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한대신문 문예상 소설 가작] 장현과 정현
[2023 한대신문 문예상 소설 가작] 장현과 정현
  • 김가형<공대 건축학부 19> 씨
  • 승인 2023.12.04
  • 호수 1576
  •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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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페우스

우린 영원히 화해하지 못할거야. 오늘 정현이 죽었다. 아니, 어제인가? 너는 1158분쯤 온몸을 뒤틀며 앓기 시작하더니 거의 자정에 맞춰 모든 활력징후를 멈췄다. 00시에 얼추 맞춰 죽으면 그건 어젠가 오늘인가. 너는 오늘 죽었는가, 어제 죽었는가, 죽음의 범주는 어디서부터지? 아무도 식물인간을 살아있다고는 안 할 텐데. 20분 이후로는 심폐소생술도 하지 않는데. 그 따위 것들을 고민하며 장현은 염하여 봉한 정현의 굳은 발을 잡았다. 장현은 자신을 늘 미쳐버리게 만들던 정현을 생각한다. 그는, 세상 모든 섬세한 것들이 그러하듯, 염세적이고, 예민하고, 신경질적이었으며, 또한 연약해 보이는 구석이 있어 주변으로 하여금 부양욕구를 들게 하는 동시에 돌아버리게 만드는 경향이 있었다. 그리고 장현은 드물게 그 중 반만 해당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장현과 정현은 양막을 쓴 채 숨 쉴 때부터 알던 사이였고 장현은 그 사실을 진저리 치도록 싫어했다. 장현은 딱히 정현으로부터 부양욕구나 부성애나 모성애와 유사한 감정 따위는 느껴본 적이 없고, 늘 지긋지긋해 하거나 간혹 벌이는 정현의 충동적이고 대책 없는 계획 같은 것에 휘말려 피해다니기 바빴다. 장현은 도무지 이 불합리함을 견뎌낼 수가 없었다.

 

그는 사소한 것부터 장현을 열받게 하기 일쑤였다. 그와 함께 밥을 먹다가 식사를 끝낸건지 만건지 감도 잡히지 않는 순간에 뜬금없이 다 먹지도 않고 정현이 자리를 뜨면, 그건 다 먹었다는 소리다, 그가 남긴 밥은 장현이 해치우거나 보관하거나 해야한다. 장현은 식사예절을 잘 익힌 사람답게 먹는 도중 지저분하게 내버린 밥 같은 것을 그냥 두고 보는 사람은 못되어서 늘 제 몫의 밥은 일부러 반만 떠다 놓고, 정현이 그 날 남기는 밥에 따라 제가 먹을 몫만큼을 다시 떠 먹었다. 놀랍게도 밥이 많든 적든 정현이 밥을 남기지 않는 날은 없었다. 그래서 장현은 어차피 한 숟갈씩 남길 거라면 먹기라도 많이 먹으라고 어째 저와 비슷하게 먹는 것 같은데 삐쩍 마르기만 한 정현의 밥은 꾹꾹 눌러 담았다. 그랬더니 평소보다 조금 더 큰 한 숟갈 정도가 남길래, 이 정도면 나름 그의 꼼수가 먹혔겠거니 싶어 장현은 정현에게 한 숟가락씩 남기는 그 버릇을 어떻게든 고쳐낼 생각은 안 하고 그냥 정현이 남긴 밥을 먹었다.

 

이 경우는 케이크를 사와도 비슷하다. 애초에 정현은 케이크는 먹지 않고, 케이크를 장식한 초콜렛만 거둬가 먹는다. 장현은 이번에도 정현을 고칠 생각은 안 했다. 열 받는 것과 별개로 그는 정현을 고려하여 동그란 시트 주변을 빙 둘러싸는 초콜렛이 유독 많이 있는 케이크를 샀다. 그러면 초콜렛 한 두 개와 케이크 한 판은 장현이 며칠에 걸쳐서 먹고, 나머지 초콜렛 전부는 정현이 하루만에 다 먹는다. 그래서 둘의 생일은 판이한 계절에 있음에도 장현은 둘 중 어느 날이든 상관없이 항상 같은 케이크를 사왔다. 애초에 정현이 좋아하는 케이크는 한 판에 8만원은 되는 것이어서 맛이 있으니 없으니 누구의 입맛에 맞느니 안 맞느니 하기에는 모든 문화권의 입맛을 두루 맞출 만한 경이로운 맛이었다. 장현은 이제와서 정현과 맞서싸워 제 권리를 위해 투쟁하기보다는 적당한 타협을 결정했다. 괜히 싸우다가 정현이 제 감정을 못 이기고 다짜고짜 울기라도 하면 그게 더 곤혹스럽다. 일단 정현은 , 애초에 우는 타이밍조차 잡기 힘들지만, 울기 시작하면 말이 안 통한다. 오히려 울면서 이성적인 사람도 있다던데! 정현은 도무지 이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니 장현은 알아서 닥쳤다. 장현은 도무지 정현이 울면서 하는 말을 알아들을 자신이 없었다.

