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한대신문 문예상 비평 가작] '뜨거운 피', K-누아르의 무성의한 반복 속에서 클래식을 보여주다
[2023 한대신문 문예상 비평 가작] '뜨거운 피', K-누아르의 무성의한 반복 속에서 클래식을 보여주다
  • 한지윤<예체대 연극영화학과 20> 씨
  • 승인 2023.12.04
  • 호수 1576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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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미학', 한국에서 필름 누아르(film noir)의 현황은 어떠한가. 포스트 IMF 시기의 누아르가 '복수'라는 테마 자체에 집중했다면, 최근의 누아르는 신선한 소재를 바탕으로 화려한 액션과 스릴러를 동시에 보여주려는 특징이 있다. 비교적 최근에 개봉한 <늑대사냥>, <길복순>, <발레리나> 등의 경우가 그러하다. 이러한 K-누아르 작품들은 OTT 플랫폼을 동력으로 한 경우가 많은데, OTT 특유의 자극적인 콘텐츠 문화와 결합하면서 특유의 비슷한 경향성을 보이게 되었다. 적나라한 살인 재현, 불필요한 성관계 장면, 비현실적으로 피가 낭자하는 연출 등, 노골적인 묘사가 특징적이다. 잔혹성과 선정성에 집중하다 보니 누아르만의 무게감과 냉소적 태도는 등한시되고 있다는 점 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혹자는 '누아르의 새로운 장이 열린 것'이라 말할 수 있겠지만, 이 경향성이 자극적인 소비문화에 크게 결부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과연 기존 필름 누아르에 대한 고민이 충분했던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이러한 'OTT 식 누아르' 열풍의 움직임 속에서, 주목해 보아야 할 한 편의 영화가 있다. 2022년 에 개봉한 천명관 감독의 연출 데뷔작 <뜨거운 피>이다. <뜨거운 피>는 주인공 '희수'가 부산 구암 포구의 이권을 둘러싼 싸움에 휘말리면서 타락해가는 과정을 다룬 영화이다. 대중에게는 소설가로 더 잘 알려진 천명관 감독은 58세의 나이에 영화감독에 도전했다. 꾸준한 작가 활동에서 비롯한 문학적 애정 때문이었을까, <뜨거운 피>는 원작인 김언수 작가의 동명 소설을 충실하게 재현하고 있다. 영화 곳곳에서 드러나는 천 감독의 문학성도 재미있는 요소이다. <뜨거운 피>는 살인에 대한 욕구를 음식에 대한 욕구와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고, 그 상징성을 대사에 다각적으로 녹여냈다. "누구든 구암을 먹을라 카면 피를 봐야 한다.", "아재 죽여 봤자 먹을 게 뭐 있겠습니까?" 등의 대사가 그 예시이다. 의도가 확실한 몇몇 대사들은 자칫 설명적인 느낌을 줄 우려가 있었으나, 배우들의 연기가 탁월하여 그 의미가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었다.


<뜨거운 피>의 가장 큰 매력은, 필름 누아르의 기본적 골조를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 다. 필름 누아르는 내러티브 면에서 관습적인 포뮬라 플롯을 가지고 있는데, 잔인한 범죄 세계를 담담하게 보여주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기존의 한국 조폭 영화 대다수는 인물의 개인적 서사를 과도하게 많이 보여준다는 일관된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감정적인 전개는, 폭력의 에로티시즘을 직선적으로 그려낼 수가 없기 때문에 필름 누아르의 관습에 있어서 장애 요소가 된다. 그러나 <뜨거운 피>'희수'가 왜 건달 세계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그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왔는지 보여주지 않는다. 그 예시로, "옛날에는 (지키고 싶은) 그런 게 있었던 것 같은데, 하도 더럽게 살다 보니까 고마 다 잊어 버렸습니다." 라는 대사가 영화에서 두 번 반복된다. 영화가 의도적으 로 '희수'의 과거를 알려주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관객들은 '희수'라는 인물에 완전히 공감하는 것이 아니라 먼발치에서 상황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뜨거운 피>는 촬영 면에서도 관객과 인물이 동일시되지 않도록 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이 영화는 (특히 싸움 장면에서) '직부감 쇼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직부감 앵글이란 인물의 정수리 위에서 수직으로 촬영한 듯한 극단적인 앵글로, 인물들을 작아 보이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하늘에서 전지적인 시점으로 상황 전반을 내려다보게 하기 때문에, 관객은 영화 속 상황에 완전히 개입되지 않고, 절망적인 상황마저 냉정하게 멀리서 응시할 수 있게 된다. 이 때문에 영화 속 '구암'은 추악한 날 것의 세계로 그려지며, 관객은 관조적으로 '희수의 밑바닥 생존기'를 바라본다.

