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을 꿈꾸는 이들의 이야기
자살을 꿈꾸는 이들의 이야기
  • 김소희 기자
  • 승인 2007.03.18
  • 호수 12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살면서 인생의 마침표를 찍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이가 몇 명이나 될까. ‘자살미수자’로 남아서 삶을 지속하는 이도 많지만 자살로 숨지는 사람이 교통사고사망자의 1.5배에 이르는 게 현실이다.「자살토끼」라는 그림책의 표지에는 ‘누구나 죽고 싶을 때가 있다!’라고 쓰여 있다. 이 책에는 온갖 기구를 동원한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토끼의 그림이 이어진다. 그야말로 죽지 못해 안달이 난 모습이다. 실제 현실에서도 책 속 토끼처럼 어떻게든 이 세상을 떠나려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거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더 나은 길이라고 생각하게 됐을까. 자살을 소재로 한 소설에서 그리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죽음으로 가려던 길에서 만난 사람들
 두 장편소설「기발한 자살여행」,「딱 90일만 더 살아볼까」는 인생을 정리하려던 사람들이 우연히 만나는 과정을 무겁지 않고 재기발랄하게 다루고 있다.「딱 90일만…」에서는 떠들썩한 한해의 마지막 날 밤, 옥상에서 뛰어내리려다 마주친 네 명의 남녀가 번갈아 화자가 된다. 그들은 예상치 못하게 ‘자살 반상회’를 열게 되고 ‘세상의 낙오자들’이 된 사연을 나누다 ‘90일 간의 자살 유예’를 하기로 합의한다. “어쩌면 인생이란 석고로 메우기엔 너무 큰 구멍이라 손에 잡히는 대로 사포로 문지르는 사람이든, 대패질하는 사람이든 뭐든 붙잡아다 막아버려야 할 때가 있을지도 모른다.” 한명의 주인공이 한 말이다. 이 소설은 조니 뎁 주연으로 영화화될 예정이다. 「기발한…」에서는 핀란드의 시골 헛간에서 자살을 시도하려다 서로의 자살을 방해하게 되고 절친한 친구가 된 두 남자가 나온다. 그들은 다른 자살 희망자를 모집해 우연한 사고로 위장한 집단 자살을 계획한다. 선택한 방법은 버스를 타고 절벽에서 바다로 뛰어드는 것. 그들은 “멋진 자살을 위하여” 건배를 하고 핀란드를 횡단하는 여정을 시작한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라던가. 두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나름대로 가진 삶의 고통을 나누다가 결국 죽음이 아닌 삶이라는 최종 목적지에 함께 도달한다.

우리 사회를 비추는 소설 셋
도발적인 제목으로 눈길을 끄는 김영하의 장편소설「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의 주인공은 ‘자살 안내인’이라는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그는 고객이 스스로 선택한 죽음을 도와주고 그를 소재로 글을 쓴다. 김이은의 단편「마다가스카르 자살 예방 센터」는 반대로 119처럼 자살 위험 수위가 높은 ‘이태백’이라는 실업 청년을 구출하기 위해 접근하는 자살예방센터 직원이 나온다. 두 소설은 허구이고 판타지적인 요소가 많지만 우리 사회에서 자살이 가지고 있는 의미와 세태를 비추는 거울이 되고 있다. 동화 같은 박완서의 단편소설「옥상의 민들레꽃」는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도시의 아파트가 배경이다. 할머니가 두 명이나 자살해 주민들은 대책 회의를 연다. 화자인 어린 아이는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옥상에 올라갔다가 시멘트 사이를 비집고 피어난 민들레꽃을 보고 죽으려 했던 것이 부끄러워진 기억을 떠올린다.

사랑이 가져다 준 삶의 의미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와「사랑을 주세요」는 삶을 포기하려던 여주인공이 사랑을 깨닫고 삶을 긍정하게 됨을 보여준다.「연금술사」의 작가 파울로 코엘료의 「베로니카…」에서 베로니카가 죽기로 결심한 이유는 다른 소설의 주인공들처럼 삶에서 기대한 것을 얻지 못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삶에서 기대했던 거의 모든 것을 얻게 되었을 때, 그녀는 삶이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녀는 수면제를 다량으로 먹었지만 자살에 실패하고 정신병원으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간절하게 살고 싶어지게 되는 변화를 경험한다. 이 소설은 일본에서 이완 주연으로 영화화돼 오는 23일 개봉될 예정이다. 「냉정과 열정사이」작가 츠지 히토나리의 베스트셀러 소설인「사랑을 주세요」는 태어나면서 부모에게 버림받은 여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녀는 자살을 시도하며 방황하다가 구원처럼 남자의 편지를 받게 되고 그녀에게 남자는 삶을 비추는 등불 같은 존재가 된다.

문득 주변의 모든 일을 잊고 깊은 잠에 빠져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이런 책들을 읽어보는 건 어떨까.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삶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 소설이 가진 매력이다. 자살을 다루고 있는 소설은 매력을 하나 더 가지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일어난 끔찍한 일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마치 당장이라도 달려가 그를 돕고 싶다는 듯 아주 근심스런 표정을 짓지만 실제로는 타인의 고통을 보면서 그들 자신은 그나마 행복하다고 삶이 그래도 그들에게는 관대했다고 믿으며 즐거워한다.”「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에 나오는 글이다. 타인의 불행이 자신의 행복이 된다니 매정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소설 속의 주인공을 보면서 자신이 가진 상대적인 행복과 살아야하는 의미를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