 

난 사람을 입양한 적도 없는데 왜 애를 키우지. 이건 무엇을 위한 희생이지, 까지 고민하다가 장현은 모든 생각을 잊어치웠다. 이런 건 깊게 생각하면 안되는 거야, 연필이 쓰임을 다해서 버려지는데 누가 희생이라고 생각하겠어, 그건 그냥 쓸모를 다 한거지, 괜히 어렵게 생각하고 파고드는 순간부터 스트레스 받아 위장병으로 가는 지름길이야, 그럼 그게 누구 손해겠어 다 내 손해지정현의 만행은 이뿐만이 아니다, 쉬는 날에 공연을 보러가거나 하면 인터미션에 맞춰 장현의 전화가 울린다, 정현이다. 약간 세상이 한바퀴 빙글 도는 심정으로 전화를 받으면 누구랑 밥을 먹어야 한단다, 네 몫까지 예약을 해 놓았으니 당장 나오라고, 그걸 꼭 봐야겠느냐고, 반은 봤으니 됐네. 공연을 본 사람들만이 공유하는 감정이 있다. 뮤지컬이든, 클래식 음악회든, 대체로 공연문화의 절정은 끝에 있다. 장현이 좋아하는 부분도 2부에 있다. 1부와 인터미션은 그 순간을 위한 주춧돌이나 마중물이다. 그 순간에 느낄 모든 감정적인 환희와 절망과 여타 인물에게 극렬히 공감하거나 그 순간의 극도의 희열을 위한 모든 것. 2부를 위한 1부와 1부를 위한 2.

 

정현은 그것을 값으로 매겨 갚아주겠노라 하나, 정현은 장현의 그 무엇도 모르는 거다. 반대로 장현은 정현의 모든 것을 아는데. 그러니 우리는 영원히 화해하지 못할거다. 너가 싫어하니 나는 굳이 싸우지 않았으나, 오히려 싸운 적 없으니 우리는 영원토록 이해의 범주에 있지 못할 것이고, 언제나 내게 침범하는 너를 유연하게 받아오려 애써온 내 세월이 무색하게 우리는 이토록 친밀하게 굴고 있는 것과 별개로 우리는 단 한 번도 친한적도 없는거다.

 

장현을 불가지론자가 되도록 만든 것이 있다. 그는 본래 카톨릭 신자였는데, 뭐 대개의 경우가 그러하듯 스스로 성당에 발을 들인 것이 아니라 물려받은 것이었다. 그럼에도 나름 신실하다 말할 수 있는 순간이 있기는 했는데, 어느날 그는 완전히 발길을 돌렸다. 그는 돌아돌아 어떠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 같은 존재가 있으리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게 글로 적히거나, 역사로 남거나 사상이 될 만한 것은 아니라 믿는다. 그가 생각하는 신 따위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있는 거지. 물이나 땅이나 지구나 동물이나 정현처럼. 그냥 그 자리에 선 채로 있는 것이지 뭐 딱히 믿을 만한 건 못될 것이다. 정말 그런게 있다고 정해준다면 장현은 아마 당장 죽이러 간 뒤에, 기꺼이 교단 앞에 나타나 자랑스레 그의 목을 내놓고 신은 없다! 라고 외칠 것이다. 내가 방금 죽였으니 이제 신은 없어!

 

장현은 그런 신은 없다 말한다. 오로지 편의를 위해 같은 년도에 태어난 아이들을 한 방에 스무명이고 서른명이고 밀어넣어 억지로 함께 생활하게 한 불합리성처럼, 정말로 그런 것이 존재한다면 정현은 정현대로 장현은 장현대로 살게 했어야 하는게 아닌가 생각한다. 정현은 정현끼리 살아야 하고 장현은 장현끼리 살아야 한다. 정현과 장현을 함께 살게 둘 것이 아니라. 장현은 정현과 함께 살게 된 것 만으로도 신이 없다는 사실을 깨우쳤다. 코란과 성경과 그가 알지 못하는 온갖 경전의 종교에 등장하는 신 같은 것 말이다. 그들이 진정 존재했다면 육식동물들도 풀을 뜯었을 것이고, 초식동물들은 이슬만 먹고도 가뿐히 생존했을 것이며, 피와 살을 먹는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았을 테고 인간은 여전히 벌거벗은 채로 살았을 거다. 오로지 미식을 향한 욕망을 위해 육류를 가공하지 않았을 것이고, 멋을 위해 옷을 염색하지 않았을 것이며, 토지를 소유하지 않았을 것이고, 계급을 창조해 동족을 내리누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술의 눈부신 발전과 예술의 아름다움 따위도 없고, 때에 맞지 않는 미쳐버린 날씨도 없었을 테다. 모든 것이 평온하고 아무것도 없었을 것이며, 장현도 정현도 없었을 것이다.

