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다 : see 先
기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다 : see 先
  • 김여진 기자
  • 승인 2023.11.13
  • 호수 1574
  • 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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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문화 테마 ‘탈피’
익숙한 공간과 향기, 그 안에서 관성대로 사는 것. 가장 편안한 삶의 방식이다. 그러나 아무리 몸을 작게 말아봐도 더 이상 나의 껍질에 내 몸이 맞지 않는 날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고되지만 반드시 거쳐야 할, 어린 날의 껍질을 벗고 탈피할 계절이 온 것이다. 이번 호에서 소개할 소설 「데미안」과 앨범 「Calibrate」는 위태롭지만 그래서 아름다운 인간의 탈피를 다뤘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소설 「데미안」

헤르만 헤세의 장편 소설 「데미안」은 주인공 싱클레어가 기존의 세계에서 탈피하고 내면의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소설 속엔 두 개의 세계가 존재한다. 신앙심 깊고 유복한 싱클레어의 가정과 강도와 주정뱅이가 거니는 어두운 골목이다. 이 두 세계는 한 발짝만 넘으면 오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데 싱클레어는 왠지 모르게 어두운 세계에 자꾸 눈길이 간다.

그의 이야기는 어느 날 ‘막스 데미안’을 만나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그간 진리라 여겨지던 성경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이야기를 해준다. 싱클레어는 큰 혼란을 겪고 부정하고 싶어 하면서도 서서히 데미안의 이야기에 이끌린다. 데미안을 만난 이후로 싱클레어의 세계는 계속해서 깨져간다. 그 과정에서 싱클레어는 아버지에게 대들기도, 스스로 자신의 밝은 세계를 짓밟았단 생각에 자책하기도 한다. 그리고 어느 날 싱클레어는 데미안으로부터 “새는 알에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란 쪽지를 받는다. 데미안의 쪽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던 싱클레어는 점점 자신의 알이 깨져가는 느낌을 받고, 내면의 소리를 찾아간다.

소설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혼란스러움을 느껴봤을 것이다. 작중 싱클레어가 혼란스러운 만큼 독자 역시 그 어지러움을 함께한다. 한 세계를 부수고 새로운 세계로 발돋움한단 것은 나를 부수고 새로 태어난단 것과 같으니, 그 과정이 순탄할 리 없다. 소설 「데미안」을 통해 싱클레어와 함께 그 어려운 고민을 나눠보길 바란다.

낯선 길을 비틀거리며 걸어가도 좋다, 앨범 「Calibrate」

“무엇이 맞고 틀린 지, 매일 바뀌며 마음은 자주 흔들립니다”라는 앨범의 소개말처럼, 탈피를 앞둔 우리는 뭐 하나 명확한 것이 없어 불안에 떨곤 한다. 지난 2021년 발매된 가수 하현상의 앨범 「Calibrate」는 이런 청춘의 모습을 담담하게, 때론 대담하게 노래한다. 

첫 번째 트랙 「하이웨이」는 도입부의 드럼이 인상적인 곡으로, 앞으로 달려 나가는 청춘의 마음을 담았다. 낯선 길을 달린단 것은 때론 다시 껍질 안으로 기어들어 가고 싶은 어린 마음이 들 만큼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냥 그만둬 버릴까 어리광을 부리기도, 지금 걷는 길이 맞는 길인지 고뇌하기도, 혹시 내가 중요한 뭔가를 지나친 건 아닐지 하는 걱정에 뒤돌아보기도 한다. 하지만 노래는 우리가 멀리 달리다가 어딘지 모를 곳에 도착한다 해도, 영영 돌아올 수 없다 해도, 그래도 전보단 낫지 않겠냐고 말을 건넨다.

네 번째 트랙 「죽은 새」는 가수 하현상이 새장에서 탈출한 새의 인생을 상상하며 쓴 곡이다. 새는 고통 없는 이 새장에선 더 배울 것이 없다며 이미 멋지게 세상을 날고 있는 새들을 바라본다. 알맞은 바람 때를 살피다가 새는 당차게 뛰어내린다. 그 순간 새는 자신이 나는 방법을 잊었단 사실을 깨닫고, 차가운 바닥에 쓰러진다. 호기롭게 첫발을 내디딘 세상에서 어린 마음들은 수십 번도 더 상처받고 깨지곤 한다. 그러나 설령 여린 살갗이 찢어질지라도 나아갈 때 우린 비로소 성장한다.

앨범 「Calibrate」 속 솔직 담백한 음성을 따라가다 보면, 탈피의 계절 우린 위태롭고 나약하지만 동시에 아름답단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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