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낡아빠진 이곳의 순수를 사랑한다
[취재일기] 낡아빠진 이곳의 순수를 사랑한다
  • 김여진 기자
  • 승인 2024.01.01
  • 호수 1577
  • 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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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여진<문화부> 부장

나의 2023년도는 어떤 한해였을까. 코로나 시국에 고등학교 교실과 기숙사에서 3년의 전부를 보냈고, 그 작은 교실 밖엔 당황스러울 정도로 넓은 세상이 있었다. 솔직히 말해 설레기보단 흔들리는 눈동자로 대학에 입학했다. 내가 살던 작은 도시와 가족을 떠나 도착한 서울은 모든 게 낯설었고 너무도 컸다. 수많은 향기와 색깔에 묻혀 나 자신이 흐물흐물해지고 흐려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두어 달을 헤매던 중 신문사에 들어왔다. 아직도 사무실 문을 처음 열던 날을 기억한다. 퀴퀴하고 낡은 모습이었지만 왜인지 필자는 그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신문사 한편엔 팔구십년대 학보사 선배들의 흔적이 있었고, 그 낡아 부스러지는 종이를 뒤적이며 왜인지 나도 이곳에서 나의 이야기를 써 내려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대학에 들어오고 처음으로 설렜던 날이었다.

밤샘 회의에 처음 정기자로 함께한 날을 기억한다. 새벽 4시 사설 방에서 다들 졸린 눈을 부비며 의견을 주고받는 모습에 왜인지 자꾸 웃음이 새어 나왔다. 새벽 4시에 웃음이 나오다니. 내가 졸린 나머지 드디어 미친 걸까 생각했지만, 사실 알고 있었다. 그건 내가 지난 3년 작은 교실에서 아주 오랫동안 기다려 온, 멍청할 만큼 순수한 열정이었다.

순수함이란 무엇일까. 수많은 소음이 엉켜있는 이 사회에서 더 이상 순수함이란 찾아보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쩐지 난 신문사에서 그 순수함을 보고 있는 것만 같다.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사무실엔 타자 소리와 종이 펄럭이는 소리뿐이다. 이 순간 이들의 눈앞엔 어지러이 얽힌 글자뿐이다. 시끄러운 이 도시에 이런 순간이 몇이나 있을까.

물론 신문사 활동에 의심을 가지는 순간도 있다. 얼마 전 나의 메모장엔 이런 글이 적혔다. ‘나는 대체 뭘 위해 나의 ATP(생체 에너지)를 이따위 생각을 글자로 남기는데 소진하고 있는가.’ 어쩌면 수많은 밤 우리가 각자의 순수한 마음을 태워 만들어 낸 것은 그저 지친 눈꺼풀뿐일지 모른다. “이 기사가 세상에 나가면 어떤 의미가 있지?”란 고민은 학보사의 숙명이다. 그럼에도 이 순간 우리가 이곳에서 종이를 펄럭이고 있는 이유는, 글쎄. 솔직히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나조차 설명할 수 없는 나의 그 모든 열정이 평생 잊을 수 없을 이야기를 써내려 가고 있다. 인터뷰이에게 박카스를 건네며 떨던 손, 수차례 이어진 인터뷰 거절에 울먹이며 앉아있던 새벽 2시의 고속터미널역, 쪽잠 자다 일어나 먹는 순댓국, 발간 회의의 막바지 서로 박수를 쳐주며 소감을 나누던 순간까지. 그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나와 우리의 이야기다.

올해 나의 가장 슬펐던 순간, 기뻤던 순간, 두려웠던 순간, 뿌듯했던 순간은 모두 다 그 퀴퀴한 사무실에 모여 있다. 누가 볼지 모르는 신문 지면에 나의 ATP를 쏟아내는 것. 어리석고 멍청하다 여겨도 상관없다. 나의 2023년은 그 글자들 사이에서 다시 꿈을 꾸며, 흐려지던 나의 얼굴을 다시 색칠하는 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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