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으로 세상을 진찰하다
기자의 눈으로 세상을 진찰하다
  • 박정민 기자
  • 승인 2023.10.30
  • 호수 1573
  • 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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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전문기자는 의학 분야의 사건, 사고, 혹은 학술적인 발견이나 의료 관련 일들을 취재하고 보도한다. 조동찬<의대 의학과 94> 동문은 한양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한양대병원에서 신경외과 전문의를 취득했으나 2008년부터 SBS 의학전문기자로 근무 중이다. 조 동문은 다수의 특종 심층 보도로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의사의 시선으로 세상을 취재하는 의학전문기자 조동찬 동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우연처럼 다가온 운명의 연속

어릴 적부터 모범생의 길을 걸었단 조 동문. “초등학교에 처음 입학해 시험을 잘 봤어요. 그 나이엔 누구나 시험을 잘 볼 수 있지만, 부모님의 칭찬이 있었죠.” 그 동력이 이어지며 붙은 ‘공부 잘하는 아이’란 이름표에 부응하려 그는 이후에도 전교 1등을 놓쳐본 적이 없다. 그저 성실했던 조 동문에게 중학교 2학년 때 의대생 얘기를 다룬 <사랑이 꽃피는 나무>란 드라마가 의사의 꿈을 심었다. “돌이켜보면 그땐 의사가 아니라 의대생이 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막연했던 꿈이 구체적으로 전환된 계기는 전쟁 영화 속 군의관의 모습이다. “전쟁이 난대도 직업을 잃지 않고 빛날 수 있는 게 바로 의사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본교 의대에 진학하고 활발했던 그는 학업에 충실할 뿐만 아니라 학과 대표와 동아리 회장까지 맡으며 적극적인 학교생활을 이어갔다. 조 동문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했던 일들이 나중엔 어떻게든 돌아온단 스티브 잡스의 스탠퍼드 졸업식 연설을 언급하며 “의사였던 시절이든 지금 기자로서든, 어떤 직업에서도 내가 살아왔던 모든 활동이 영향을 준다고 생각해요.”라 말했다. 

그는 신경외과를 선택한 후로 적성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없다. “인턴 때, 운명처럼 하필 신경외과가 배정된 소수의 그룹에 속하게 됐어요.” 그는 어느 날 교통사고로 실려 온 경막하출혈 환자를 만났다. “선생님들이 두개골을 열고 뇌를 누르고 있던 고인 혈을 걷어내자, 뇌가 다시 부풀어 오르면서 펑펑 뛰는 모습을 봤어요. 그 장면은 지금도 생각나요.” 당시 그는 ‘이건 내 거다’ 하는 생각으로, 신경외과로 가야겠단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 지난 2010년 IT 대지진 때 해외 취재를 나갔던 조 동문이 의사로서 직접 환자를 치료하고 있는 모습이다.
    ▲ 지난 2010년 IT 대지진 때 해외 취재를 나갔던 조 동문이 의사로서 직접 환자를 치료하고 있는 모습이다.


심장이 시켜서 했어요

그가 즐겨 듣던 스티브 잡스의 연설처럼, 의사로서의 삶을 이어오던 그가 기자를 선택하게 된 것 역시 ‘심장이 시키는 일’이었다. “군의관 시절, 통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읽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생애 첫 배낭여행을 떠났어요. 그때 제가 여행을 좋아하는 줄도, 인물화를 좋아하는 줄도 처음 알았어요.” 여태껏 자신이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았단 생각과 함께, 스스로에 대한 충분한 공부가 필요하단 걸 깨달았단 조 동문. 그는 “그때부터 마음 끌리는 일이 생기면 단번에 뛰어들기로 결심했고, 우연히 TV 속에 등장하는 의학전문기자를 보자마자 대번에 ‘저걸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죠.”라 말했다. 그렇게 그는 의사에서 의학전문기자로 전향하게 됐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직업에 뛰어들 수 있었던 것은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그 가벼운 마음이 그를 오늘로 이끈 셈이다. “이렇게까지 오래 할 줄은 몰랐어요.” 최근까지도 기자란 직업을 억지로 붙들 생각은 없었단 조 동문, 하지만 지금은 기자란 직업이 그에게 매우 소중한 직업이 됐다. “취재하고 기사를 쓰면서 제가 힐링을 받거든요. 예전엔 좀 건방진 태도였어요. ‘내가 이 만큼 잘 알아, 나 전문의야.’ 하던 게 이젠 ‘이 소중한 것, 이분들에게 도움 될 것을 알려드려야 해.’로 바뀌었어요.”

