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래머블, 인스타그램 ‘버블'
인스타그래머블, 인스타그램 ‘버블'
  • 박정민 기자
  • 승인 2023.10.30
  • 호수 1573
  • 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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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완전 인스타 업로드 각 나오겠다.” “그러게. 나 자연스럽게 웃고 있을 테니까, 잘 찍어봐.” 인스타그램 사용자 20억 명 시대, 이 기묘한 대화는 MZ 세대의 일상이 됐다. 내 일상의 모든 이벤트를 찍어 올리는 시대, 사진을 찍기 위해 만남을 갖는 시대. 바야흐로 인스타그램의 시대다.

현시점 가장 영향력 있는 SNS로 손꼽히는 인스타그램은 전 세계를 관통하는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며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able)하다”는 표현을 낳았다. 인스타그램 자체가 문화가 되었음을 시사하는 이 단어는 인스타그램이라는 사진 공유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와 ‘-able’이라는 영단어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신조어로서,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사진 또는 경험을 의미한다. 인스타그래머블한 내용은 사진으로 모든 것을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시각적인 측면이 강조된다. 예를 들어 식당에선 음식의 외관과 분위기를 강조해 사진을 찍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여행지에선 아름다운 풍경이나 독특한 장소에서 찍은 사진이 주목을 받는다. 인스타그래머블한 내용을 제공하는 업계는 △레스토랑 △전시 △호텔등 다양하며, 수요의 성장에 따라 계속해서 확장 중이다.


없는 것도 ‘있어 보이게’

인스타그래머블 콘텐츠가 오프라인을 뒤덮은 이 시점, 도시의 곳곳이 포토존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단 의문이 제기됐다. 상점의 부가적 매력이자 홍보 수단으로 사용되는 콘텐츠가 주객전도되며 정작 상점의 본질은 경시되고 있는 것이다. 기자는 이른바 ‘감성 카페’ 라고 불리는 국내의 한 카페를 방문했다. 폐공장을 리모델링해 탄생시킨 카페 A는 낡은 구조물을 레트로한 감성으로 꾸몄단 점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지만, 소비자들은 인스타그래머블한 콘텐츠를 위해 마련한 시멘트 좌석과 테이블, 오래된 소파를 이용하기 위해 편안함을 포기해야 했다. 방문객 이동현<서울시 강동구 28> 씨는 “폐건물의 구조를 그대로 유지한 만큼 벽 내부 곳곳에 구조물이 튀어나온 모습이 감성적이긴 하지만 위생이나 안전 면에서 안심되진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이소진<서울시 강동구 24> 씨는 “인테리어에 치중한 나머지 가격에 비해 음료나 디저트의 맛은 포기해야 할 듯하다”고 말했다. 방문객들은 ‘인스타그램 감성 스팟’으로서 방문했기에 카페로서의 몫이 경시되는 게 아쉽단 반응이다.

 

▲ A 카페의 내부 전경 모습이다.
▲ A 카페의 내부 전경 모습이다.

 

▲ B 전시 내 포토존 중 한 곳의 모습이다.
▲ B 전시 내 포토존 중 한 곳의 모습이다.

인스타그래머블 문화 공간의 가치에 대해서도 논란이다. 문화 공간이 본질을 잃고 피드 업로드를 위한 ‘보여주기식’ 공간으로 전락하자, 본연의 향유 가치가 하락한단 것이다. 국내 상설 전시로 진행 중인 전시회 B는 전시장 공간마다 의자, 소파 등 촬영용 스팟이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심지어 의자 옆엔 촬영용 소품까지 놓여있다. 관람객들은 포토존에 줄서서 기다리기 바쁘고, 사실상 전시의 핵심 주제에 관련한 충분한 설명은 없다. 관람객 C씨는 “전시가 아니라 커다란 즉석 사진관에 들어온 것 같았다”라며, 예술적으로 감상할 만한 전시를 기대하고 왔는데 실망스럽다고 전했다. 박성복<언정대 정보사회미디어학과> 교수는 “온라인상에 보여지기 위한 오프라인 시설의 과도한 디자인 치중으로 양질의 저하가 우려된다”며 “아무리 인스타그래머블 콘텐츠가 유행할지라도, 결국은 음식이나 작품이 본질인 공간은 핵심 가치에 충실해질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아닌 것도 ‘과장되게’

