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모두의 학교에서 나만의 학교
[칼럼] 모두의 학교에서 나만의 학교
  • 배세연<생활대 실내건축디자인학과> 교수
  • 승인 2023.10.30
  • 호수 1573
  • 6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배세연<생활대 실내건축디자인학과> 교수

작년 여름에 학부 동기인 친구가 연구실에 다녀간 일이 있다. 이 친구가 한여름에 애지문에서 생과대까지 오르기 위한 방법은 서로 연결된 건물들을 통해 실내로만 이동하는 방법이었다. 졸업한 지 거의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루트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 놀라워서 어떻게 기억해 냈는지 물었더니 “애지문에 도착하니 저절로 기억이 나더라”라고 했다.

작년 2학기, 1학년들의 스튜디오 수업 시간엔 학교 안에 파빌리온을 설계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다. 파빌리온을 설치하고 싶은 장소를 선정하기 위해 학생들이 한양대란 장소를 조사해 온 내용엔 학부생 때부터 오랜 시간 한양대를 다니고 있는 필자도 모르는 내용이 많았다. 그리고 입학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얼마나 다양하게 저마다의 방식으로 한양대라는 장소를 이용하는지, 다양한 장소들과 애착을 형성하고 있는지 알게 됐다. 이는 다른 학생들, 교직원 등 한양대를 이용하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상황일 것으로 생각한다.

인간은 자신을 기준으로 세상을 인지한다. 자신이 척도가 되어 한 장소에서 △구성 요소들의 중요도 △높고 낮음 △멀고 가까움을 결정한다. 그렇기에 세상을 인지하는 방식은 존재하는 사람의 수만큼이나 다양하다. 한양대라는 이 장소 또한 하나의 단일한 한양대가 아닌, 한양대가 존재한 이래 이곳을 경험한 사람의 수만큼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또한 인간은 자신에게 친숙한 세계를 우선으로 기억을 형성한다. 지리학자 이 푸 투안(Yi-Fu Tuan)은 이 친숙한 세계를 “번잡한 일상적인 삶에 무진장하게 풍부하지만, 뚜렷한 이미지로 그려내기는 어려운 세계”라고 했다. 생각해 보면 어떤 장소에 대한 오래된 기억은 일반적인 사실보단 나에게 가까운 것, 작지만 사소하고 친밀한 것에서부터 연상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것이 당장은 너무 가까워서 나에게 큰 의미를 형성하고 있음을 알 수 없을 것이다.

몇 년 전엔 학부를 졸업하고 한참 동안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던 친구에게 불현듯 전화가 왔었다. 회사에서 퇴근하고 오랜만에 동기들을 만나 충동적으로 학교에 왔다던 그 친구는 노천에 누워 있다가 오랜만에 생각이 나서 전화를 한다고 했다. 이야기를 들으니 필자 역시 그 친구들이 예전에 노천에서 자주 시간을 보냈던 것이 생각이 났다. 졸업하고 오랜만에 학교에 와서 가장 먼저 노천을 찾았던 그들에게 노천은 세월이 많이 흐른 후일지라도 학교의 거대 시설도, 행사를 즐기던 장소도 아닌, 공강 시간에 자유롭게 누워있을 수 있던 자신만의 작고 친숙한 세계였을 것이다.

학생들을 보고 있으면 학교에서 거의 생활을 한다 싶을 정도로 오래 머물며 자신만의 장소 애착을 만들어가는 것을 보게 된다. 젊음을 시작하는 배경이자 하루 중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 곳에서 학생들이 가장 친숙하게 느끼고 있는 곳은 어딘지, 그 장소가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한 번쯤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 보기를 바란다. 그 곳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 보다 자신에게 중요한 장소일 수 있으며 한양대라는 장소의 기억을 결정짓는 곳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그 곳을 통해 다시 한양대를 찾게 될 수도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