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한대신문 문예상 시 우수상] 애프터셰이브
[2023 한대신문 문예상 시 우수상] 애프터셰이브
  • 정시우<경상대 경영학과 17> 씨
  • 승인 2023.12.03
  • 호수 1576
  • 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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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 썬 라이즈 비포 썬 셋 비포 미드나잇 그런 영화에서처럼 산뜻하게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굿 럭 굿 애프터 눈 굿 바이 백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인사말들

백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사랑이라면 부담스러울 텐데 죽었다 깨어나도 모든 것이 그대로라면 어떨까

영화 속에서는 아까 봤던 남자가 아까 봤던 사람에게 자꾸만 치근덕거린다 해브 어 보이프렌드? 해브 어 굿 데이 해브 어 굿 타임 그에게 윙크를 하며 생각한다 그가 생각하는 사랑의 정의가

백년해로를 위해 백 년의 피로라도 기꺼이 견디는 것이라면 얼마나 끔찍할 것인가 누군가를 상상할 땐 혼잣말을 해도 혼자가 아닌 것 같다

이쯤에서 그가 사라진다면 그대로 눈먼 말들이 되겠지만

첫눈에 반했다가 첫눈 오기 전에 끝나는 사랑은 어떨까 굿 럭 굿 애프터 눈 굿 보이 문법에 따르면 그런 건 소년이나 강아지에게 쓰는 말이라던데

법적으로 소년은 열아홉이면 끝이 나고 강아지 중 열에 아홉은 열다섯 전에 죽는다 I hope you are doing well 굿 보이 굿 보이 굿 바이 마이 굿 보이

백 년 동안 애틋하게 불러보아도 나는 그 개를 모른다 그 개도 나를 모르고 그렇게 백년이 지나면 모두가 죽는다 그렇게 허무하게

이 시를 끝낼 순 없다 나를 대신해서 개와 놀아줄 사람은 언제쯤 나타날 것인가 개장수가 나타나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착하지 착하지 이리 온 그런 말이 머릿속에 울리면 그와 동시에 섬뜩한 생각이 떠오르고

이쯤에서 그가 역사 속으로 사라져준다면 참 좋을 텐데

애프터 스쿨 애프터셰이브 애프터 서비스 내 후견인은 누굴까 그는 자라서 내 애견인이 되어줄까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당신을 데리러 왔어

사후관리는 걱정하지 마 죽다 살아난 개가 그를 유혹한다면 어떨까 그들이 개장수를 죽이러 가는 장면에서 이 시는 끝이 나고 나는 오래도록

백련을 쥐고 있었다 반대편에서 누군가 다가오고 있었다

발걸음 소리가 내 쪽으로 가까워질수록 그것을 받고 싶어 하는 개와 그것을 맡고 싶어 하는 사람의 윤곽이 보다 선명하게 떠오르고 그나 개를 만나면

어떤 인사를 건네야 할까 백련을 놓고 싶은 마음과 백련을 받고 싶은 마음이 부딪힐 때마다 부담감은 커져만 갔는데 착하지 착하지

스스로를 안심시키려 할때 마다 산뜻하고 섬뜩한 냄새가 났다 그에게서 나에게서 개에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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