 

누군지 모를 위대한 위정자의 뜻에 따라 장현 혹은 정현 둘 중 하나만 있었겠지. 같은 하늘 아래 둘이 함께 존재하여 장현은 울었다. 그건 정현의 변덕스러움도 장현을 돌아버리게 만들 정현의 그 무엇도 포함되지 않았다. 장현은 약봉투 위에 아마 오늘 오전에 찍혔을 정현의 이름을 보고 낮동안은 아무렇지 않은 척 굴다가 그 날 저녁에 끝내 참지 못하고 냉장고 문을 열려다 그대로 손잡이를 붙잡고 주저앉은 채 울었다. 정현이 죽을 것이다. 그리고 그 뒤치닥거리를 장현이 해야한다. 장현은 저가 왜 우는지도 모른다. 이게 지긋지긋한건지, 이미 예정되어 있던 것을 회피하다 직접 눈앞에 들이미니 부아가 치미는 것인지, 단순히 슬픈건지, 아니면 나는 결코 아니라 자부했던 정현을 사랑한 것인지.

 

정현을 사랑하지 않은 건 일종의 장현의 자부심이었다. 그는 자신이 정현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왜 우리가 으레 말하는, 유혹에 빠져 금단의 과실을 집어먹지 않았다는 감정과 유사할 것이다. 정현을 사랑해봐야 좋을 게 없었다. 정현은 정말이지 해롭기 짝이 없는 인물인데다가 말 한마디에 무슨 생각을 해서 그런 결과가 도출되어 나온 것인지 이해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약 봉투에 이름 석자가 찍힌 이후로 정현은 자신의 밥과 물을 먹지 말라 말했다. 장현은 평생 하던 일을 뭘 새삼스레, 이제와 미안한가 싶어 어이가 없이 정현의 얼굴을 쳐다보았는데, 그 얼굴이 제법 진지하고 결연해 보여 뭐 요새 유행하는 독한 감기라도 걸렸나 싶어, 그런 건 장현도 먹고 싶지 않았을 뿐더러 애초에 그런 건 먹지도 않았다, 물어보자니 그게 아닌 것이다. 그는 나란히 약봉투를 두 개 두고 싶지는 않다 말했는데 장현은 그게 더 어이가 없었다. 애시당초 정현의 병은 옮기는 것이 아니었으며 유전자가 동일한 쌍둥이 간에도 누군 걸리고 걸리지 않는, 병의 원인이나 작동원리 따위를 특정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암이나 당뇨와 같이 가족력이 있다면 반드시 조심해야 한다, 와 같은 경우에 속하지도 않을 뿐더러 아직 전세계의 그 누구도 정확히 어떤 이유로 정현이 왜 아픈지 모른다.

 

정현은 자신이 무슨 대단한, 어디 눈먼 자들의 도시에나 나올 법한 나라를 통째로 혼란에 빠트릴, 질병이라도 걸린 것처럼 굴었다. 정작 같이 사는 장현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정현 덕에 대학병원 순례를 하든, 입원할 정현의 보호자 노릇을 하며 하룻밤 밤을 지새우든, 뭐라고 말하는지 잘 들리지도 않는 3분 이내로 끝날 의사의 말을 대신 들어주는 것도 장현은 딱히 어렵지 않았다. 늘 그가 하던 일이고, 장현은 그 사실을 기분 나빠 하지 않았다. 밥을 대신 먹어주거나 케이크의 초코렛을 전부 주던 일 처럼. 오히려 정현의 태도가 장현의 속에 열심히 땔감도 넣고, 기름도 붓고 하며 열과 성의를 다해 불을 질렀다.

 

장현은 정현 덕에 불가지론자가 되었다. 인간의 병을 고쳐주고 믿는 이를 구원해주고 대학도 붙여주고 직업도 얻게하고 재벌도 되게 하며 영생도 살게해주는 그런 신은 없다. 있다면 장현과 정현을 모두 미치게 만들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장현은 정현이 보는 모든 종교와 관련된 프로그램을 다 꺼버리고 싶었다. 집에 있는 모든 영상매체를 볼 수 있는 것들은 망치로 다 때려부수고 본인의 전전두엽도 어디다 쳐박고 싶어졌다. 그는 직장에서 요구하는 휴대전화 하나면 되니 그것 하나만 제외하고 텔레비젼이고, 데스크탑이나, 랩탑, 태블릿 PC 하다못해 손에 든 휴대전화까지 스마트라 이름붙여지는 모든 통신기기는 그 무엇 하나 가릴 것 없이 전부다 한 데 두고 두들겨 팬 다음에 불을 질러버리고 싶었다. 특히나 그 중에서도 가장 혐오스러웠던 일이라고 하면 정현이 미친듯이 매달리는 그 교회는, 할 수만 있다면 그곳으로 향하는 모든 도로들을 다 끊어놨을 것이다. 그래서 그냥 장현은 정현의 질병을 핑계로 운전면허증을 반납시켰다. 택시도 있고, 지하철도 있고 버스도 있지만 정현은 폐소 공포증인지 뭔지 모를 것이 있어 본인이 갇혔다 라는 생각만 하면 공황에 빠지는 탓에, 이마저도 병원에서 정확히 진단받기를 거부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못했다.

