존재이고, 예비역에게 현역 장병들은 한낱 불쌍한 존재들일 뿐인 것 같다.

우리에게 군 복무는 왜 이런 존재일 수밖에 없을까? 훈련소에 가면 세뇌 당하듯 교육받는 신성한 국방 의무는 왜 우리 가슴속에 없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리고 군가산점 부여가 우리에게 그런 군 복무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생겼다. 군가산점이 부여된다면 군 복무에 대한 우리의 가치관이 달라질까?

장병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사회의 시선이다. 다시 말하면 군복무에 대한 동기부여를 가로막는 사회의 시선이란 말이다. 군인들을 군바리라고 부르는 인식이나, 군대에서 후임 병들이나 괴롭히고, 축구나 하는 사람들로 보는 시선이 장병들을 고통 받게 한다. 고되고 외로운 생활에 대한 의미를 찾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고되고 외로운 생활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느낌, 오히려 놀림 당하는 느낌은 장병들을 군 복무에 대한 회의를 갖게 하는 것이다.

국방의 의무를 감당하는 사람들에게는 보상 보다는 동기부여가 더욱 절실하다. 이런 점에서 군 가산점 문제는 결코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힘들고 외롭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수고를 하는 패배의식에 젖은 생활이 아니라 누구나 인정하고, 군복무가 자랑스러운 인식이 조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장병들에게 군 복무에 대한 동기부여만 형성된다면 국방부가 추진하는 소수정예의 강군육성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다. 군내 자살사고나 내무 부조리, 각종 장병들 간의 사고도 자연스럽게 감소할 것이기도 하다. 그렇게만 된다면 군가산점은 논의의 대상조차 되지 못할 것이다. 장병들에게 국방의무는 의무보다는 오히려 권리로 인식되어 갈 것이기 때문이다.

군가산점의 부여가 결코 해답이 될 수는 없다. 필자도 예비역이다. 강원도 철원에서 2년 1개월가량 땀 흘리며 군 복무를 마쳤다. 군가산점은 군복무에 통해서 받을 수 있는 일부에 불과하다. 취업난이라는 현실 속에서 군가산점이 도움은 될 수 있겠으나 대부분의 남자들이 군 복무를 통해서 얻는 것은 합격증이 아니다.

자신보다 아랫사람에 대한 배려와 윗사람들에 대한 예의, 다양한 경험들을 통한 자신감과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가치관과 인간관계, 그리고 사람에 대한 이해, 사회에 대한 헌신을 통한 보람 등 너무 많다. 가산점의 부여 보다는 군복무자에 대한 인정과 칭찬, 우리들을 대신한 그들의 수고에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오병용<법대·법학과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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