바로 위에서 언급한 '직부감 쇼트'를 포함하여, 필름 누아르의 영화적 스타일은 촬영과 조명 기법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영화 초반의 살인 장면에서는 사각앵글(Oblique angle)을 통해 희수의 불안함과 죄책감을 반영한다. 그러나 '희수'의 인생이 밑바닥으로 떨어질수록 살인 장면은 수평 쇼트로 무덤덤하게 나타난다. <뜨거운 피>는 이렇게 촬영 구도를 통해 캐릭터 변화를 보여주고, 이 외에도 로우 앵글의 적절한 사용 등을 통해 누아르적인 무게감을 형성하고 있다.

또한 필름 누아르에서 '빛과 어둠의 대비'는 매우 중요한 요소인데, <뜨거운 피>는 이를 독특한 방식으로 차용했다. 대개 누아르에서
''은 어둠/그림자로 비유되지만, <뜨거운 피>''이 빛에 비유된다. 그 예시로, 영화 속 절대 악을 상징하는 '용강'이 등장하는 부분에서는 항상 햇빛이 드리우며, '희수''손 영감'을 배신한 다음날 아침엔 햇빛이 따가울 정도로 눈부시게 연출된다. 빛과 어둠의 이미지전복, 이는 기존 필름 누아르에 대한 천명관 감독의 고민과 포부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천명관 감독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필름 누아르의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영화적 애정을 바탕으로 기존 장르에 시각적인 도전을 가하는 시도를 했다.

그러나 <뜨거운 피>가 걸작으로 평가받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미흡한 '완성도' 때문일 것이다. 감독의 첫 연출작이기 때문에 감안할 부분들이 있기는 하지만, 결말에서의 내레이션 사용은 영화의 완결성을 특히 해치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오프닝에서 대사 한 줄 없이 담담히 인물 들을 보여주었던 것과는 달리, <뜨거운 피>의 결말은 '희수'의 감정적인 독백으로 갑자기 마무리된다. 앞서 나온 대사들을 불필요하게 반복한다는 점, 그리고 서술적인 대사가 여태까지 묘사된 '희수'의 성격과는 상반된다는 점이 여운을 감소시킨다. 결말을 내레이션 없이 '희수'가 바다의 노을을 응시하는 시퀀스로 구성했다면 담백한 여운을 남길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뜨거운 피>의 또 다른 아쉬운 점은 핵심 인물들의 수가 지나치게 많아 서사가 복잡해졌다는 점이다. 천명관 감독은 영화의 인물들을 구성함에 있어서 마틴 스콜세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두 거장의 공통점은 대서사시를 다루면서도 수많은 인물들을 정돈된 방식으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두 시간 남짓한 장편 영화에 인물들을 압축적으로 제시하기 위해선 매우 섬세한 테크닉이 필요한데, 그러한 면에서 봤을 때 <뜨거운 피>는 간결한 인물 제시에 실패했다. 천 감독은 인터뷰에서 "원작 인물들을 다 표현하려면 4시간 이상의 분량이 필요했을 것"이라 말하며 본인의 한계를 인정한 바 있다. 캐릭터의 수를 줄이고 그들 안에서의 관계에 집중했다면 관객들이 영화의 흐름을 보다 편안하게 따라갈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인물 구성과 관련하여 <뜨거운 피>가 받는 주된 비판은 '여성 인물들의 도구적 사용'이다. 위에서처럼 영화 속 대부분의 인물들이 표면적으로 그려지다 보니 여성 인물들은 남성 세계에서 더욱 피상적인 수단으로 묘사되었다. 그러나 '여성의 수단화'는 필름 누아르의 고질적인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는 다른 차원에서의 깊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뜨거운 피>'알탕 영화'인가? 그렇다. 자극적인 조미료 없이 정석대로 끓여 낸 '근본' 알탕이다. 서사에 대한 미련으로 조악해진 부분은 있으나, <뜨거운 피>는 그 고집스러움으로 필름 누아르의 정수를 담아냈다. OTT 식 잔혹성으로 버무린 누아르물 사이, <뜨거운 피>는 한국 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앞으로, 소설가가 아닌, 영화감독 천명관의 강력한 활약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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