 

정현이 집 밖으로 나가고 싶다면 그의 걱정인형이 되어줄 장현도 있어야 하는데, 장현은 한 달에 19일을 근무하는 구급대원이었다. 새벽 근무도 심심찮게 있고, 쉬는 날에는 대개 잤으며 움직이는 날은 미리 예매해 놓은 공연이 있는 날이었다. 결국 정현은 생전 쳐다도 본 적 없던 공연을 장현과 함께 보겠노라 했다. 너가 무슨 그런 데에 관심이 있어, 라고 되물으니 정현은 장현이 끊어 놓은 온갖 수영이며 PT 며 필라테스며 재활인지 뭔지 모를 운동에 이골이 났다고 제발 다른 것 좀 해보자고 예와 다르게 이번에는 정현이 장현에게 미쳐버리기 일보직전이었다. 일부러 괴롭히려 그런 건 아닌데, 장현은 내가 보고자 하는 공연을 예약해줄 수야 있으나, 나와는 멀리 떨어진 자리가 될 거라 말했다. 애초에 장현은 모든 극문화에는 환장하는 경향이 있어, 표가 풀리자마자 재빨리 중앙 5열 쯤에 예매하는 종류의 인간으로 일 년의 1/3 정도 되는 날은 극장의 회전문을 돌았다.

 

그러니 내일모레 하는 극에 이제와서 너가 볼 좋은 자리는 없다. 그래도 정현은 간절했는지 평소와 같이 까탈스럽게 구는 일 하나 없이 장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장현은 가타부타 않고 예매해줬는데 정작 당일에 가니 정현은 1층의 중앙에 좋은 자리에 앉았고 장현은 무대가 가려지는 2층 끄트머리에 앉았다. 정현은 왜 내가 여기에 앉느냐 물었고, 장현은 이 공연장은 엘리베이터가 없다 말했다. 어기적거리는 널 끌고 2층을 오르느니 사지 멀쩡하고 건강한 내가 차라리 2층에 앉겠다 말하고 장현은 2층에 올라갔다. 예상대로 무대의 일부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가려진 부분은 극의 중요한 요소가 있는 장치였는데, 뭐 단순히 장치가 보이지도 않는게 문제가 아니라 그쪽으로 가면 보여야 할 배우도 보이지 않아 장현은 속으로 이런 자리를 돈 받고 판단 말이야?, 같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정현은 재미있었다 답했다. 장현은 그러면 됐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2층에 있는 동안 1층에 있는 너가 갑자기 뭔지도 모를 무형의 것에, 어쩌면 좌석 밑에 있을 괴물에, 겁에 질려 날 찾을까 전전긍긍하여 오롯이 극을 집중해서 봤든 보지 못했든, 중요한 요소가 되어주는 장치를 구경이나 했든 못했든, 주인공이 하필 비극적인 서사의 인물이어서 인생을 대차게 말아먹든 말아먹지 않았든 간에 그 어떤 무대의 현장이 주는 감정의 고조 따위 없었다 하더라도 장현은 정현이 적당히 재미있게 봤다면 아무 상관 없었다는 생각을 했다. 그 후에 장현은 텔레비전의 모든 지상파를 끊고 OTT 프로그램을 결제해 정현에게 보게했다. 괜찮은 목록을 추려서 정현에게 주거나 일부 영화는 구매해 정현에게 넘겼다. 목록에 있는 모든 작품을 정현이 재미있게 봤는가 아닌가는 장현은 영원히 모를 것이나, 어쩌다 2화까지 본 것 같은데 다시는 보지 않겠다 다짐하며 저 멀리 밀려난 작품의 재생목록을 보며 장현은 웃었다. 정현이 그것을 보기 싫어할 줄 알고 있었다. 이건 다소 통제광적인, 일종의 복수였다. 장현은 정현이 꼴도 보기 싫었다. 그리고 사람을 무너트리는 것은 그의 일부가 되어주었다가 사라지는 것이라.