이러한 마음가짐의 변화로 과거에 집필했던 책에 대한 아쉬움도 생겼단 조 동문. 절대적 수면량이 부족한 의료분야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낸 수면 관련 기사들을 책으로 엮었던 경험을 떠올렸다. “지금이라면 더 진심으로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땐 제가 가진 수면에 대한 지식을 담는 데 신경 쓰곤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여러분, 이건 정말 아셨으면 좋겠어요.”란 마음으로 더 잘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어서 조 동문은 “다른 사람의 안타까운 이야길 들으면, 예전보다 ‘이걸 어떻게 도와줄 수 있지’란 마음이 더 크게 들어요.” 라며 최근엔 유독 그에게 주어진 시간과 재료들이 소중하게 느껴진다고 덧붙였다.

일반 기자와 의학전문기자의 차이에 대한 물음에, 그는 “본질적으로 둘은 같다고 생각해요.”라 답했다. “기자는 팩트를 목숨처럼 생각해야 하는데요, 그 팩트에 도달하는 건 불가능해요.” 팩트는 기자가 도달하기 위해 애써야 할 이상적 개념이라는 조 동문, 그걸 위해 읽고 적고 뛰는 건 모든 기자의 숙명이라고 전했다. 그는 “모르면 기사를 안 써야 해요. 기자는 그 누구도 대충대충 쓰면 안 돼요. 그렇게 열심히 해도 팩트에 도달하기 어려운데, 어떻게 대충 쓰겠어요.”라 덧붙였다. 한편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선 의학전문기자와 일반 기자의 차이를 통감한다고 말했다. “이해관계에서 자유롭지 않은 관계자들은 취재하기가 어렵죠. 하지만 전문가의 인터뷰가 부재하더라도 전문 기자는 자신의 전문 분야를 걸고 보도할 수 있습니다.

 

▲ 조 동문이 뉴스 온에어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다.
                                                ▲ 조 동문이 뉴스 온에어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다.


엘리트 전문기자의 활약 뒤에는

조 동문이 기자 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던 동력으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있다. 2011년 가습기살균제로 인해 산모, 영유아 등이 사망하거나 폐질환에 걸린 사건이다. 그는 질병관리본부가 일반 질환으로 발표한 내용이 신종 폐질환이란 사실을 최초로 보도해 수상하기도 했으나, 피해자에 대한 구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2019년까지 연속 보도를 이어왔다. “그 사건을 겪으면서, 사람만큼 중요한 팩트는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는 정책이나 제도, 연구마저도 사람이란 대상에 초점을 맞추지 않으면 다 무언가의 도구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에겐 코로나19 팬데믹도 보도가 사람을 향해야 한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은 시간이다. 의학전문기자의 몫이 크게 늘었던 팬데믹을 그는 ‘처음으로 본 인류에게 닥친 전쟁’이라 회상했다. “이 전쟁에서 언론이란 군인으로서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안에서 제 영향력을 욕심냈던 적은 없습니다.” 대중을 상대로 할 땐 어떤 위치에 있든 사람을 놓치면 한순간에 나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조 동문. 그 역시 코로나 보도 초창기엔 감염병을 보느라 사람을 놓쳤다며 회고했다. “공격적으로 취재를 진행하다 보면 그렇게 길을 잃을 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도 어느 부분에선 놓치고 있을지 모른단 그의 목소리엔 조심스러운 마음이 묻어났다.

