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연세춘추가 지키려는 가치를 지지한다.
우리는 연세춘추가 지키려는 가치를 지지한다.
  • 강명수 기자
  • 승인 2007.06.03
  • 호수 12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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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까지만 해도 72년의 전통을 가진 연세춘추는 그 동안 많은 대학신문 기자들이 부러워하는 곳이었다. 연세대의 명성과 수십 명이 넘는 우수한 기자단, 4층 건물을 독자적으로 사용하는 환경 등은 대학언론에 있어 연세춘추를 선망의 대상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29일에 벌어진 제호 삭제 사태와 연이어 터져나온 연세춘추 기자들의 자율권 요구 앞에 우리는 최고의 인프라를 갖춘 연세춘추에 그토록 기본적인 가치가 부재했었나 하는 당혹감을 감추기 어렵다. 주간교수·편집위원에 의한 자율권 침해라니, 연세대는 학생들에게 옳은 일을 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연세춘추의 학생들이 옳은 일을 할 능력이 없다고 말하는 것인가.

학생들은 정의로워야 한다. 학생기자는 더욱 그렇다. 때로 경험이 부족하기에, 비록 옳지만 미숙한 생각이나 행동을 할 때가 있다. 그 때 학생기자의 열정을 성숙한 행동으로 이끌고, 기사에 들어간 지나친 열정을 옳은 방향으로 인도하는 것이 편집국의 임무다. 특정 이익집단이 기자에게 현실적 외압을 가할 때, 이익집단과 기자들 사이에 서서 기자를 보호하는 것이 편집국의 참모습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옳은 일을 올바른 방법으로 하라고 말하는 그들이 만일 옳은 일을 하지 말라고 말한다면, 누군가의 이득을 위해 정의를 무시하라고 말한다면, 그들은 언론사 편집국이 아니라 이익집단의 또 다른 대표일 뿐이다. 우리는 이중의 어려움 속에서도 양심의 정의를 지키려는 연세춘추의 기자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물론 학생기자들은 미숙하다. 그래서 스스로 행동함에 있어 시행착오를 겪는다. 하지만 시행착오를 통해 미숙한 지성을 성숙한 지혜로 변화시키고, 새로 터득한 지혜를 전통의 이름으로 후배들에게 전해주는 것이 바로 학생기자다. 또한 전지전능한 어떤 한 기자, 한 사람에게 이끌려 가는 것이 아니라 기자 하나하나의 자율적인 의견들이 모여 합의를 이루는 곳, 그곳이 바로 언론사다.

연세춘추는 72년이란 시간 동안 성숙한 지혜를 쌓아왔다. 그리고 거기엔 학생기자들의 의지와 역량을 존중하며 학생들 간의 합의에 의한 자율적 결정을 존중하는 주간교수가 있었다. 학생들의 자율성에서 나온 결과를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참된 주간교수의 모습이다.

그렇기에 학생기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명백히 잘못된 목적으로 인사권을 행사하는 이 또한 이미 주간교수가 아니라 이익집단의 구성원일 뿐이다. 우리는 학생에게 있어 교수가 가지는 거대한 그림자 앞에서도 자율적 합의의 가치를 지키려는 연세춘추의 기자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같은 목표를 가지고 일하는 대학언론이며, 우리와 같은 날 같은 인쇄소에서 작업해온 연세춘추는 우리의 동료였다. 인쇄소 작업실에 오지 못하게 된 동료들을 생각하면 가슴 아프지만, 우리는 옳은 일을 위해 실로 어려운 결단을 내린 연세춘추 기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우리는 연세춘추의 능력을 믿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연세춘추의 교수와 학생들이 72년의 역사를 통해 증명해왔듯, 그들이 결국 올바른 결과를 이끌어낼 것이라 확신한다. 연세춘추 기자들과 다시 같은 작업실에서 만나는 순간을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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