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나이’ 도입 반년, 한국인들 나이 어떻게 말하나
‘만 나이’ 도입 반년, 한국인들 나이 어떻게 말하나
  • 강은영 기자
  • 승인 2023.11.20
  • 호수 1575
  • 4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올해 22살입니다” “만으로요, 원래 나이로요?” 만 나이 통일 후, 대학생 A씨는 나이를 두 번씩 답하는 번거로움을 겪고 있다. 만 나이로 답하자니 왠지 나이를 속이는 기분이 들고, ‘한국식 세는 나이(이하 세는 나이)’로 답하자니 ‘야’에서 ‘언니’로 상대의 호칭이 바뀌기 때문이다. 만 나이로 통일된 지 어느덧 반년이 지난 지금, 만 나이는 우리 사회에 얼만큼 정착했을까? 

지난 6월 28일, 정부는 나이 계산법을 국제표준인 ‘만 나이’로 통일했다. 이는 △만 나이 △연 나이 △세는 나이 혼용으로 인한 행정적 혼선과 법적 분쟁 등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다. 만 나이는 지난 1962년 서양력과 함께 만 나이가 도입됐으나, 행정상으로만 쓰인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이에 따라 행정 현장에서 민원이 발생하거나, 나이 해석을 둘러싼 법적 분쟁이 장기화하는 등 사회적 비용이 발생했다. 이번 개정안은 개정 당시 만 나이가 일상생활까지 통용될 수 있도록 명문화해 서열문화를 완화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불러 모았다. 

반년 지나도 잘 사용 안 해... 이유는?
그러나 나이 셈법이 통일된 지 반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만 나이는 보편화되지 않았다. 지난달 14일 설문 조사 업체 ‘SM C&C 틸리언 프로’가 발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36%만이 만 나이를 사용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다시 말해 3명 중 1명만 만 나이를 쓰는 꼴이다. 

통계에 따르면 젊은 연령층은 만 나이보다 세는 나이를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10대는 58.3%가 세는 나이를 사용해 전 연령대 중 가장 낮은 만 나이 사용률을 보였으며, 20대는 33.8%로 그 뒤를 이었다. 이수경<전남 목포시 15>씨는 “얼른 나이 먹고 싶은데 한 살 뺏기는 기분이라 세는 나이를 사용한다”고 말했다. 김성윤<공학대 기계공학과 23> 씨도 “만 나이로 18살인데 너무 어린 느낌이 들어서 20살이라고 답한다”고 답했다. 

반면, 높은 연령대는 비교적 만 나이를 선호했다. 특히 50대는 만 나이 사용 비중이 39.2%로 가장 높았다. 황석진<경기도 안산시 59> 씨는 “60대에서 다시 50대가 됐는데 회춘한 것 같아서 만 나이를 쓴다”고 답했다. 

만 나이와 세는 나이를 혼용하는 이들도 있다. 직장인 B씨는 “상대와 내가 나이를 세는 방식이 다르면 호칭도 달라지기 때문에 난감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며 “사회에선 만 나이를 사용하고 친구들끼리는 세는 나이를 그대로 쓴다”고 밝혔다. 

만 나이 통일법의 취지와 달리, 제각기 다른 나이 계산법이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신지영<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한국어는 높임법이 매우 발달한 언어인데 나이는 이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라며 “만 나이를 사용하면 제각각 나이를 먹는 탓에 호칭어와 높임법을 일관성 있게 사용하기 어려워서 그 사용률이 저조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어의 작동 방식이 바뀌지 않는 한 이 관행은 쉽게 바뀌지 않는단 것이다.

만 나이 정착될 수 있을까?
이렇듯 일각에선 앞으로도 만 나이 문화가 자리 잡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한다. 신 교수는 “법은 하루아침에 바뀌어도 문화는 그렇지 않다”며 “수직적 서열문화를 개선할 수 있는 캠페인으로 문화를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법안 개정보다 나이에 대한 수평적인 문화를 형성하는 것이 더 근본적인 접근이라는 것이다.

반면, 만 나이 상용화는 시간 문제란 긍정적인 시각도 있다. 최근 법제처에서 2만2천22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민인식조사에 따르면, 일상생활에서 만 나이를 사용해 본 경험이 있다는 비율이 73.9%로 나타났다. 특히 앞으로 일상생활에서 만 나이를 사용할 의향이 있다는 응답은 88.5%로, 법 시행 이후 만 나이를 사용해 본 적이 있다는 응답보다 14.6%p 높게 나타났다. 정유진<법제처 법제혁신총괄팀> 사무관은 “지금은 익숙한 우측 보행도 캠페인과 법령 개정을 통해 80년 가까이 이어진 관행을 변경했다”며 “만 나이 또한 우리 사회에 완전히 정착되는 데 다소 시간은 걸릴 수 있겠으나, 점차 익숙하게 사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보였다. 

정부도 만 나이가 정착할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먼저 법령상 나이 기준과 표기 방식을 통일하며 법령을 정비했다. 자치법규의 경우 이달 초까지 934건을 정비해 법령 해석의 혼선이 없도록 했다. 법제처는 교육부와 행정안전부 협업을 통해 맞춤형 교육을 지원하는 등 범정부 차원의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또한, 국민적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개정안을 다양한 방식으로 홍보하고 있다. 정 주무관은 “법제처는 온라인 포털에 광고 배너를 노출하고, 셀프 스튜디오 업체 ㅍ과 만 나이 프레임을 제작했다”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협업과 홍보를 통해 만 나이가 상용화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 답했다. 

한국의 서열문화를 타파하고, 세대 통합으로 나아가자는 기대 속에서 ‘만 나이 통일법’은 도입됐다. 이번 개정안이 과연 오랜 관행을 깰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강은영 기자 euten19@hanyang.ac.kr
도움: 신지영<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정유진<법제처 법제혁신총괄팀> 사무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