그는 다양한 분야에서 심층 취재를 이어왔지만, 어려움은 매번 반복된다. “피해자들은 희생당한 상황의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해요. 그러다 완전히 무너져 희망을 잃으시면 그제야 연락이 옵니다.” 예컨대 재난적 의료비 사각지대에 대한 취재에서, 그는 재난적 의료비로 인해 가정이 무너진 이들을 설득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 외에도 취재 중에 섬세하게 접근해야 할 상황은 여전히 많다


그는 지금도 성장 중이다

의료계 시각에서의 표현적 옳고 그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과거 조 동문의 생각이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뉴스는 시청자가 한 번에 보고 지나가잖아요.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없으면 제가 준비한 모든 게 허물어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는 이제 의학적으로 완벽하게 정의된 전문 용어 대신 일반 시청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단어를 고르려고 노력하게 됐다.
같은 맥락에서 어린이를 대상으로 의료 용어를 쉽게 풀이하는 책을 써내기도 했다.  해당 저서엔 그간 취재해 왔던 △의료 제도 △장기 기증 △존엄사에 관한 이야길 담았다. “힘든 작업이었지만, 저 스스로에게도 많은 공부가 됐습니다. 의료계의 시선을 넘어 비의료계 사람들의 입장, 대중의 시선을 이해하게 된 계기였죠.”

“사회의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이슈를 어떻게 이용하는지가 보이는 사건들이 있었고, 그게 저를 많이 변화시켰어요.” 더 이상 유명한 사람 만나는 것에 동요하지 않는다는 조 동문. 그는 기자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질문을 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기자 대부분은 거꾸로 가요, 높은 사람들만 만나죠. 그러니 ‘위험한 직업’이기도 해요.” 이에 조 동문은 기자에게 시선의 방향성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이어서 삶의 태도에 있어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 않도록 유의할 것을 당부했다.

그가 최근 보도 중인 분야는 생활 건강 위주다. 그는 일상에서 느끼는 부분들, 에너지를 쏟는 부분들에 대한 취재가 가장 재밌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젠 기자라는 직업에 어깨가 무겁다는 조 동문. “제게 제보하는 사람들, 제가 취재하는 사람들이 양어깨에 들어앉아 있죠. 한쪽 어깨의 일을 해결해야 반대쪽 어깨의 일을 해결하는데, 쉴 새 없이 어깨가 무거워지니 지금은 다른 직업으로 전환할 생각은 안 들어요.” 그는 언젠가 그의 어깨가 가벼워진다면, 그리고 또 다른 심장을 뛰게 하는 일이 생긴다면 그땐 새로운 도전을 하겠단 말을 남겼다.


취재는 신중하게, 도전은 과감하게

조 동문은 언론인을 꿈꾸는 이들에게 ‘기자는 절대 화려한 직업이 아니다’라고 경고했다. “처음엔 기자가 말하는 직업인 줄 알았는데, 철저히 들어야 해요. 내가 하고픈 말이 있으면, 이를 뒷받침해 주는 인터뷰와 근거를 찾죠. 그러면 반대쪽 진영에서 항의가 나와요.” 기사의 영향력이 클수록, 반대쪽 저항은 더 강력하다. “그런데 그들의 목소릴 들어보면 일리가 있거든요. 그럼 제 생각이 짧았단 걸 깨닫죠.” 그는 기사란 톤앤매너를 지키면서도 양측의 얘기를 모두 듣고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청년들에겐 ‘가장 안 좋은 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란 말을 남기고 싶다 전했다. “깨지고 또 깨지더라도,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은 특히 젊은이들이 더 많이 해야 해요. 나이가 들수록 호기심이 사라지거든요.” 

15년 차 베테랑 기자가 된 지금도 여전히 배워가는 중이라는 조 동문, 그의 발전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얼핏 전공과 다른 분야로 보이는 언론계에서 그는 전문기자란 이름으로 의사의 소명마저 다하고 있었다. 매섭고도 따뜻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조 동문의 무거운 어깨가 보람으로 채워지길 바란다.


박정민 기자 judy3873@hanyang.ac.kr
사진 제공: 조동찬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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