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한대신문 문예상 소설 부문 심사평]
[2023 한대신문 문예상 소설 부문 심사평]
  • 신성환<인문대 미래인문학융합전공학부> 교수
  • 승인 2023.12.04
  • 호수 1576
  • 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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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소설 부문 응모작은 10편이었습니다. 작년에 비해서 소재와 상상력, 장르가 한층 다양해졌습니다. 고단한 직장생활과 가족관계, 상실과 성장의 생애주기 등의 소재 뿐 아니라, SF적인 근미래 공간이나 우화적 무대, 미스터리 구조 등, 응모작들이 다루고 있는 세계상은 어떤 복합적인 피로감이 짙게 배어 있는 듯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삶의 기준을 잡으려는 크고 작은 의지를 표명하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글쓰기에 집중함으로써 곰곰이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고 주체성을 놓치지 않으려는 태도와 관련 있을 것입니다.

흔히 소설을 자유롭게 서술하는 글이라고 여기지만, 사실은 매우 논리적으로 구축해야 하는 장르입니다. 서사적 질서와 인과관계가 중요합니다. 특정 상황이나 사건과 맞닥뜨린 인물이 논리적으로 반응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이 논리는 과학적인 그것이 아니라, 바로 그럴 수밖에 없는 인간의 논리입니다. 그 서사 안에서가 아니면 도저히 하지 않았을, 할 수도 없었을 반응과 행동입니다. 일부 응모작들을 보면, 인물을 지나치게 자유분방하게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서사의 매듭으로 인물을 결박하되, 동시에 인물이 반항할 수 있는 여지는 어느 정도 허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묶긴 묶되, 약간은 느슨하게 묶어둔다고 할까요. 그렇지 않으면 인물이 서사와 동떨어진 층위에서 활동하거나, 혹은 서사에 종속된 진부한 모습만을 보이기 쉽습니다. 몇몇 작품의 경우,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인물의 매력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양상을 보인 이유입니다.

대상으로 선정한 그 남자의 사정은 가벼운 로맨스로 시작하는 듯 했지만, ‘소설 쓰기그림 그리기라는 재현 행위를 다정하게 연결하다가 종국에는 삶의 단순성과 다양성에 대한 통찰로까지 이어지는 작품이었습니다. 사랑에 대한 깊은 고민은 결국 철학에 가 닿는다는 말처럼, 인물들이 나누는 실없는 대화들이 신선하고 다채로운 인간 감정의 색깔들을 창출하고 있습니다. 문학이든 미술이든, 모두 인간 존재의 수수께끼를 풀어보려는 과정에서 남기는 흔적이나 얼룩에 불과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독성 있게 잘 읽히는 동시에 빈틈없이 팽팽하게 구성한 문장도 돋보였습니다. 우수상으로 뽑은 믿음없는 클럽은 세 소녀의 믿음과 우정 사이 교착 지점을 귀엽게 그려낸 소설입니다. 익살스럽고 경쾌한 무드를 유지하면서도, 갈팡질팡 성장하는 시간 속에서 각자의 종교를 찾아 헤매는 지적 모험담을 속도감 있게 펼쳐냈습니다. 가작인 장현과 정현은 쉬이 짐작하기 어려운 두 자아의 관계를 밀고 당기는 진술로 나열하면서도, 끝까지 긴장을 잃지 않는 집요함이 두드러졌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작인 기다림의 끝은 안정된 문장력을 발휘하는 가운데 가족 간의 설명하기 어려운 불화와 연민을 그로테스크하게 묘사했습니다. 올해도 한대신문 문예상 응모작들을 읽으며, 소설 너머에서 분투중인, 자기 삶의 진정한 작가들을 그윽하게 상상해 봅니다. 빛나는 삶, 잘 써 내려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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