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어쩌다가 신문 같은걸
[장산곶매] 어쩌다가 신문 같은걸
  • 김다빈 기자
  • 승인 2024.01.01
  • 호수 1577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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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다빈 <편집국장>

부편집국장으로서의 마지막 발간을 마친 날, 주간 교수님께서 필자를 포함한 기자들에게 왜 신문을 만드느냐고 여쭤보셨다. 누군가는 경험 때문이라고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글 쓰는 실력을 기르고 싶어서라고 했으며 누군가는 책임감이라 답했다. 하지만 몇 차례 질문과 답변이 돌고 돌아 필자가 대답할 차례가 다 되도록 머릿속에선 마땅한 답을 내지 못했다. 정 때문이란 모호하고 뻔한 답변으로 자리를 무마하고 집으로 돌아가며 스스로에게 같은 질문을 되뇌었다. 

생각해보면 처음 듣는 질문도 아니었다. 그간 주위에선 숱하게 영상 제작이나 콘텐츠 디자인도 아닌 신문을 택한 필자에게 그 이유를 묻곤 했다. 여태 별다른 답을 내리지 않고도 잘 지내왔건만, 시기가 시기인 만큼 이제는 무언가 답을 찾고 싶었다. 정말 나는 왜 신문을 만드는지, 기자로서의 일에 어떤 대단한 책임감이나 열정이 있는 것도 아닌 내가, 나보다 훨씬 큰 열정으로 뭉친 이 사람들을 잘 이끌어갈 수 있을지 말이다.

돌아보면 그저 글이 마냥 좋았다. 남들보다 말수가 적고 내향적인 사람은 응당 말보다 글을 사랑하게 된다. 영상이나 사진으로도 충분히 전달되는 정보를 굳이 글로서 접하는 일. 활자 하나하나를 만져보고, 완전한 기승전결을 한눈에 펼쳐 순서를 지키며 차근히 눈 맞추는 일. 엄지와 검지로 종이의 모서리를 가다듬다 적절한 순간에 과감히 넘겨내는 일. 읽는단 건 이 모든 일련의 과정들을 포함한다. 

그래서 막연히 글을 읽고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중고등학교를 거치며 생활기록부에 적힌 장래 희망은 시인이었다가, 작가였다가, 기자가 되기도 했다. 글을 곁에 둘 수 있는 일이라면 아무래도 좋았다. 

한대신문에 들어온 뒤로 지난 3학기를 보내며 몇십 편의 신문을 만들고, 그 세 배에 족히 달하는 기획안을 썼다. 정말이지 읽고 쓰는 사람이 되어 매주 기삿거리를 찾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지면 가득 써 내려갔다. 힘들고 불편하기만 하던 신문사 생활에 재미가 붙을 즈음, 이젠 더 이상 내가 이곳의 이방인으로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필자가 신문을 만드는 이유라면 그게 전부다. 어느 순간부터 그냥 자연히 그게 내 일이라 생각됐기 때문에. 

바야흐로 문과 침공의 시대다. 모두가 시청각 이상의 감각을 활용해 영상으로 정보를 접하는 시대에 글을 쓰는 능력, 글을 오래 붙들고 고민할 줄 아는 능력을 ‘능력’으로 봐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곳의 사람들은 그걸 알면서도 여전히 신문을 만든다. 주어진 몫만 조용히 하다가 임기가 끝나는 즉시 나가리라 다짐하던 수습기자는 이 자리에서 또 한 지면을 채우고 있다. 이 모든 일들이 아무리 생각해봐도 전부 ‘어쩌다가’란 말로밖엔 설명되지 않는다. 

앞으로의 한 학기 동안 필자는 이토록 불가해하고 시의적절한 ‘어쩌다가’로 엮인 사람들과 신문을 만들며 다시 읽고 쓰는 일을 반복할 것이다. 부편집국장과 편집국장의 차이는 단순히 직책명 앞에 붙는 한 글자 정도가 아니란 걸 하루하루 깨닫는 지금, 아직은 기대보다 두려움과 걱정이 크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필자보다 더 큰 열정을 가진 든든한 기자들을 보고 나면 이상하리만큼 막연히 할 수 있을 것 같단 마음이 든다. 

필자가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잠 대신 신문을 택한 이 사람들은 과연 어떤 마음으로 신문을 만들고 있을까. 도무지 모를 일이다. 우리는 어쩌다가 신문 같은 걸 사랑해선. 어쩌다가 신문 같은 걸 만들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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