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상식과 도덕이 붕괴된 사회
[장산곶매] 상식과 도덕이 붕괴된 사회
  • 박선윤 기자
  • 승인 2023.11.13
  • 호수 1574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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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윤편집국장
                                                                               ▲박선윤<편집국장>

지난달 29일은 이태원 참사 1주기였다. 참사 이후 처음 맞는 할로윈 데이는 정부 지침 아래 행사가 모두 취소되고, 대기업을 포함한 유통기업들이 관련 행사와 프로모션을 전면 중단했다. 

이런 분위기 속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참사에 대한 추모행사가 열리기 마련인데, 이번 1주기는 혼란과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시민 추모행사가 야당과 일부 극단의 시민단체들이 참여한 ‘정치적 집회’라며 대통령과 여당 주요 인사, 장관들이 모두 불참했기 때문이다. 참여했던 여당 혁신위원장도 1부 행사가 끝나고 이태원 참사 유가족의 발언이 시작되자 자리를 떠났다는 것이 밝혀졌다. 결국 추모행사엔 책임자들이 아무도 없는 채로 진행됐다. 이후 대통령 비서실장은 국정감사 자리에서 야당 의원들이 유가족들에게 사과를 요구하자 ‘4번이나 사과했는데 여기서 어떻게 더 ‘하냐’는 망언을 쏟아내며 논란은 더욱 확산됐다.

가끔은 믿고 있었던 최소한의 도덕이, 상식이라 생각했던 필자의 생각이 ‘정치적 의견’이었나 싶어질 때가 있다. 추모에 참여해 슬픔을 공유하는 행위 자체가, 혹은 추모 행사의 주관 단체가 어디냐에 따라 이분법적으로 갈려 서로를 비난한다. 

옆에 있는 친구에게도 생각을 쉽게 물어볼 수 없다.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조용한 침묵이 필자를 얼어붙게 했던 적이 많다. 세월호 참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참사 직후 모두가 애도하며, 진심으로 재발 방지를 원하던 몇 년 전과 너무도 다른 분위기에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혼란스럽기도 하다. 

△노동자의 아픔에 공감하고 잘못한 기업을 비판하는 것 △범죄자의 잘못을 말하는 것 △참사를 추모하는 것들이 모두 정치색을 드러내는 게 되어 버렸다. 이외에도 모든 이슈가 서로를 헐뜯는 이야기들로 변해 의견을 표현하는 것이 잘못된 것만 같은 사회적 분위기에 필자의 생각은 복잡해진다. 상식선이라 믿어왔던 것이 붕괴되는 기분이다. 

사실 필자는 이번 1573호 ‘한양인의 한마디’ 코너에서 ‘이태원 참사 이후 처음 맞는 할로윈은 어땠나요?’란 질문을 학우분들과 공유해보고자 했다. 하지만 정치적 의견에 따라 대답이 너무 나뉠 것 같단 국부장단의 논의 끝에 조금은 가벼운, ‘논란이 되지 않을’ 다른 주제로 변경했다. 

틀린 말도 아니다. 우리 학교 학내 익명 커뮤니티에 잠깐만 들어가도 아주 날 선 말들로 추모 행사와 참여자를 비난하는 글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렇게까지 의견이 갈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극단화된 모습에 한숨을쉬며 금세 창을 닫아버리곤 했다.

장산곶매에 쓸 소재를 생각하는 것도 쉽지 않다. ‘민감한 정치적 사안’을 선정하지 않기 위해 모든 이슈들을 고민해 보지만 이분화된 우리 사회에서 어떤 주제를 선정하더라도 논란이 될까 두렵다. 과거엔 필자가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어떤 사안에 대해 비판하고 판단해 의견을 내는 것이 바람직한 시민의 태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엔 쉽게 판단할 수 없고, 쉽게 말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이 좁은 의견 피력 공간이 너무도 넓어 보이고, 어떻게 채워야 할지 더욱 고민된다. 

이렇게 정치권과 국민들이 분열되자 논의돼야 할 모든 이슈들이 정지돼 버렸다.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사안을 두고 빙글빙글 돌며 날 선 비난들만 오간다. 그러는 새에 문제는 더욱 심화되고, 늘어나는 소외된 사람들과 피해자들은 상처받고 숨어버린다. 우리 사회가 더 곪아버리기 전에 비난(Blame)보단 생산성 있는 비판(Criticism)이, 소란보단 소통이 이뤄졌으면 한다. 

도덕과 상식의 기준까지 양분되지 않고 ‘우리’가 같이 목소리 내고 서로를 보듬을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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