한편 인스타그램 내부에선 이러한 ‘인스타그래머블’ 콘텐츠에 열광하는 소비자들의 심리를 겨냥한 바이럴 마케팅이 성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유사한 광고 문구로 다양한 △전시 △점포 △행사 등을 홍보하는 광고성 게시물이 우후죽순 등장하는 추세이며, ‘SNS 맛집’이라는 단어가 등장할 정도로 유의미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휘경<서울시 강남구 24> 씨는 “소셜 미디어에 ‘신상 맛집’이라고 좌표가 찍히면 무작정 사람이 몰린다”며 “SNS 상에서 유행하는 맛집이라고 하니, 궁금한 마음에 한 번쯤 찾게 된다”고 말했다. 지역 홍보 계정에 광고를 의뢰한 경험이 있는 점주 D씨는 “홍보 계정에 광고를 의뢰하는 것은 일종의 투자이고, 인스타 전광판 같은 느낌”이라며 “주위에서 너도나도 바이럴 마케팅을 시도하니, 동참하지 않으면 인지도에 뒤처진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이같은 인스타그래머블 추구 현상을 악용하는 사례가 생겨나기도 한다. SNS 내에서 큰 영향력을 지닌 사람들을 지칭하는 ‘인플루언서’의 등장에 따라 바이럴 마케팅의 형태가 다양해지며, 이들이 기업으로부터 광고 의뢰를 받고도 그 사실을 숨긴 채 유행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인스타그램 이용자 이유정<울산시 남구 26> 씨는 “SNS에서 유행하는 음식을 막상 먹어보면 유명세에 비해 맛과 품질이 터무니없이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인플루언서의 후기를 믿고 제품을 구매했으나 ‘뒷광고’로 밝혀진 경우도 있었다”는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콘텐츠의 변질과 관련한 문제가 오프라인 공간에 더불어 SNS 내부로까지 번져가고 있는 원인으로 SNS 자체의 구조적 병폐를 지적한다. 비즈니스 뉴스레터 <커피팟>에서 ‘키티의 빅테크 읽기’를 연재 중인 홍윤희 에디터는 “정교한 마케팅이 어려워진 SNS가 할 수 있는 것은 바이럴 마케팅을 늘리는 방법뿐이기에 유저의 데이터를 통해 광고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SNS의 거의 유일한 수익 창출 수단”이라며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지점이 SNS의 순수 소통 기능과 충돌하고 있는 것”이라 말한다. 최근 2030세대가 안티-알고리즘으로 향하는 이유 중 하나도 이러한 바이럴로부터 느낀 피로감 때문이란 것이다.


당신이 알던 SNS는 갔다

인스타그래머블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이용자들의 움직임에도 변화가 시작됐다. 미국의 경제 전문 뉴스 회사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최근 소셜 미디어 이용 행태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일상을 공유하는 방식에서 소수의 지인과 비공개로 소통하는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러한 현상은 국내에서도 다를 바 없이 나타나고 있다. 홍 에디터는 “회색 지대를 선호하는 Z세대는 ‘박제’되는 피드 게시물보단 휘발성 ‘스토리’ 게시물이나 DM(다이렉트 메시지)을 즐겨 찾게 된다”며 “Z세대의 관계 형성 유형이 최근 소셜 미디어 이용 형태 변화의 원인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 또한 “유대감 형성을 위해 반복되는 ‘보여주기’와 ‘훔쳐보기’의 연속이 이용자들의 SNS 피로감을 유발한다”고 말했다.

더 이상 SNS를 공개적 일상 공유와 소통의 장으로 사용하지 않는 이용자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준석<사회대 사회학과 22> 씨는 “SNS 피드 게시물은 올린 지 오래됐고, 오히려 있던 것도 숨김 처리 했다”며 “인스타그램은 주로 친구들의 스토리를 보거나 DM을 위해 이용한다”고 밝혔다. 우영주<사회대 사회학과 22> 씨는 “현재는 계정 프로필과 게시물을 모두 지운 상태”라며 “어느 순간부터 타인에게 보여지기 위해 내 피드를 꾸며내는 일이 부질없단 생각이 들어 싫증을 느꼈다”고 밝혔다. 

이에 전문가들은 SNS에 대한 비관적 전망을 내놓음과 동시에 자체적 자정 작용이 필요하단 입장이다. 홍 씨는 “인스타그램 내면의 사회 병리적 현상에 소비자들이 등 돌리고 있다”며 “SNS에 대한 불신과 비판의식은 점점 강화될 것”이라 말했다. 이미 미국에선 틱톡이나 스냅챗같은 타 소셜 미디어가 강세를 띠고 있고, 국내에서도 인스타그래머블 콘텐츠 유행의 하락세가 시작된 것이다. 박 교수 역시 “SNS 피로감이 치달은 유저들로 인해 폐쇄화가 진행 단계에 있다”는 한편,  “소비자들에겐 SNS가 기존에 제공하던 유대와 교류감에 대한 욕구는 여전하기 때문에 자체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일상적 소통과 미디어 속 자아가 주객전도된 현시점, ‘인스타그래머블’에 열광하던 한때의 유행은 다양한 부작용을 겪고 있다. 미디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능동적으로 미디어 환경을 변화시킬 힘을 갖고, 건강한 소통의 장을 열길 바란다.
 


도움: 홍윤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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