 

그런데 정현이 없는 장현은 본래 어떤 사람인가하면, 일 년의 1/3 쯤 되는 날은 극장의 회전문을 돌고 할 일은 책임을 다하고 버릇없게 굴지 않고, 특히 밥상 앞에서의 교육이 빛이 나며, 조금은 약삭빠른 면이 있고 하루 종일 장난을 치는 사람이다. 특히나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진지한 얼굴로 장난을 치는 것이 특기인 사람으로 사람의 간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아먹는 경향이 있어 처음에는 동료들이 싫어하다가, 꼭 결정적일 때 진중하고 믿음직한 면을 보이는 사람이라 결국에는 모두가 그를 좋아하게 만들었다. 그는 오로지 정현에게만 장난치지 않는다. 집 밖에만 나가면 헤르메스며, 로키며 온갖 장난의 신들이 그 앞에 이름붙여지는데 한 집에 사는 정현은 정작 장현의 그런 면은 상상도 못하는 것이 아이러니다.

 

정현이 모르는 장현의 비밀이라 하면 더 있다. 장현은 술도 곧잘 마시고 담배도 핀다. 정현의 앞이 아닐 뿐이지. 정현은 저가 둘 중 그 무엇도 하지 않으니 장현 또한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니 같이 살았지, 아니면 본인이 장현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라며. 여기에는 장현의 철저함도 한 몫 한다. 장현은 정현에게 5분 대기조로 훈련당한 탓에 어느 때든 2안을 준비하는 강박적인 컨트롤 프릭을 모방하는 습관이 생겨 술 마실 날, 담배 필 갯수도 정해놓고 살았다. 간혹 스트레스를 받으면 초콜릿이라고는 조금도 장식하지 않은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한 판 사와 숟가락으로 퍼먹는다는 사실조차도 정현은 모른다. 장현은 DNR(심폐소생술 거부) 동의서도 작성했고 자신의 몸을 빠짐없이 전부 기증할 것도 약속했으며, 장례식조차 하지 말라 미리 유서도 적어 두었다. 정현이 장현의 비밀을 알려고 해봤자 정현은 장현이 적당히 노출해 놓은 공공연한 비밀인 대극장 회전문을 돈 횟수와 소비한 금액 정도만 알아내고 아무것도 모를 것이다.

 

이건 정현이 무신경하여 모르게 되었다기 보다, 장현이 모르게 한 것이다. 장현은 항상 저가 먼저 죽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느 날 정말로 감당하기 힘든 재해가 발생하여, 그 자리에서 동료들과 마지막 악수를 나눈 뒤 오늘이 아마 마지막일 것이라 정해진 예견 앞에 사람을 구하다 죽어 정현처럼 가늘고 길게는 아마 못 살 것이라고. 장현이 죽고 싶은 사람 처럼 구는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다. 그는 전형적인 도파민 중독자였고, 온갖 익스트림 스포츠에 발을 들여 봤으며, 그 중에 일상에서 온건하게 접할 수 있는 도파민의 종착지가 극 문화였을 뿐이지 꼭 그것이어야만 할 이유는 없었으나, 정현만이 그 사실을 몰랐다.

 

장현은 오로지 저가 주운 두 마리 고양이를 위해 지금까지 얌전히 살았다. 그는 그 두 마리 고양이가 죽으면 다시 익스트림 스포츠를 할 것이고, 이제까지 해왔던 것 보다 더 과감한 짓도 해볼 것이며, 아마 그런 방식대로 살다간 자연사로 죽기는 힘들테고, 장례는 아무래도 정현이 치뤄야 할 것 같아 홀로 관을 미는 일따위 경험하지 않았으면 하여 장례를 치루지 말라는 동의서를 작성했다. 장례식장에 자주 들락날락하는 장현은 우연히 홀로 무거운 관을 밀다가 주저앉아 우는 사람을 대신해 그를 태워온 택시 운전사가 관을 마저 밀어주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장현은 정현이 딱히 그런 일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언젠가 필히 올 장현이 죽게될 날에도 정현은 평소와 같이 울음만 터졌다 하면 뭐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며 횡성수설하다가, 어디 병원 휴게실에서 지쳐 쓰러져 누워 잠이라도 푹 자고 일어나 다 끝났다는 말을 타인의 입에서 전해들었으면 했다. 정현은 피도 못 보고, 연출에 불과한 스릴러 영화의 잔인한 장면마저 질겁하는 사람이라 그냥 너는 스스로의 감정을 주체 못하고 지쳐 누워 있으면, 모든 일을 타인의 손으로 끝내주었으면 해서 그러했다. 툭하면 자신의 감정을 주체 못하고 우는 정현이 장현의 빈 관이나 밀 수 있으면 다행이다.

 

그러니 장현의 모든 일은 대부분 비밀이었다. 정현이 기겁하여 졸도하지나 않으면 다행이었으므로. 그에 반해 장현은 신경줄이 얼마나 굵은지, 정현이 어디가서 박아 온 다리에 멍이 들어 오든, 뼈를 부러뜨려 오든, 허리를 삐어서 기어오든 상관 않고 적절한 과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게 했다. 넌 왜 그렇게 항상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냐는 힐난에도 장현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뭐 큰일이라고 난 맨날 베이고 깨지고 다치는데, 라는 응수가 전부다.

