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발주악벽(發走惡癖)
[장산곶매] 발주악벽(發走惡癖)
  • 박선윤 기자
  • 승인 2023.10.09
  • 호수 1572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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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윤
                                                                                   ▲ 박선윤<편집국장>

이번 추석 때 필자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이제 곧 4학년인데, 어디 취직할거야?”이다. 필자는 언론인이란 진로가 나름 확고한 편이지만, 그럼에도 그 질문을 들을 때마다 숨이 턱턱 막힌다. 취업이란 무거운 짐을 지고 산을 오르고 있는 시점에서 짐이 더 얹힌 느낌이다. 심지어 할머니의 물음에 못 들은 척 다른 화제로 말을 돌려버렸다.

이번 학기는 유독 진로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나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취업을 준비하는 과목들을 여럿 수강하고 있다. 3학년 2학기가 된 필자는 취업을 준비해야 할 시기이다. 강의에서 교수님의 말들 한마디 한마디가 머리에 새겨져 ‘나는 도대체 취직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표만 머리에 오만 개가 생긴다. 필자의 대학 생활을 돌아보라는 교수님의 간단한 수업과제에도 회의감이 몰려오곤 한다. 

최근 필자는 모든 행동을 취업과 연관 지으려고 하는 병이 생겼다. 모든 행동, 활동들이 나중에 취업에 도움이 돼야만 할 것 같고, 그렇지 않다면 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한다. 활동에서 뭔가 성과가 생기면 ‘나중에 자소서에 쓸 수 있겠다’라며 환호하고 있다. 

활동 자체에 대해 순수한 열정도 모두 계산된 행동 같아지는 요즘이다. 친구들이 오랜 기간 학보사 활동을 하는 이유를 물으면 때때로 ‘학보사 기자로 활동하는 게 좋아’보다 ‘취업할 때 도움은 되겠지’란 대답이 튀어나오곤 한다. 학내 언론이란 자부심보다 나중에 취직할 때 영향이 먼저 떠올라 소위 말하는 ‘현타’가 오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필자의 취미도 하나하나 줄어가고 있다. 고등학교 때부터 필자의 취미였던 등산도 이제 마냥 즐길 순 없다. 등산으로 먹고 살 것도 아닌데 산을 타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될지 의문이 먼저 든다. 일상에서 어떤 것을 하던 불안감을 지울 수 없다. 취직에 관련된 것이 아니면 비효율적이라 생각한다. 어떤 강의를 들어도, 어떤 동아리 활동을 해도 쓸모없단 생각이 앞선다.

취업에 대한 이런 부담은 비단 필자만 느끼는 것이 아니다. 이번 호 03면 기사인 ‘전문직, 의대 선호 현상’을 봐도 대다수의 대학생들이 취직을 위해 자신의 선호, 꿈을 포기하고 취직이 확정된 길을 걸으려 한다. 시험만 통과하면, 대학 과정만 따라가면 취직이 된다니 부러움이 앞선다. 

학보 기사들을 발간하다 보면 △전문직 선호 △창업 실패 △은둔형 외톨이 등 대다수의 사회 문제 현상의 원인이 취업난으로 곧잘 지적되곤 한다. 대학 앞에 ‘취업사관학교’라는 꼬리표가 따라 다닌 지 오래고, 취업이란 거대한 문이 우리의 찬란한 20대를 먹어버린 기분이다. 

이런 우리가 앞만 보고 달려야하는 경주마 같단 생각을 종종 한다. 경주마가 경기 중 옆길로 새거나, 출발을 하지 않는 등의 악습들을 총칭해 경마 용어로 ‘발주악벽(發走惡癖)’이라고 부른단다. 습관을 없애기 위해 말은 경주 중에 눈가리개를 쓰게 된다. 어디든 갈 수 있는 말이 옆길로 새는 것이 나쁜 습관으로 치부되지만, 경주란 굴레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 모두 눈가리개를 한 채로 대학 생활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이러한 필자의 한탄이 징징거리는 것으로 치부될 수 있다. ‘모두가 해내는데 왜 너만 못해’라는 비난으로 돌아올 수 있단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가끔은 눈가리개를 벗어 던지고 발주악벽이 필요한 순간들이 있다. 잠시 멈추고,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찾아 옆길로 가더라도 응원해 줄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필자에게 그러한 용기가 생기길 빌어보며 한탄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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