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이 나를 망친다.”
“두려움이 나를 망친다.”
  • 한양대학보
  • 승인 2007.08.19
  • 호수 12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 ‘사랑’ 하나 만을 가지고 태어난다. 두려움은 후천적으로 들어온 것이다. 우리말에 “굴러 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는 게 있다. 우리 마음에서 두려움이 사랑을 빼내는데서 인생사가 시작된다. 두려움은 인생에서 참으로 많은 영향을 준다. 삶과 죽음,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 등 모든 것에 큰 영향을 끼친다. 만약 두려움에 지면 실패한 생이 되고 두려움을 몰아내거나 견뎌내면 성공한 생이 된다.

두려움이 무서운 것은 ‘제곱으로 확산’되는 힘을 가지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프로이센의 클라우제비츠 장군은 그이 명저인 『전쟁론』에서 ‘전력 두제곱’의 법칙을 세웠다. 전쟁에서 전력은 병력 숫자의 제곱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예컨대, 10척의 전함과 8척의 전함이 해전을 벌이면 8척 쪽은 모두 침몰하고 10척 쪽은 6척이나 남는다고 한다. 그 이유는 10척 쪽의 100(10x10)의 전력에서 8척 쪽의 64(8x8)를 빼면 36이 남기 때문에 6척(6x6)이 남게 된다는 것이다.

예전부터 지도자들은 사람들의 두려움을 잘 관리하면 성공해 왔다고 볼 수 있다.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을 관리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활용해서 지위를 누리기도 했다. 축제를 열어 가무음주를 해서 두려움을 잊게 했고 각 개인에게는 제사절차를 까다롭게 하고 혼령에 대한 호곡 등을 하게 해서 두려움을 잊게 했다. 그러나 인류를 가장 위대하게 두려움에서 구한 것은 종교였다. 종교에서는 두려움을 사탄으로 규정하고 정면으로 대결해서 이기는 방법을 제기하고 있다.

신학자 폴 틸리히는 두려움은 3가지 형태로 존재한다고 말한다. 첫째는 존재론적 두려움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가 대표적이다. 둘째는 목적론적 두려움으로 소망을 이루는 게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다. 셋째는 도덕적 두려움으로 이중적 삶을 살 수밖에 없는데 대한 양심적 고뇌이다.

사람에게 두려움이 들어오면 직간접으로 남과 비교하게 한다. 이러한 비교가 자신감을 잃게 하고 갈등하게 헤서 포기라는 유혹에 빠지게 만든다. 현실적으로 유혹을 예방하려면 자신감을 회복하고 도전정신을 갖는 길밖에 없다.

축구선수 이영표는 최고의 선수가 되는 비결은 경기에 임하면서 두려움을 이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두려움은 도둑과 같아서 마음속에 숨어들어가 불안, 공포, 이기심, 미움, 질투 같은 마이너스 감정을 불러들인다. 그러나 우리는 도둑이 들어와 있는지도 모른다. 이 때문에 우리는 마음에서 큰 도둑을 맞게 된다.

두려움을 막는 비결은 도둑을 막는 것과 똑같다. 도둑을 막겠다고 생각만 해서는 안 된다. 이영표 선수가 피나는 훈련을 통해 두려움을 물리치듯 우리도 배짱을 길러 자신감으로 무장해야 한다. 배짱은 ‘배와 장’을 말하는데 배포와 같은 말이다. 배포란 아랫배의 크기를 말한다.

배포를 크게 키우려면 아랫배로 깊은 호흡을 하면 쉽게 된다. 소위 단전호흡이나 명상호흡, 요가호흡 등은 기수련의 한 방법이고 찬송가 부르기, 불경외우기, 통성기도 등은 종교적 방법이며, 창가, 민요, 시조 부르기 등은 민간재래의 방법이고 조깅, 등산, 수영 등은 운동을 통한 깊은 호흡을 하는 방법이다.

우리가 나약하다고 하는 것은 호흡이 얕다는 뜻이다. 이런 사람은 우유부단하고 추진력과 실천력이 없어서 사회의 경쟁에서 뒤질 수밖에 없다. 앞으로 두려움을 이기고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열심히 깊은 호흡을 하도록 노력하자.

정기인<경상대·경영학부> 명예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