 

정현이 실수로 자신의 손가락 살 일부를 잘라먹었을 때도 그랬다. 장현은 부엌에서 깨끗하게 삶아 놓은 가제수건을 하나 들고 와, 어쩔 줄 몰라하며 상처를 어떻게 해보지도 못하는 정현의 손을 빙빙 감싸 지혈하여 반대쪽 어깨 위로 올려 고정하고는, 이런 걸로는 구급차가 안 와, 살은 어디다 떨어뜨렸어 이 정도 잘랐으면 꿰매야 할텐데, 라고 말하며 정현을 잠시 침대 위에 앉혀 놓고는 정현이 잘라버린 살점을 찾아 헤매다가 도저히 못 찾겠는지, 어딨는지 짐작도 안가? 라고 묻는 것이다.

 

정현은, 그게 물론 자신을 위한 것이란 걸 알지만, 자신의 손에서 꽤 많은 살덩이가 떨어져 나간 그 순간부터 미친듯이 어지럽고 메스껍우며 온 몸에 힘이 빠져 일어나지도 못할 것 같은데 그 태평하게 잃어버린 살이나 찾으며 119는 오지도 않는다는 소릴 듣고 있자니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만해! 너가 구급대원인데 119가 안 오니 뭐니 그런 소리는 왜 하는거야! 안 오면 택시잡고 이 앞에 있는 응급실 가면 되지, 이 새벽에 살을 꼭 찾아야 해? 손가락이 반쪽이 되든 말든 상관 없어. 지금 아프다고!, 그 정도 상처는 잘 처치하면 살도 다 차고 흉터도 안 남아. 불안해 할 것도 없어 손톱도 다 깨끗하게 자랄거야. 워낙 깔끔하게 잘려서, 택시 부를게, 기다려.

 

이러니 장현만이 정현에 의해 미쳐가는 건 아니었다는 소리다. 장현은 무슨 일이 있든 태평하고, 긴장을 해도 전혀 티가 나지 않았으며, 그가 긴장한 것 처럼 보이는 건 대개 연기에 속한다, 특히나 타인의 상처 앞에서는 극도로 침착해져 구급대원으로는 적합할지 몰라도 정현과 같은 사람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정현은, 자신의 감정을 잘 이기지 못하는 사람인 탓에 감정적 공감을 얻지 못하면 극도의 불안을 느껴 감정을 내뿜는 반면, 감정적 동조를 얻지 못하면 그가 내 고통에 전혀 도움을 주지 않고 그를 내버려 둘거라 늘 착각했다, 장현은 기분이 어떻든 항상 비슷비슷한 사람이다. 애초에 감정이란 걸 그렇게 크게 느끼지도 않았다. 그리고 정현은 항상 장현이 언젠가 자기를 버리고 가는게 아닌가 하는 불안에 놓여 있었다.

 

물론 정현은 장현이 자신과 완전히 분리된 한 개체이며 그 개인적인 특성을 존중해주어야 하고 독립된 존재로서 그만의 영역이 분명히 존재하여 타인과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는 경계하여 적정 거리를 유지해야한다는 것을 알지만, 알고 있음에도 정현은 장현이 없으면 어쩔 줄 몰라했다. 그리고 그건 장현이 정현을 너무 싫어했음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장현이 정현을 싫어한 것은 한두해 일이 아니다. 그는 스스로 사고가 가능한 주체적인 자아를 갖게 된 그 순간부터 정현을 싫어했다. 미워했다기 보다는, 같은 종임에도 너무 다른 성향을 가진 탓에 정현을 멀리 두고 마치 아무 말이나 내뱉는 덜 발달한 AI 정도로 다루듯 한 것이 있다.

 

정현이 나이를 얼마나 먹든 일곱살 정도 수준의 사회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 장현은 자신이 가진 이타성을 기반으로 모든 때와 장소에서 그를 배려해 우선시할 것이며 이는 장현이 줄곧 정현으로부터 고수해온 자세이고 정현의 입장에서는 다소 두려운 것이었다. 언젠가 장현이 저 모든 것을 거둘 날이 올 것이다. 장현은 정말 이상할 정도로 타인을 돕는 것을 가리지 않는 성격이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에 대한 기준과 거리가 확실하여 장현의 헌신적인 성격은 지극히 개인적이지만서도 유감스럽게 그 안에 진정한 의미의 사감은 없었다.

