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상이 어느 날 말을 한다면①
사자상이 어느 날 말을 한다면①
  • 김소희 기자
  • 승인 2007.05.14
  • 호수 12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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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사자의 이야기

#나의 탄생

 입학하기 전, 너희가 사진을 통해 처음으로 본 우리학교의 모습은 내가 본관 앞에서 위용을 자랑하는 모습이었을 거야. 너희는 내가 싫든 좋든 학교 다니는 내내 마주치게 되지. 내가 한양대에 자리 잡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이야. 1966년 15회 졸업식을 기념해서 공대 졸업생들이 나를 만들어줬어.

한 때 게시판에서 ‘우리학교 다니는 수사자 있잖아요. 몇 학번 인가요?’라는 글이 올라온 적이 있었지. 그 학생은 예전부턴 내가 무슨 과인지, 수능은 보고 들어왔는지 궁금했다고 하는군. 그러자 이런 댓글들이 달렸더군.
Re:건대 축산에서 학점교류 하러 왔다는 소문이 있던데 아니었나요?
    학생이라뇨. 교수님이십니다. 정글대학 사냥학과 교수님이십니다. 많이 연로하셔서 이빨이 없으시다는…
     사자는 정글에 안살아요 -_-;;; 아프리카 초원에서 교환교수로 오셨다던데…

난 교수도 아니고 학생도 아니야. 내가 아무리 백수의 대명사라지만, 내가 하는 일이 없는 건 아니야. 난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학교 상징으로서의 역할을 하지만, 365일 24시간 우리 학교를 지키는 경호도 하고 있지. 겨울에는 본관 야경을 아름답게 하는 것도 내 일이지. 반짝이는 조명들, 루미나리에로 예쁘게 장식된 내 주변 앞에서 사진을 찍는 너희들은 참 행복해 보이더구나.

#나의 하루

아침-아침 해가 어둠을 걷어내면 내 주위에도 사람들이 가득차기 시작해. 지하철을 타고 지각할까봐 허겁지겁 애지문을 오르는 아이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볼 수 있지. 그나저나 신본관 공사 때문에 사회대로 올라가는 오르막이 막혀서 어떡하니.

오후-화창한 봄날에 애인도 없이 혼자 걷고 있는 너희를 보면 참 안쓰럽다. 특히 남학우들 여학우 비율 적어서 그렇다고 변명하지 마. 여학우들은 눈을 조금만 낮추면 사귈 수 있지 않을 것 같은데. 그나저나 나도 나름 늠름해 보이지만 정말 외로워 ㅠ.ㅠ

옆에 사자 한 마리 더 세워 주든지 아니면 우리 학교 상징하는 새 있잖아. 뭔지 모르겠다고? 비둘기가 우리학교의 또 다른 상징이란다. 비둘기 상 하나만 세워줘. 연애 때문에 고민이 많지? 특히 좋아하는 사람 때문에 가슴앓이 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더라.

내 앞에 지나가는 사람 표정만 봐도 난 알 수 있어. 지금 고백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못해서 너무 답답하면 밤에 사람들 없을 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듯이 내 앞에서 “나는 OO이를 좋아한다~!”고 외쳐봐 그럼 내가 네 사랑이 이루어지게 도와줄게. 내가 할 일이 더 늘었군. 사랑의 큐피드까지 돼야 한다니.

밤-중도에서 공부 마치고 집으로 내려가는 길에 야경과 함께 어둠에 묻힌 나를 쳐다볼 때 제일 뿌듯하지 않니? 내가 오늘 하루도 수고했다고 말해주는 것 같지? 그나저나 너희 이렇게 열심히 공부해도 취업이나 할 수 있겠니? 나는 철밥통이라 괜찮은데 너희는 어쩌니…청년 실업이 33만인 시대에 태어나서 참 안됐구나…

#내 이빨

우리학교 편의점 ‘사자가 군것질할 때’에서 정작 난 군것질해 본적이 없는데. 거기서 군것질 좀 해 보는게 소원이야. 난 이빨이 자주 빠져서 먹기 힘들긴 하지만. 내 이빨 뽑아 간 사람들. 그거 뽑아가도 아무 소용없는데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임플란트 하는 비용이 얼만데 ㅠ.ㅠ 한두 번도 아니고 몇 번씩이나. 내 이빨 갈아 마시면 고시 합격한다고 누가 그래? 내 이빨은 부적이 아니야.

 오죽하면 학교에서 내 이빨모양 초콜릿을 만들어 팔 생각을 했겠니? 그 초콜릿 2004년부터 학교 빵집에서 판매해서 얼마간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지. 이빨 도난 재발을 막기 위한 너희들의 의견은 기특했지만 현실성은 없었지. ‘CCTV를 설치하거나 사자 주변에 연못을 만들자’, ‘사자 전체를 강철로 다시 만들자’, ‘아예 경희대 사자상처럼 입을 다물게 하자’, ‘차라리 살아 있는 사자를 키우자’란 황당한 의견까지 내놓았지.  결국 학생회는 내 이에 철심을 박아주기로 했지만.

#나의 바람
이번 서울배움터 축제 가수는 누가 올까? 나는 내 신세가 이래서 가수들 얼굴이랑 춤은 못  보니 들려오는 음악을 즐기는 수밖에…. 나는 왜 늘 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풍경밖에 볼 수 없는 걸까. 지겨워. 새로운 세상을 보고 싶어. 하늘로 비상하고 싶어. 내가 같은 자리에서 바라보는 너희들만이라도 온 세계를 돌아다니며 활약하는 게 내 유일한 희망이란다. 학사모를 입고 나를 등지고 사진 찍는 너희들을 보면서 내가 무슨 생각 하는지 너희는 아니? 너희가 내 꿈을 대신 이뤄줄 거라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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