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예정된 죽음
[장산곶매] 예정된 죽음
  • 박선윤 기자
  • 승인 2023.10.30
  • 호수 1573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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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선윤<편집국장>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죽으면 시 체는 찾아야 하니까 아이들 다리에 이름을 써놔요”

이번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큰 피해를 입고 있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부모들의 인터뷰다. 이번 전쟁으로 민간인 사상자가 늘어나고 있고, 미국의 가자지구 지상군 투입 논의가 진행되면서 더 큰 피해가 불가피하게 됐다.

지난 10월 7일 새벽 전쟁 소식이 기사를 타고 한국에 전해졌다. 주말이 지나 월요일 학교를 가자, 교수님들이 수업 시간에 해당 전쟁을 언급했다. 그래서 필자는 그날 밤 구체적 상황 파악을 위해 관련 기사창들을 띄웠다. 필자가 가장 먼저 찾았던 정보는 전쟁의 배경, 발발 원인, 과거 중동 갈등의 역사 등이었다. 수업 내용을 따라가기 위한 필자의 선택적 관심에 사상자들의 수를 담은 기사들은 지나쳐 버렸다.

수업 토론 준비를 위해 서방국가들의 입장, 미국의 참전 여부 등을 찾아봤다. 필자의 학과 특성상 전쟁으로 인한 피해보단 전쟁 발발의 원인, 앞으로의 영향에만 초점을 맞췄다. ‘미국의 참전으로 이스라엘에 지상군이 투입되면 이란과 미국의 대리전이 돼 장기화 되겠군’ 같은 나름의 분석을 끝내놓고 뿌듯한 마음으로 잠에 들었다. 인질들의 참수 영상, 폭행 영상들이 하나둘 보도되기 시작됐을 때도 끔찍하단 탄성보단 해당 단체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과거 무장 단체와 비슷한 습성을 보이고 있단 생각을 먼저 했다.

이 내용을 바탕으로 강의 시간에 △미국 주도의 자유질서 체제의 붕괴조짐 △중동 지역 패권 다툼 △국제사회 분위기 등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관련한 내용을 떠들어 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났을 때도 같았다. 한사람, 한사람의 죽음보다 큰 맥락 속에서 해당 ‘현상’을 이해하겠다며 선택적으로 정보를 선별해 습득해버렸다.

하지만 이번주 평소와 같이 기사들을 둘러보다 가자지구 부모들이 자녀 종아리에 이름을 쓰고 있단 기사를 보게 되었다. 아이들의 사후 신원 확인을 위해 이같은 행동을 한단 것이다. 실제 외신에 따르면 가자지구 내 병원 영안실에 놓인 아이들의 다리엔 아랍어로 이름이 적혀있었다고 한다.

죽게 될 확률이 높으니, 시신이라도 수습하고 싶단 부모의 마음이라 보도된 기사를 읽으며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학부생의 알량한 분석력이, 텍스트로만 무심하게 읽어내던 필자의 공감력이 혐오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토론 시간에 아무 생각없이 뱉어내던 ‘전쟁이 장기화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등의 말속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비명이 담겨 있었는지.

그제야 전쟁의 피해를 담은 소식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 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세상이, 일상이 전쟁 하나로 부서졌고,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다. 평소를 살아가는 필자의 일상과 다르게 폭탄과 미사일이 하늘로 날아가는 소리, 총소리, 사람들의 비명이 쌓여 아무것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혼란스러운 순간들이 지속될 것이다.

선제타격으로 큰 혼란에 빠졌던 이스라엘 국민들도, 이스라엘 정부의 보복으로 더 큰 피해를 입고있는 가자지구 주민들도 정부의 이념이전에 이 전쟁에서 가장 큰 피해를보고 있는 사람들이다. 전쟁이 일어날 경우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여성, 노인, 아이들을 포함한 민간인들이다.

혼란스럽고 복잡한 국제사회에서 앞으로도 전쟁이 이어질 것이란 시나리오가 반복해서 등장하고 있다. 국익을 위한단 정치인들의 말보다 실제 피해를 볼 민간인들을 먼저생각했으면 좋겠다. 더 이상은 무고한 희생자들이 나오지 않도록 전쟁이 멈추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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