 

장현은 지나칠 정도로 정을 붙이거나 하는 것이 없었다. 이 둘이 따로 살 적에는, 장현은 툭 하면 제 자리에 없기 일쑤였다. 애초에 한 군데에 붙박여 살아갈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일부러 한 달에 19일이 아닌 22일씩 근무하다가 휴가를 쓸 때가 되면 그 동안 일한 값을 모두 몰아받아 2달 정도 사라지고는 했다. 어디에 간다 만다 가타부타 말 한마디 없이 사라졌다가 일 할 때만 되면 돌아오니 정현은 장현의 그 방랑벽을 어떻게든 고쳐놓고 싶어 안달이 났다.

 

도대체 왜 필요할 때 없는 거야. 이 질문의 답을 안다. 너가 나의 사족이나, 정말 없어서는 안될 보호자 같은 것이 아니니까. 너는 날 때부터 마치 알아서 혼자 난 사람처럼 미취학 아동일 때도 없는 밥도 알아서 먹고, 그 누가 가라고 하지 않아도 학교도 알아서 가고, 옷도 혼자서 입고, 다른 사람보다도 더 빨리 혼자 살았으니까, 온 세상 사람들을 다 귀찮게 하며 자란 나와 다르게 넌 원래 혼자니까, 누군가 너의 주양육자가 되어 안정적인 정서적 교류를 해준게 아니니까……

 

그러니 정현은 장현이 언제나 차마 외면하지 못하는 불쌍한 역을 도맡아 했다. 언젠가 장현이 그가 사지 멀쩡하고 상식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어른이란 걸 깨닫게 되는 순간 기꺼이 그를 버리고 두 마리 고양이만을 잘 챙겨 이 집을 떠날테지만, 정현은 최대한 그날을 늦추고 싶었다. 그리고 장현은 자신이 여기저기 아픈 지구에도 후원하고, 아픈 이웃에게도 후원을 하고, 봉사도 하러 다니는 자신의 성격적인 특성을 십분 활용하여 정현이 떼를 부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장현은 정현과 함께 살게 된 그날부터는 딱히 그를 거절하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게 정현은 정말 그린듯이 불쌍한 인간이였다. 그에게 잘못 걸렸다 싶은 수간이 없었다 할 순 없어도, 정현이 반쯤은 성격파탄자이며, 의존증이 있고, 타인을 현관 앞 발 매트 정도로 쓰는 습관이 있어 인간관계가 남아나지 않는 것도 알았다. 정현은 정말이지 사회성과 관련된 발달은 조금도 되어 있는게 없어서 사람을 미치게 만들지만 또 불쌍하게 보이기도 했다.

 

기어다니는 애가 시도때도 없이 우는 걸 성격이 파탄났다고는 하지 않지 않는가. 그래서 장현은 정현의 연령대를 더 낮추어서 아예 한 세 살 쯤 된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러면 또 이해해주지 못할 것도 없고, 어려울 것도 없어서 그렇게 살았고, 그가 아픈 뒤에는, 정말로 그가 세살 짜리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리고 자신을 그냥 현관 앞에 놓인 발 매트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정현 앞에 자아를 가지는 순간 미쳐버리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라 장현은 그냥 자신을 포기하는 깔끔한 선택을 했다. 정현을 피할 수 없는 순간이 오리란 것도 알고 있었고, 새삼 그 과정을 돌이켜 생각해보자면 정말 억울하지만, 이 순간을 피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도 아니어서 집에 들어갈 때마다 이러한 자기 세뇌를 했다. 나는 그런거지. 살인을 저지른 주체가 아니라 그 사람 손에 들린 칼. 판사가 죄는 물건에게 있노라 선언한 그 살인의 무기가 된 날붙이.

 

살인자는 벌을 받지 않았다. 정현 또한 그럴 것이다. 그가 장현을 들고 얼마나 휘두르든, 그의 인격을 어떻게 모독하고 괴롭히든 그를 재판에 세워 비난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가 병에 걸려 곧 죽게된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그 사실을 너무 잘 알아 장현은 정현이 죽는 날을 기다리기로 했다. 정현 때문에 더는 인생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장현 나름대로 온건히 헤어질 방법을 찾은 것이다.

 

반면에 정현은 죽어서도 장현에게 남고 싶었다. 그에게 불변할 가치가 되어 그의 곁에 늘 함께하고 싶었는데, 그게 신앙따위 조금도 없는 장현에게 도움이 될 거란 믿음이 첫 번째였고, 두 번째는 그가 이렇게 죽는 것이 억울해서였다. 난 아직 이렇게 젊은데 이렇게 몹쓸 병에 걸려 이렇게 죽게 되다니! 장현은 정현이 병에 걸린 것이 사실상 자업자득에다 어디선가 쌓아온 업보가 돌아온 것이라며 속으로 비웃었는데 정현은 그 사실에 죽도록 억울해했다.

 

정작 장현은 이야, 어딘가에 뭐 민속신앙에 기대는 정의구현 따위가 존재하기는 존재하나보다 정현에게 이렇게나 빨리 저런 날이 오다니, 이러며 약간은 즐거워했다. 그러니 장현의 이 이상스러운 헌신은 사형수에게 마지막으로 주는 밥과 같은 의미다. 내가 뭐 이런 거 못 해주겠니 곧 영영 안 볼 사이에! 분명 정현이 아프다고 선언한 날에는 기분이 진창으로 쳐박혔는데, 날이 갈수록 도파민이 쭉쭉 오르는 것이다.

 

이거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일이구나. 내가 굳이 손을 써 너를 죽이지 않아도 죽는 날이 오다니. 정현이 기겁하는 고양이 두 마리가 무슨 이유로 어디서 왔겠는가? 정현이 송곳니 네 개와 쌀알같은 앞니를 가진 털 동물을 곧 죽어도 무서워하니 온 것이다. 다행히 정현은 고양이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무척이나 무서워해서, 정현 하나를 내쫓기에 둘이 합해봐야 10키로 정도 뿐이 되지 않는 고양이 두 마리만으로도 역할을 해내기에 너무나도 충분하여 만족스러웠다.

 

고양이 두 마리로 새벽에 다리를 질질 끌며 나와 장현의 잠을 깨우는 정현을 물리쳤다! 이보다 기쁜 일이 있을까. 장현의 침실 문을 차마 열지도 못하고 돌아서는 정현의 발소리가 이만큼이나 통쾌할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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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의 입장에서는 얼마 지나지 않은 때가 되어서 드디어 정현이 말 한 마디 제대로 못 하고 침대에 눕혀 하루종일 간병인을 써야 할 날이 왔다. 장현은 그 순간부터 자신이 살던 대로 살았다. 다시 22일을 근무했고, 고양이와 더 많이 놀았으며 정해 놓은 날짜보다 약간은 더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거나 했다.

 

장현은 정현이 죽게 될 날까지 방에 들어가지 않았다. 정현이 두려워한 바대로 장현은 정현을 향한 거의 모든 관심을 끊고 간병인들이 모든 일을 알아서 하게 냅뒀다. 그리고 여태 정현이 죽어간다는 사실만으로 여러번 환희의 절정을 맞은 것과 다르게 정현이 진정으로 침대에서 옴짝달싹 못할 날을 목도하자 장현 또한 묘하게 그 사실 자체에 흥미가 떨어지고 시들해졌다.

 

, 썩 뒷맛이 좋지는 않군. 그 정도 감상이었다. 평소에 너무 싫어하던 사람이라 혹시나 그의 병의 근원에 제 원한이 매달려 있어 한 5% 정도는 그의 병마에 가담을 한 것은 아닌가 싶어 그는 약간 찝찝해졌다. 하지만 그건 정현의 잘못인데. 장현이 미쳐버린 건 오롯이 정현의 죄인데. 장현은 신경 쓰지 않고 덮어두기로 한다. 그게 어떤 말로를 맞이하든 그가 알 바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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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음의 냄새가 났다. 갓 죽어 아직 뜨끈한 체온 아래 시취가 났다는 소리가 아니고, 오랫동안 병들어 아픈 사람 특유의 피와 살이 바싹 마른 냄새가 났다. 그 냄새를 맡으며 장현은 이제까지 계획해왔던 오로지 한 곳으로 향하던 인생의 모든 경로를 부수어 뒤엎었다. 그건 너무 기뻐서였을 수도 있고 속을 게워내다못해 속을 아예 뒤집어 긁어내고 싶을만큼 메스꺼워서였을 수도 있다. 그는 반듯하게 누워 시신이 된 정현을 보면서 오로지 한 생각밖에 할 수 없었다. 반드시, 반드시 살아남으리라. 죽는 한이 있어도 관짝을 뜯고 나와 부활하리라. 설사 몸 안에 들어찬 장기를 다 뜯어간 후라 할 지라도, 누군가 인간을 빚어 만든 이상 나 또한 스스로 빚어 다시 태어날 거다. 절대 죽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헤어지게 된 이상 절대로 정현과 다시는 함께 살아가지 않을 거다

 

정현이 죽어서 장현은 분명 기뻤다. 마치 커튼콜 무대 위에서 웃는 배우들처럼 모든 것이 안전하게 끝나 기쁘기 그지 없는데, 그가 아는, 미쳐 열광하는 극은 언제나 원수든, 이미 땅에 묻은 이든, 병든 자든 그 자가 그 안에서 그 무엇이었든 간에 상관없이 다시 건강히 무대로 나와 포옹하며 인사하고 기뻐하며 환희하는데, 그 자리에는 패배하여 무릎 꿇은 장현과 이미 퇴장하여 존재하지 않는 정현만이 있었으며, 오직 사랑만이 승리하여 그 자리에 남아 장현을 미치게 했다. 우린 절대로 화해하지 못할거야. 날 영원히 미치게 만들 것이 자리 잡아 장현을 영영 괴롭힐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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